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이 화장실 한 칸에서 정리됐다
“그럼 그동안 누구는 놀았습니까??????????”
옆 팀장이 갑자기 높인 목소리에 내 퓨즈가 나가버려 사무실 한가운데서 소리를 빽 질러버렸다. 그나마 사무실에 사람들이 별로 없었다는 게 불행 중 다행이랄까. 지금 마음만 같아도 소리 높이지 말라며 조용히 이성적인 대화를 이어갔겠지만, 그때의 나에겐 그런 여유는 정말이지 눈곱만큼도 남아 있지 않았다.
그동안 많이 쌓여 있었다. 연말이라 중요하게 정리해야 할 일도 많고 요청받은 자료도 한두 개가 아닌 상황에서 드디어 정리를 다 마쳤다고 생각했을 때, 그 일이 결국 발목을 잡았다. 새로운 형태의 일이라 참고할 만한 사례도 없었고 급하게 진행되기까지 해서 시작부터 애를 먹이던 일이었다. 매번 그쪽 팀 협조가 잘 되지 않아 나도 겹겹이 쌓인 건 많았지만, 어쨌든 일이 돼야 하니까 참고 참았다. 서로 중간에 껴서 짜증 나는 상황이니까 이해해 봐야지, 했다. 근데 누가 누구한테 소리를 질러? 나도 더 이상은 못 참는다. 네가 힘들었으면 상대도 그만큼 힘들었을 걸 알아야지, 왜 그걸 몰라! 화가 났다.
목소리에서 풍긴 기백과는 달리 내 마음은 한계였나 보다. 왈칵 눈물이 나올 것 같아 화장실로 향했다. 10년이 넘는 시간 동안 정말 많이 강해졌다고 생각했는데, 다시 화장실이라니. 10년 전과 달라진 게 없는 것 같아 어이가 없었다. 이 상황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이 여전히 이 반 평 남짓한 곳에 쭈그려 앉아 숨죽여 우는 것뿐이라니. 이젠 정말 진저리가 나서 견딜 수가 없다.
M에게 결단의 문자를 보냈다.
“아무래도 나 좀 쉬어야 할 것 같아. 진심이야.”
그는 알겠다고 답장했다.
같은 해 봄, 한 시간 정도의 거리를 내내 울며 나도 내가 왜 이러는지 모르겠다고, 눈물이 안 멈춘다고, 역으로 나 좀 데리러 와 달라고 했던 것을 기억하는 그이기에 거절하기가 쉽지 않았을 것이다. 이미 회사에서 울만큼 울었다고 생각했는데 집 가는 차에 타니 다시 눈물이 줄줄줄 흘러서 아주 애먹었던 날이다. 그날 밤을 새우다시피 하고 고민하다가 그래도 더 버텨보자 했던 것이, 결국 이렇게 다시 터졌다.
회사에선 마음이 뻥뻥 자주 뚫렸다. 그럴 때마다 분노와 환멸과 독기를 뭉치고 뭉쳐서 그 구멍들을 되는대로 메워버렸다. 그래서 이젠 정말 단단한 마음을 가지게 되었다고 생각했는데 구멍 어딘가에 균열이 생겼나 보다.
높이높이 쌓아 올렸던 둑이 싱겁게 터져버렸다. 그리곤 검은 물이 순식간에 차올랐다. 마음이 온통 물바다라 깊고 짙은 물 말고는 아무것도 보이지가 않았다. 그것이 전부였다.
‘더 이상은 이렇게 살 수 없다. 내가 망가지고 있다. 나를 잃어가고 있다. 내가 소모되고 있다.
어쩌면 내가 잘못된 것일지도 몰라. 너무 진심을 다해선 안 돼. 난 거리가 필요해. 지금 당장 떠나야 해.’
내 10년은 1평도 채 되지 않는 화장실 안에서 그렇게 허무하게 정리됐다. 아무리 참고 노력해도, 견딜 수 없는 것은 그냥 견딜 수 없는 것이구나, 체념하는 법을 배웠다.
아마 이 내 깊은 진실을, 나를 대충 아는 직장동료 누군가 보게 된다면, 모두 거짓이라 할지도 모르겠다. 위선 떨지 말라고, 너 멀쩡했지 않느냐고, 강인한 인간이 나약한 척하지 말라고. 사람들과도 잘 어울리고 일도 멀쩡히 했으면서 어디서 불쌍한 척이냐고.
그럼 나는 말하겠지. 원래 인간이란
멀쩡하게 사회생활 잘해놓고는 오늘 그만둘까 내일 그만둘까 고민하고,
말로 사람을 할퀴어 놓고는 그런 내가 싫어 자신을 더 크게 할퀴며,
신나게 놀고 집에 돌아와 현관문 닫고 나서는, 더 살 필요가 있나 생각하는 존재가 아니냐고.
마음의 문제는 철저히 개인의 몫이라 제아무리 강인해 보이는 사람도 그 안에 어떤 마음이 있을지는 누구도 알 수가 없다. 그래서 개인들의 고독이나 연약함 같은 건, 거의 다 망가져 버려서 어찌 손 쓰기도 어려운 상태나 돼서야 알아채게 되는 것 아닌가.
여느 사람들처럼, 사회적 가면 뒤에 진실된 마음을 숨기고 살던 내가 드디어 비명을 질렀다. 더는 못 견디겠으니 떠날 것이다. 버티는 삶은 이제 지긋지긋하다!
그렇게 새하얀 백기를 휘날리며 목적지 없이 떠났다.
내가 떠날 그곳엔 파라다이스가 있을까?
모르겠다. 다만 한 가지는 분명했다.
나는 더는 이렇게는 못 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