반성이 시작되는 적정 온도
빈틈없이 꽉 찬 고요. 감정의 폭발을 겪었던 일이 마치 전생처럼 느껴질 만큼의 완전한 평온함이다. 그 누구도 나를 건드리지 않고 크게 신경 쓸 일도 없다. 원래 삶이란 게 이렇게 느슨할 수 있는 거였구나.
나는 내가 회사를 안 가면 천하의 게으름뱅이가 될 줄 알았지만 직장생활 10년 짬빠는 그렇게 물렁한 것이 아니었다. 달라진 게 있다면 내 마음뿐이랄까. 전엔 매일같이 눈만 뜨면 십 분만 더 자고 싶단 생각이 간절했는데, 갈 데가 없어지니 오히려 몸이 가뿐하다.
이부자리를 툭툭 털고 일어나 부엌으로 간다.
헐렁한 티셔츠와 잠옷바지 차림으로 계란을 삶고 커피를 내린다. 아침을 여는 최고의 음식이 계란이라는 걸 알면서도 바삐 출근할 땐 그거 하나 지키는 게 참 어려웠다. 하지만 자유인은 하루가 온통 내 것이다. 내 소중한 하루를 여는 이 시간을 최고로 사치스럽게 누리기로 했다.
정성 들여 내린 커피를 들고 잠시 창가로 가 밖을 내다본다. 바삐 출근하는 사람들을 바라보고 있으면 마치 어제의 나를 보는 것처럼 마음이 쓰인다. 신호등 놓칠까 지하철 놓칠까 내내 뛰어다니던 나다. 주변을 둘러볼 여유가 전혀 없었다. 그땐 저 발걸음 사이에 내가 있었다.
옛 생각에 잠시 머무르다 이번엔 식탁에 자리 잡고 앉는다. 뜨거운 커피를 한가롭게 홀짝이다 보면 다시 새로운 생각들이 머리를 채운다. 어느 날은 미래에 관한 것이기도 어느 날은 과거 혹은 현재에 관한 것이기도 하다. 특히 과거의 기억들을 더듬다 보면 불과 몇 달도 안 된 일들마저 아주 먼 과거의 일처럼 느껴지기도 하는데, 그때 느껴지는 감정이 분노가 아니라 반성이라는 것이 새롭다.
거리를 두고 보니 내가 분노했던 많은 일들이 전혀 대수롭지 않게 느껴졌다. 팀장과의 갈등, 불합리한 체계에 대한 불만, 도저히 말이 안 통하는 사람들. 이제 보니 아무 일도 아니었다. 그게 뭐라고 그렇게 치열했던 건지. 세상에 일어나는 수도 없이 많은 어처구니없는 일들에 비하면 전혀 큰일이 아니었는데도 그때는 내 세상 전체가 흔들리는 기분이었다. 오로지 그 사건들이 내 세상을 가득 채우고 있어서 더 크게 보지 못했다.
그중 가장 많이 한 반성은 일의 주도권을 내가 확실하게 가져오지 못한 것이었다. 만약 체계에 불만이 있다면 내 목소리가 권력의 끝에 직접 닿을 수 있도록 조금 더 전면에 나섰어야 했다. 그런데 그러지 못했다. 그로 인해 파생될 여러 가지 골치 아픈 일들을 감당하기 싫어서였다. 그러면서도 전면에 나선 이들이 그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함에만 목소리를 냈다. 그들이 잘했다는 것은 아니지만 그것과는 별개로 내 방식에도 분명 문제가 있었다.
상대에 대한 기대치도 높은 편이었다. 업무에 필요한 사람의 모양을 정해두고 그것을 충족하지 못하면 실망했다. 그 사람의 반짝이는 면이 더 빛나도록 했어야 했는데 그러지 못했다. 세상에 결점 없는 사람이 어디 있으랴. 나 역시 결점투성이 인간임에도 그것들을 충분히 포용하지 못했다. 정말 나만 답답하고 억울했을까? 잘 모르겠다. 세상에 만 명의 사람이 있다면 다 각자의 사연과 이유가 있는 법이다.
모든 인간관계는 상호작용이다. 어떤 현상이 있었다면 그것은 상대와 나의 상호작용의 결과물이다. 덮어놓고 상대 탓을 하기 전에, 나 먼저 되돌아봐야 했다. 어린 나이가 아닌데도 여전히 뚝딱거린다. 실수하고 후회하고 미워하고 용서한다. 그래도 거리가 생기니 반성할 수 있는 여지가 생겼다. 덕분에 너그러운 마음으로 혼자 이런저런 용서와 반성을 매일같이 하고 있다. 그들은 모르겠지만.
방해 없는 정적 속에서 이렇게 끝도 없이 반성의 시간들을 이어가다 보면, 어느새 뜨거운 커피가 마시기 좋게 식어있다. 커피맛은 사실 이때가 제일이다. 원두가 가진 다양한 향이 아주 다채롭게 느껴진다. 한층 풍성해진 향을 음미하다 생각한다.
너무 뜨겁지 말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