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년 난 미국에서 인사관리 석사학위를 취득하고 한국으로 돌아와 외국계 기업에서 인사컨설턴트와 인사담당자로 커리어를 이어갔다. 당시만 해도 해외 석사가 흔하지 않았고 이미 석사 이전에 이분야에 직장 경험이 있었기 때문에 취업과 이직을 하는데 그리 큰 어려움은 없었다. 하지만 취업이 잘 되는 것과 내가 회사에서 적응하는가는 전혀 다른 문제이다.
난 적응하지 못했다.
2015년 가을. 퇴사 후 회사원으로써 커리어를 포기하고 깊은 우울감에 빠진 나에게 10년 동안 연락이 없었던 나의 첫 번째 직장 상사가 찾아왔다. 그는 과거 우리가 함께 일했던 회사와 같은 구조조정과 재취업 지원사업체를 직접 운영하고 있었다. 한 회사의 대표가 된 것이다. 회사는 벌써 8년정도 됐다고 했다.
나는 그에게 도움을 요청하였다. 아니 우리는 서로에게 도움을 요청하고 있었다.
난 그에게 조심스럽게 같이 일할 수 없는지 물었다.
"최근 회사를 그만두고 뭐할지 고민 중에 있었어요. 혹시 같이 일할 기회가 있을까요?
내 상사의 대답은 놀랍게도 매우 긍정적이었다.
"마침 최근에 프로젝트가 많아졌어. 혹시 나와 같이 영업과 상담을 좀 해줄 수 없겠어? 하지만 기본급은 지금의 네가 받는 것에 1/3 밖에 줄 수 없고 그 대신 영업을 성공해 오면 한 건당 성공보수를 줄게"
나는 사실 월급이 그리 중요하지 않았다.
당시 난 창업을 하고 싶었지만 너무 급작스럽게 퇴사를 하는 바람에 엄두도 나지 않았다.
그래서 그의 제안은 매우 매력적이었다. 출근도 자유롭게 하면서 자기 계발도 할 수 있고 영업과 상담 또한 배울 수 있어 나중에 창업을 하게 되면 매우 도움이 될 수 있겠다 싶었다. 또한, 과거처럼 고연봉은 아니었지만 아내에게도 일정한 수입을 가져다줄 수 있어서 나름 괜찮은 판단이라고 생각했다.
"네, 할게요."
나는 인사담당자로 지낸 경험이 있어상담에도 매우 자신이 있었다. 과거에도 수많은 직원들이 내 오피스 문을 두드리고 다양한 스트레스를 말하고는 하였다. 나는 다른 인사담당자들에 비해 직원들의 얘기를 들어주는 것을 매우 좋아했다. 그리고 구조조정을 당한 분들의 스트레스 상담과 재취업 상담은 과거에 해봤던 일이라 그리 생소하지도 않았다.
그렇게 나는 직장인도 아니고 사업가도 아닌 상태로 커리어를 이어갔다.
"기필코 3년 뒤에는 나도 내 사업을 시작하겠어!"
나의 열정은 다시 타 오르고 있었다. 마치 내가 미국에서 대학원을 마치고 한국으로 돌아왔을 때처럼 말이다.
나는 그를 만나고 거의 1주 일 후 일을 시작하게 되었다. 나의 10년간의 인사담당자로서의 커리어는 막을 내리고 사업가가 되기 위한 훈련을 드디어 시작하게 된 것이다.
"어떻게든 되겠지. 이번에는 내 머리가 아닌 가슴을 따라가보자"
나의 선택에 대해 그 누구와도 상담할 수 없었다. 내가 이러한 고민을 털어놓으면 분명 모든 나의 지인들은 미친 짓이라고 할게 분명했기 때문이다. 고 연봉에 외국계 대기업 부장, 그리고 하청업체에 갑질할 수 있는 좋은 자리를 내던지고 왜 저 연봉에 을로써의 삶을 택하냐고 말할 것이 뻔했다. 머리로 판단하면 그들의 생각이 맞다. 하지만 난 더 이상 머리로 판단할 수 없었다.
설령 이 길의 끝이 절망이라고 하더라도 난 도저히 한 회사의 직원으로만 내 인생을 허비하고 싶지는 안 않았다. 난 직업에서의 자유를 원했고 남의 밑에서 시키는 일만 한다면 그 자유는 절대 오지 않는다는 걸 난 깨달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