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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암과 탈모, 머리에 대한 고찰(머리카락 변천사)

힘든 시간 견디고 다시 자란 고마운 머리카락!

by 타샤 용석경

항암 치료를 경험한 이상 빼놓을 수 없는 머리 이야기. 병동 언니들과는 우스갯소리로 “머리 한 번 안 밀어 보고 어딜 감히~”라고도 했다. 그만큼 머리를 민다는 것, 대머리가 된다는 건 외모에도, 마음에도 데미지가 컸다. 오죽하면 여자의 아름다움은 옷빨도, 화장빨도 아닌 머리빨이라고 외쳤을까.


머리카락이 비단 여자뿐 아니라 인간으로서 갖는 의미를 밀어보고서야 알게 되었다. 더욱이 자의가 아니라 비자발적으로 밀린 거니까. 마치 보여서는 안 될 부분을 남한테 보이는 벌거벗은 느낌이랄까. 병원에서 문어족과 함께 있다가 집에 돌아온 뒤에 느낀 묘한 이질감과 위축감. 평소에 잘 지냈지만, 한 번씩 이런 감정은 훅 찾아왔다.


삭발 후 거무스름하던 머리가 점점 만질만질해지더니, 이마와 머리의 경계가 없어지고, 어느 순간 두피가 아닌 피부가 되고, 검은 머리의 짐승이 아닌 살색 머리가 되는 경험이란. 또한 놀랍게도 어느 순간 민머리에 완벽하게 적응한 나를 발견했다. 머리를 감는 행위란 존재하지 않는다. 세수하면서, 샤워하면서 쓱~ 심지어 머리에도 샴푸가 아닌 클렌징폼을 사용하기도 했다. 내 피부는 소중하니까!


진단 직후, 어깨 아래 웨이브에서 단발로 변신

드라마에서 본 건 있어서, 비장한 마음으로 단골 미장원에 가서 치렁치렁한 웨이브를 몽실이 단발로 싹둑 잘라냈다. 단발로 자르고 돌아오는 길 차 안에서 엄청나게 울었다. 그랬는데 민망하게도 임상실험과 수술로 이어진 긴 시간(6개월) 동안 훅 자라서 다시 손질을 해야 했다. 나름 웨이브보다는 단발이 감기도, 말리기도, 손질도 훨씬 편했다. 난 원래 짧은 머리가 잘 어울리니까!(자뻑 가득)


1차 항암 14일 차, 귀여운 까까머리

엄마 뱃속에서 나온지 40년 만에 삭발을 했다. 아, 돌 즈음에 엄마가 머리숱이 많아지길 바라는 소망을 담아 아기 빡빡이를 만들어 주긴 했었다. 만질만질 번쩍거리는 대머리를 기대했건만, 두피보호를 위해 0.5밀리미터로 머리를 남겨 놓아서 영락없는 70년대 까까머리 남학생이 되었다. 비록 머리가 밀리는 건 서글펐지만, 그 덕에 내 몸뚱이에 유일하게 서양인을 닮은 이쁜 두상을 발견했다. 까만 기운이 가득해서 아직까진 빠박이보다는 개구쟁이가 된 느낌


샤프심과의 전쟁, 듬성듬성 황무지의 잡초

개구쟁이 같다며 좋아하기 며칠을 못 가서 정신없이 빠지기 시작한 머리. 0.5밀리미터의 무수한 샤프심들은 베개, 이불, 옷, 바닥 여기저기 흔적을 남겼다. 뜻 모를 승부심에 불타올라 샤워 때마다 손으로 머리를 밀었다. 무수한 노력 끝에 빠질 건 다 빠지고, 승리감에 만족하려던 찰나. 그 와중에도 살아남은 머리들이 듬성듬성 마치 황무지 속의 잡초 마냥 자리 잡고 있었다.


무엇보다 충격적인 건 내 머리의 삼팔선. 진단 직후 비타민디를 많이 쬐어야 한다는 일념으로 가득 찼다. 무모하게도 얼굴에도 선크림을 바르지 않고 매일 햇빛이 가장 센 오후시간에 두세시간을 걷고 산에 올랐다.(햇빛은 팔과 다리로 쐬자. 얼굴은 지켜야 한다.) 머리카락이 있을 때는 미처 몰랐는데 빠지고 보니 새까만 얼굴과 하얀 두피의 경계선이 선명하다. 하... 그렇게 얼굴과 머리는 얼룩덜룩, 머리는 듬성듬성 잡초의 흔적이 남았다.


항암 치료 중, 흰머리의 강한 생명력의 발견

어느 날 아침 세수를 하다 거울을 보았다. 군데군데 힘차게 자라면서 삐쭉 솟아 나온 흰머리가 보인다. 항암 약에 취해 비틀거리는 까만 머리와는 느낌부터 다르다. 어랏. 흰머리를 살짝 잡아당겼지만 꿈쩍도 하지 않았다. 오호라! 몇 개 더 시도했지만 마찬가지였다. 예전에는 어떻게든 악착같이 자르고 염색으로 가리던 흰머리. 이 독한 항암 약을 이겨내고 꿋꿋이 자라나고 있다니. 그 생명력이 감동스럽기까지 하다.


다만 여기서 자란다는 개념은 흔히 생각하는 머리카락처럼 길게 늘어지는 게 아니라, 안테나처럼 뾰족 솟아 올라온 상태다. 흰머리 한 가닥만 길게 늘어진 기괴한 모습을 상상하면 안 된다. 한 가운데 흰머리 안테나를 장착한 머리. 치료를 마치면 흰머리도 사랑할 것이다.

“그동안 미안했어. 절대로 널 가리거나 부끄러워하지 않을게. 잘 이겨내 줘서 고마워.”


막항 6주 차, 셀프 삭발로 새 머리카락 맞을 준비 완료

안테나 같은 흰머리는 좀 더 자라 잘 익은 벼처럼 살포시 고개를 숙였다. 아직 항암 중이니 머리가 자랄 리 없건만, 딸 사랑에 눈먼 엄마는 자꾸 뒤쪽에 까만 머리가 올라오고 있다고 한다. 엄마의 희망과 의욕치가 가미된 듯. 부쩍 내 머리만 보면 안쓰러워하는 엄마. 날 때 되면 날 거라고 걱정하지 말라고 해도 항상 머리만 쳐다보신다.

막항을 마치고 한 달반쯤 후에 정갈한 머리카락 및 머리숱이 많아지기를 기대하며 셀프 삭발을 했다. 한 번 밀어주면 더 단정하게 자라긴 하지만, 머리숱의 차이는 전혀 없으니 그냥 선택의 문제다. 이제 약은 그만 들이부을 테니 상처 후 새살처럼, 봄을 맞은 잔디처럼, 차츰차츰 소복하게 머리카락이 자랐으면 좋겠다.


막항 5개월 차, 시간이 약이더라.

온통 머리카락에 쏠렸던 나의 관심. 머리카락에 좋다는 영양제를 구입하고, 치료 후 탈모로 힘들어하는 글을 보며 불안해했고, 숱도 적고, 가늘고, 스트레스에 바로 반응했던 터라 걱정이 많았다. 하지만 모든 건 시간이 해결해주었다.



나의 머리는 쑥쑥 자라서 어느새 ‘청년’ 같은 느낌이 났다. 치료 전보다 숱은 더 많아졌고, 빽빽하게 반곱슬로 자랐다. 센언니 컨셉을 하고 싶었지만 안타깝게도 둥글둥글한 이미지와 매칭이 안 되었다. 참직모였던 머리카락이 신기하게 곱슬머리로 자랐다. 나중에 다시 원래 모질로 돌아온다고 하니 기다려보기로. (8개월차까지도 곧아질 기미는 보이지 않는다.)


이즈음 나의 머리는 나뿐만 아니라 모든 가족의 관심사였다. 내 사랑 이삐(딸아이)는 내 머리가 잔디 인형 같다며 귀여워했다. 좀 더 머리가 자라자, 보기에는 고슴도치처럼 깔끄러울 것 같은데, 만지면 너무 보드랍다며 종종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엄마는 어느 날 갑자기 꿈에 내가 예전처럼 찰랑찰랑한 단발머리로 나타났다며 어찌나 예쁘던지 눈에 선하다고 하셨다. 날 볼 때마다 머리를 매만지면 어쩜 이렇게 잘 자라냐고, 얼른 자라라며 주문을 불어 넣어주신다. 아직은 한참 짧은데도 이미 숏커트 느낌이 물씬 난다며 나보다 더 자신감이 뿜뿜하신다. 시크한 아들, 아무 관심도 보이지 않지만 나는 안다. 대머리 엄마여도 싫은 내색 한 번 안 한 것만으로도 참 따뜻하고 착하다는 걸! (내 눈에 콩깍지)


대망의 남편. 무뚝뚝한 경상도 남자지만 빠박이 마누라를 보는 마음이 어땠을지. 생전 내색하지 않더니만 머리가 조금 자랐을 때, 언뜻 지나가는 말로 외국 여자가수 같다고 했다. 영국과 음악을 사랑하는 그가 말한 이름을 알아들을 수 없던 나. 느낌적으로 몇 번을 쫓아가서 다시 묻고 확인을 했는데 두둥. 그 이름은 바로 ‘시네이드오코너! 까까머리가 이렇게 지적이고 멋스럽게 잘 어울리는 미인이라니. 순간 입이 귀에 걸린 날 보고, 남편이 뒤늦게 “그게 아니고 머리만”이라고 외쳤지만 이미 늦었다. 나는 안 들을 거니까.


나에게도 머리카락이 생긴 걸 실감한 감격스러운 순간들

1) 이마가 생겼다. 두피의 재발견

머리카락이 나면서 얼굴과 머리에 경계가 생긴 덕에 이마가 생겼다. 어느 날 검은 티셔츠에 떨어진 하얀색 가루(각질이라 쓰고 비듬이라 읽는)를 발견한 그 기쁨.


2) 드라이 샴푸 사용 불가

항암 때 장만한 고가의 건식 샴푸, 헛, 그런데 이제 머리카락에 다 묻어서 두피에 바를 수가 없다. 올레!


3) 심지어 정전기도 난다. 따닥!

꽤 쌀쌀한 날씨에 도톰한 맨투맨 티를 머리에 끼워 넣는데 갑자기 들리는 소리. ‘따다닥’ 감격스럽다.


4) 이제 드라이기가 필요해!

불과 10초지만 자신감 뿜뿜.


5) 똑딱삔도 꽂을 수 있다.

혹시나 하고 집어 든 딸아이의 분홍색 똑딱삔. 매달려 있는 수준이긴 하지만 일단 머리에 고정이 되었다! 분홍 삔 꽂고 분홍 립스틱 바르고 고고씽~


막항 10개월 차,

7개월 차에 대망의 탈모자를 감행했고, 이제 막 10개월 차에 접어든 현재. 나의 머리는 그 어느 때보다 더 곱슬곱슬, 사자머리가 되고 있다. 아침에 눈 뜨면 아톰처럼 높이 솟은 머리. 머리를 감고 젖으면 얌전해지는 것 같지만 어느새 또 끝자락이 힘있게 말려 올라온다. 손질도 하지 않아 덥수룩하기 그지없다. 왠지 지금 손질하면 영영 긴 머리를 못 할 것 같아서 참아본다.


사자머리가 되니 얼굴이 왜 이렇게 커 보이는지. 개그맨 윤택님 느낌이 물씬 난다. 언제 또 해보겠는가. 태어나서 첫 곱슬머리. 나름대로 손질도 따로 되고 알아서 각자 개성 있게 웨이브까지 생기니 딱 이다. 머리숱이 적어 고민인 친오빠가 이런 날 볼 때마다 신기해하며 부러워한다. 부럽지? 부러우면 한 번 밀어보든가~


날이 더워져 옷장 정리를 하다 보니 눈에 띄는 모자. 많이 사지 않았는데도 꽤 여러 개가 있다. 봄, 여름, 가을, 겨울 1년을 모자와 함께 지냈으니까. 하나를 꺼내어 눌러쓰는 순간 항암 때의 기억이 떠올랐다. 채 1년도 되지 않았는데 먼일처럼 느껴지는 기억들. 머리카락이 자라는 만큼 나의 아픔도 아물어 가나 보다.


암 진단 후 이전에는 미처 몰랐던 것들에 대한 고마움을 느끼게 된다. 머리카락도 그중 하나. 살면서 머릿결이 좋다거나, 숱이 많다거나 하는 게 아니라 그냥 머리카락이 있다는 것에 감사해본 적이 있는지. 흰머리여도, 숏커트여도, 이제는 머리가 살색이 아니라 검은색이라는 것 자체에 감사하다. 제법 머리가 자라고 보니 흰머리가 꽤 많다. 흰머리에 대한 애정과 경의를 표했건만, 막상 또 길어지니 조금이라도 어려 보이고 싶은 욕구가 꿈틀댄다.


흰머리야 미안, 내 마음은 갈대인가 봐.


* 이 글은 22년 출간된 <유방암이지만 괜찮아> 내용 중 일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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