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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ynt kim Jan 05. 2024

잠 못 드는 밤 나의 안부가 궁금한 나에게

내 기분이 20점이어도 나는 괜찮다.


요즘은 어떤가요?


나에게 ‘요즘은 어떤가요?’하고 물어본다면, 나는 당연하게도 괜찮다고 말한다.

의사 선생님이 물었다. 오늘의 기분은 몇 점인가요?라고. 그게 무슨 말인지 몰라 다시 한번 되물었다. 행복하다는 기분을 100점으로 두고 오늘의 기분은 몇 점이냐고 친절하게 다시 물어봐 주셨다. 나는 20점이라고 답했다. 그 순간 선생님께서 놀라는 기색을 보이셔서 내가 잘못 답한 것 같아 마음이 쓰였다. 하지만 아무리 곰곰이 생각해 보아도 내 기분은 20점을 넘어가 본 적이 없는 듯하다. 그래도 지금은 기분이 많이 나아진 편이라 ‘나 이제 많이 나았나?’라고 스스로 생각한다. 예전에는 -300점이었으니 말이다.




나조차 알지 못하는 나의 감정을 눈치채주는 고마운 이들은 나의 작은 우울감을 경계한다. 느닷없이 찾아든 이유 모를 불안감에 며칠간 밤잠을 설친다고 해도, 갑자기 과거의 어느 순간에 매몰될 때가 있다 해도, 아직 나는 꿋꿋하게도 살아가고 있는데 말이다. 또한 다행히도 지금은 딱히 죽을만한 이유도 없다. 그러니 나를 걱정할 필요는 없다.




누군가 나에게 말했다. 모두들 그렇게 산다고. 다들 행복해서 사는 건 아니라고. 자신 또한 그렇다고 말했다. 그리고 자연스러운 수순으로, 서사 가득한 자신들의 사연을 늘어놓는다. 어느 누구도 나의 무미건조한 일상에 관심이 없듯이 나 또한 당신의 굴곡 많은 사연에 그리 관심이 없는데 말이다. ‘너는 인생을 몰라서 그래’라고 끝나는 사연들에서, 다른 건 몰라도 정확히 직시하고 있는 하나. 누군가의 감정이 섞인 사연은 사무치게 버겁다는 것이다. 수능 외국어 영역 2점짜리 문제인 ‘이 글의 분위기‘나 ‘화자의 심정이 어떠한가?’를 묻는 문제를 해석을 모두 해 놓고도 항상 틀렸던 나로서는 감정이 섞여있는 일들은 항상 어렵다. 어쩌다 보니 심적으로 빠르게 성장해야 하는 환경에 놓여있다 보니 감정을 해석하는 방법을 길러낼 시간이 적었을 수 있다. 그로 인해 감정을 온전히 이해한다는 것은 애초에 나에게 존재하지 않았던 능력일 수도 있겠다. 하지만 누군가는 훌훌 털어버린, 버려진 감정들의 찌꺼기는 결국 나에게 남아 차곡차곡 쌓이는데 그 무게가 생각보다 무거워서 결국 온전히 감당하기 어려워진다. 고로 나의 공허하고 느린 이 일상도 누군가에게는 짐이 될 뿐이다. 나의 삶은 오롯하게 내가 지탱해야 하는 몫이기에 이 무게를 이겨내지 못한다면 결국은 긍정적이지 못하고 나약한 정신을 가졌던 내 탓일 것이다.




나는 해가 뜨는 아침이 오는 것을 싫어해서는 안되고, 멍하니 침대에 계속 누워있기만 해도 안 된다. 식사를 걸러서도 안되고 하루에 한 번 운동도 게을리해선 안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무기력함이 나를 지배한다면 억지로라도 몸을 일으켜 카페라도 가겠다. 말이 잘 통하는 친구를 만나 파슬리를 더한 파스타도 먹어 보겠다. 자, 이 것들을 다 했다면 이제 내가 뭘 더 하면 될까. 새로운 취미라도 가져 봐야겠지. 그리고 삶의 의미도 찾아야 한다. 모두가 한결같이 말하는 솔루션을 잘 수행하고 있으니 맥주 한 잔과 함께할 안주로 나를 올려두고 도마질하지 않기를 바란다. 덧붙여 모두의 행복에 방해가 되지 않으려고 조용히 애쓰고 있으니 부디 나의 안부를 물으며 나의 기분이 20점인 이유를 찾기를 권하는 것도 멈추었으면 한다. 나는 내가 힘을 내야 한다는 걸 이론적으로는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으며 그에 따라 무엇인지 모를 긍정적인 생각을 해보려고 무진장 노력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 이 순간에도 앞으로의 내 삶이 그리 아쉽지는 않다. 다들 나와 같이 산다는데, 왜 결론은 항상 다른지 모르겠다. 역시 나는 나만 이해할 수 있는 것이겠지.

하지만 난 고양이가 많다. 책임져야 할 따뜻한 생명들이 있다는 말, 그것도 많다는 것이다. 나는 고양이들을 배불리 먹일 밥도 사야 하고, 하루 한 번 삶의 의미를 부여하는 간식도 사야 하고, 고양이들의 삶의 질을 좌우한다는 좋은 모래도 사야 한다. 자금 여유가 있으면 스크래쳐도 바꿔줘야 한다. 매일매일 제시간에 밥도 주고 간식도 주고 놀아주고, 똥도 치워져야 건강하고 행복하게 오래 살 수 있다고 해서 강제로 규칙적으로 살고 있다. 최근에는 아기 고양이가 나의 품으로 들어왔다. 1주밖에 안된 꼬물이에서 지금은 3개월이나 되었다. 아직 이갈이를 하지 않아 영구치도 나지 않은 어린이 냥이다. 아직 유치를 가지고 있다니 너무 귀엽지 않은가? 가장 나이가 많은 고양이는 8살인데 그래도 내 눈에는 나의 모든 고양이가 아기 같다. 영원한 나의 아기들, 고양이는 고양이라서 좋다. 다 커서 학교를 갈 필요도 없고 경쟁할 필요도 없고 마음에 맞지 않는 이들과 꾸역꾸역 어울릴 필요도 없다. 이런 이유들로 나는 고양이가 때때로 부럽다.


나의 고양이들의 행복을 기도해주세요.


진정 나의 안부가 걱정이 된다면, 나가서 사람들을 만나보라는 권유보다는 나의 고양이들이 부디 건강하기를 행복하기를 기도해 주는 편이 나에게는 더 와닿을 것이다. 지금 내가 바라는 일은 오직 나의 고양이들이 행복하기를, 건강하기를, 좋은 꿈 꾸기를 바랄 뿐이니까.


여느 때처럼,
나는 평범한 일상을 살아갈 것이다.
 
언제나처럼
모두의 일상이 무탈할 수 있도록.

‘나’로 인해
누군가의 행복이 방해되지 않도록,
아무것도 하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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