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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ynt kim Jan 26. 2024

아플 때만큼은 인간의 언어를 사용해 줬으면 좋겠다.

야옹이 예방접종은 월요일에 해야 하는 이유


고양이를 키우기 전에 고양이는  나에게, 눈도 무섭고 손톱도 뾰족해서 조심해야 하는 야생동물, 도심에 사는 호랑이쯤으로 생각했다. 그러나 함께 살아가며 알게 된 고양이들은, ‘도대체! 어떻게 고양이가 야생에서, 길에서 살아갈 수 있는 거지?’라는 의문이 들 정도로 약한 존재였다. 그렇기에 그토록 짧디 짧은 시간을 잠시 머물다 고양이 별로 떠나기도 한다.






고양이는 아파도 티를 내지 않는다. 어딘가 아플 때면 평소보다 잠을 많이 자거나, 더 웅크리고 있거나, 좋아하는 간식을 먹지 않으려고 한다.  그렇게 고양이 엄마들은 관찰력과 촉이 발달하게 된다. 고양이들마다 가지고 있는 특성들과 평소의 루틴을 잘 파악해 두었다고 조금이라도 이상하다면 잘 지켜보았다가 병원으로 뛰어야 한다. 고양이가 고양이라서 불편한 점은 아플 때 어디가 어떻게 아프다고 인간 엄마에게 정확하게 말해줄 수 없다는 점이다. ‘배가 부글부글 아파요,’이런 말.





아기 고양이들이 스스로 정한 잠자리


여름이는 아가들을 나의 사무실에서 낳고 2개월가량을 그곳에서 그대로 지냈다. 아기를 갓 낳았을 때는 새끼를 보호하기 위해서 엄마 고양이들이 무척이나 예민하다고 들었기에 우리가 해치지 않는다는 믿음을 심어주는 것이 우선이었다. 그 뒤에 천천히 준비해서 엄마 고양이인 여름이와 새끼 고양이 4마리를 모두 함께 집으로 데려가기로 계획했다.

기다리고 기다렸던 이삿날, 다섯 마리 고양이 모두 필수 예방접종을 먼저 해야 했다. 고양이들의 필수 예방접종은 총 3차로 끝이 난다. 우리 여름이는 아기는 아니지만, 한 번도 예방접종을 맞지 않은 상태였기 때문에 아기들과 함께 생애 처음 예방 접종을 하기로 했다. 병원에 들어서자 까만 털 엄마 고양이를 필두로 귀여운 아기 고양이들 네 마리가 동시에  “야옹야옹” 난리를 치니 우리가 이 자리의 인기 스타였다. 사실 우리 집 고양이들이 유난히 예쁘긴 하다. 그래서 시선이 갈 수밖에!



고양이에서 아기가 된 날 ‘아기 수첩’

첫 예방접종을 마치고 각각의 ‘아기 수첩’이 생겼다. 우리 집에서 사랑받고 자랄 고양이들이라는 표시 같아서 한참을 들여다 보고 신기해했다. 수의사선생님께서 사람과 마찬가지로 고양이들도 예방접종을 하고 나면 약한 감기를 하듯이 기운이 다소 떨어지고 열이 날 수 있다고 말씀하셨다. 이틀간은 절대로 목욕을 시키면 안 되고 접종 후에 부작용이 발생하는 경우가 있으니 컨디션 변화를 잘 지켜보아야 했다.



발을 동동 굴렀던 새벽을 지나면



주사를 맞은 당일에 여름이를 포함한 다섯 마리 고양이들이 약간의 감기 기운이 있는 듯했다. 다음날에는 얼굴이 조금 부은 듯했지만 가라앉아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아기 고양이 첫째 배찌와 셋째 심바가 심한 설사증상이 있었다. 먹기만 하면 설사를 하고 한참을 야옹하고 울어대니 여름이가 안절부절못해하며 한시도 떨어지지 않고 보살펴 주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설사는 멈추지 않았다. 이제 설사를 하는 것도 지쳤는지 배찌와 심바, 두 고양이가 아무것도 먹지 않겠다고 얼굴을 돌렸다. 얼굴을 들여다보니 아기들 살이 쭉쭉 빠지고 있는 것이 한눈에 보였다.  아기 고양이는 이틀만 먹지 않아도 죽을 수 있다. 그런데 설사까지 이렇게 심하게 하다니 큰 일이었다. 어느 순간, 여름이도 아기 고양이를 포기한 듯 울음소리에 반응하지 않기 시작했고 다른 고양이 둘에만 집중하는 모습을 보였다. 그다음에는 아픈 아기 고양이 둘이서 보이지 않는 구석으로 들어가 숨어서 웅크리고 있었다. 이러다가 아기들이 진짜로 죽겠다 싶어서 우리가 갈 수 있는 병원을 모두 찾아보았다. 하지만 하필이면 이날이 일요일이었고 그 당시 우리 지역에는 일요일에는 운영하는 동물 병원이 없어서 발을 동동 굴리기만 했다. 어서 빨리 시간이 지나서 월요일이 되기를, 이 작은 아기 고양이들이 몇 시간만 더 버텨주기를 바라고 바랐다.


월요일 아침, 병원 문이 열리자마자 접수를 했다. 계속 설사를 멈추지 않아서 혹시 모를 경우를 대비해서 범백 검사도 진행했다. 이게 범백 증상이라면 우리 아가들은 지금 누구보다 심한 고통을 받고 있는 것이었고 사망선고가 내려진 것과 다름없었다. 성묘들도 버티지 못하는 것이 범백이기에 검사결과가 나올 때까지 기도하고 기도했다. 너무 짧은 묘생이니 부디 최악까지는 가지 않게 도와달라고.


정말 다행히, 범백은 아니었다.

심바와 배찌, 수액 주사 맞느라 고생 많았어


그럼에도 불구하고 설사가 너무 심해서 아기 고양이들은 눈에 띄게 체중이 줄어든 상태였다. 식욕도 여전히 돌아오지 않았다. 감사하게도 병원에서는 할 수 있는 처치는 모두 최선을 다해서 해주셨다. 2개월 묘생에 바늘을 몇 번이나 꽂은 것인지, 설사를 멈추기 위한 주사도 맞았고 탈수 증상도 너무 심해서 수액도 맞아야 했다. 그래도 우리 아기 고양이들은 덩치가 큰 편이라서 정말 다행이었다. 이 정도 개월수에는 너무 체구가 작으면 바늘이 들어가지조차 못해 수액도 맞기가 어렵다고 했다. 아가들 팔만한 바늘이 꽂혔고 병원에서 마지막 환묘가 될 때까지 계속 수액을 맞았다.


무사히 돌아왔다고 콩이가 심바를 꽉 안아주었고 함께 꿈나라로! 같은 꿈을 꾸었을까?


다행히도 아기들이 기력이 생기는 것이 확연히 보이기 시작했다. 수의사 선생님께서도 식욕이 돌아오면 이제 안심해도 된다고 하시면서 로얄캐닌베이비 캣 캔을 손가락으로 살짝 집어서 입 앞에 가져다 두었더니! “야옹! 야옹!”외치면서 먹기 허겁지겁 시작했다. 잠깐 기다리면서 혹시 설사가 다시 시작되는지 지켜보았는데 설사도 이제 멈추었다. 정말 다행이었다. 정말 거짓말처럼, 집으로 돌아오자마자 3일간 먹지 못했던 한을 풀듯이 밥을 냠냠하면서 먹었다. 이제 걱정은 내려두고 다시 흠뻑 귀여워하며 사랑해 줄 수 있게 되었다.




배찌와 심바, 이 둘만 이렇게 심하게 아프게 된 이유를 찾아보자면.

사무실에서 지내던 때, 비가 억수로 쏟아지는 날 여름이가 화장실을 쓰러 나갔다가 비에 쫄딱 젖어서 돌아왔다. 엄마 고양이인 여름이의 껌딱지였던 배찌와 심바는 엄마를 돌보아주겠다고 그 흙탕물과 비를 뒤집어쓴 여름이를 밀착 구르밍해주었다. 아마도 이것이 문제였을 것이다. 면역력이 약한 탓에 장에 문제가 생겼고 크게 눈에 띄는 문제가 없어서 눈치채지 못하고 예방접종 주사를 맞혀서 심한 장염을 앓게 된 것일 거다. 마치  감기에 걸렸을 때 독감 예방주사를 맞으면 문제가 생기는 것처럼! 그리고 이 이후부터는 예방접종은 무조건 월요일이나 화요일에 간다. 혹시 모를 불상사를 대비해서.






엄마가 무지해서 3일이라는 그 긴 시간 동안 아기들이 너무 고생을 했다. 온전히, 혼자서만 3일을 견디게 해 버렸다.

포기하지 않고 견뎌주어서 고맙고, 지금 내 옆에서 배를 드러내놓고 잠자는 모습을 보여주어서 고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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