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산 세우기

by 정수TV

밤에 유튜브를 이리저리 보면서 시간을 보내고 있다. 그런데 교사 고독사란 부분에서 멈칫했다. 영상을 클릭해 보니 나와 같은 초등학교 교사였다가 퇴직 후 아내와 사별, 퇴직금은 마치 당연한 각본처럼 날리고 노숙자로 2년간 사시다 고독사를 하셨다고 한다. 충격이 아닐 수 없었다. 그 영상을 찍었던 대학생도 나중에 자기 일이 될까 봐 걱정스럽다는 표정이었다. 사실 나도 그랬다. 대학생 때 가깝게 지냈던 동기 들끼리 만든 인터넷 밴드에 항상 등장하는 글은 이제 몇 년 남았다는 것이다. 나도 단순 계산해 보니 이제 13년 남았다. 나는 과연 퇴직 후에 무엇을 하며 지낼 것인가? 신기하게도 얼마 전 도서관에서 책을 한 권 빌려 읽었는데 퇴직 후의 경제활동이 얼마나 중요한가에 대한 이야기였다.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퇴직 후의 삶이 엄청나게 길다는 이야기고 그 기간에 막연하게 연금이나 퇴직금으로 살기에는 정말 빠듯하다는 이야기였다. 꼭 경제활동을 해야 된다고 했다. 나도 이 말에 동의한다. 나의 퇴직금은 이미 어떻게 쓰일지 정해져 있다. 아마 부동산에 묶여 은행 대출금을 갚는데 쓰일 예정이다. 아마 직장인 99%가 이럴 거 같다. 아마도 우리와 같은 세대는 나를 위한 삶이 아니라 나의 다음 세대를 위한 삶이기 때문이다. 나도 거기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요즘 MZ세대와는 교육과정 자체가 다르다. 현재의 즐거움은 MZ가 맞고 미래의 즐거움은 우리네 기성세대가 어울린다.

요즘 연말이라 그런지 내년도 예산을 세워야 할 일이 있었다. 나는 미리 준비하고 있었다. 내년에 어떠한 교육사업으로 아이들과 즐겁게 지낼지 이미 계획이 있었다. 그래서 예산을 세우는데 며칠 정도 공과 시간을 들여 예산서를 꼼꼼하게 작성했는데 결재과정에서 모두 삭감되고 말았다. 학교 전체예산이 줄어 어쩔 수 없다는 이야기지만 왜 내 예산만 삭감되는 건지 마음으로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날부터 잠도 안 왔고 얼핏 잠이 들었는데 악몽에 시달려야 했다. 올해 하고 싶었던 사업에서 예산이 부족하여 못했는데 그걸 내년에 반영하고자 예산이 절실히 필요했다. 그렇게 뒤척이다 아침에 일어나 보니 얼마나 힘들었는지 눈이 빨갛게 충혈되어 있을 정도니 이번 예산 건이 나에게 얼마나 충격이었는지 알 것 같았다. 나는 평소에 친하게 지내던 분들과 답답한 마음을 토로했는데 돌아오는 대답은 의외였다.

"선생님, 나중에 무엇을 할지에 집중하세요"였다. 마치 잘 짜인 각본과 같은 상황이었다. 내가 읽었던 책, 유튜브 내용 그리고 예산이 하나의 관통하는 메시지는 같다. 관연 나는 무엇을 하고 살 것인가? 지금처럼 글을 쓰며 살 것인가? 아니면 내가 좋아하는 유튜브? 이런 생각들을 하며 지내는 게 더욱 유익할 듯싶다. 이제 직장생활은 점차 저물어가는 듯싶다. 그걸 받아들이는 것은 나의 몫으로 여겨진다.

그렇게 며칠이 흘렀다. 어느 선생님께서 급한 개인사정이 있어 어느 수업을 한시간 해달라고 부탁하였다. 그 반은 사실 평소에 민원이 있는 반이라 피하고 싶었지만 선생님의 사정이 있는 듯하여 수락했는데 역시나 수업시간에 아이들은 말 안 들었고 내가 그러면 안 된다며 큰 소리고 뭐라고 했다. 그랬더니 역시나 오후에 어느 아이의 아빠가 전화가 와서 한참을 따졌다. 아이에게 소리를 질렀다며 그래도 되냐?였다. 그때의 상황을 설명해도 아이가 받은 상처가 크다며 본인이 하고 싶은 이야기를 피력하였다. 나는 그 부분은 사과를 했다. 그랬더니 이렇게 했다고 해서 내가 마음의 상처를 받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말하며 마무리를 지었다. 나는 참 별의별 일이 다 있다고 생각 들고 전화를 끊는 순간 깨달았다. 나의 예산요구는 바로 아이들을 위한 것이었다. 아이들과 밴드를 운영해보고 싶었고 웹툰 교실을 운영해 보고 싶었고 체육 물품 고장 난 것을 수리하고 싶었고 추운 날씨에 아이들이 체육관에 들어왔을 때 춥지 않게 해 주려고 기존 것 보다 빠르게 온도가 올라가는 온풍기를 추가로 구입하고 싶어 예산을 짠 것이다.

나에게 아이들에게 소리 질렀다고 따진 아빠는 알까 싶다. 내가 진정 아이들을 위해 이것 때문에 밤잠을 설쳐가며 고민했다는 것을, 그리고 예산이 세워지지 않은 이유가 어디에 있는지 알았다. 바로 학부모의 민원이 있었기에 도와주지 않는 것이었다. 세상 어느 누가 이렇게 하는데 예산을 세워주겠는가?




이전 11화영원한 것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