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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재유 Mar 12. 2023

나의 해방일지

집에 TV도 없거니와 대중매체(?)에 관심이 그리 없는 나에게 주변에서 간혹 드라마를 추천해 주는 이들이 있다. 그때마다 보고싶다는 생각이 가끔 들기도 하지만 실행으로 옮기는데까지의 성공률은 그리 높은편이 아니다. 제목이 주는 느낌과 간략한 줄거리 그리고 추천인이 말하는 그 느낌들이 음... 나의 뇌 회전속도? 내 심장 박동의 높낮이? 뭐 그런 것들과 톱니바퀴 물리듯 자연스럽게 맞물려야만 행동으로 옮겨지게 되는 것이다.  

   

지금 나는 ‘나의 해방일지’를 보고있다. 

이제 중반 정도에 이르렀기에 어떤 정점을 찍을지, 어떤 결말에 이르는지 전혀 모른다. 그저 ‘해방’이라고 하는 단어가 주는 해방감을 느끼며 ‘나의 해방일지’를 함께 쓰고 있을 뿐이다.

누구의 마음에나 자신만의 벽은 있다. 그 벽이 밖으로까지 삐져나와 누가봐도 느껴지는 벽을 가진 사람도 있고, 언제나 적극적이고 밝은 모습이라 벽 같은건 전혀 없을 것처럼 보이는 사람도 있다. 하지만 결국 우리는 누구나 자신 앞에 있는 높은 언덕을 숨을 헐떡거리며 올라가는 순간이 있다. 누군가는 그 벽을 숨기려 하고, 또 누군가는 없는 척을 하겠지만 말이다.

그래서 우리는 ‘인간’이라는 같은 ‘종’이 아닐까싶다. 그 사실은 종종 나에게 아주 큰 힘을 준다. 어차피 우리는 같은 ‘인간’일 뿐이라는 사실이 위로가 될 때도, 희망이 될 때도 있다. 

참 다행이다.     


내 마음속에도 벽들이 참 많다. 그저 가볍게 사뿐히 한 걸음 앞으로 내딛기만 하면 되는 일들에 좀체 발을 떼지 못하게 만드는 그 단단한 벽 말이다. 세상이 내게 만들어준 벽이라고 슬쩍 책임전가 하며 살아왔지만 결국 그것은 내 마음속에 내가 만든 벽이었다는 것, 내 마음속에서 만들어진 것은 분명 나만이 할 수 있는 영역이라는 것, 이제는 안다.

     

어떤 분야에선 참 느렸다. 누군가는 하고싶은 것이 생기면 몇 달만에 또는 몇 년만에 배움이 일어나 금새 프로가 되는 듯 보였는데 나는 늘 재능이 없는지, 열정이 없는지 제자리걸음만 하곤 했다.

20대에 수영을 배웠다. 꾸준하게 배운건 아니었지만 수시로 강습까지 받았으나 10년이 지나도 25m 가는 것조차 숨이 가쁘고, 바다 수영은 엄두도 못낸다. 30대엔 요가를 배웠다. 원래 유연성이 그리 없기도 하지만 참... 영~ 폼이 안난다. 우아한 여유로움을 꿈꾸었지만 뭉툭한 근육과 사투를 벌이는 우스꽝스러운 자세는 아직도 그대로다. 

그런 일들로 인해 나는 스스로 내 마음속에 벽을 만들었던 것일까?

1, 2년도 아니고 1,20년도 아닌 긴 세월을 살다보면 자신을 지키기위한, 세상 속 일원이 되기위한 자연스러운 벽들이 필요할지도 모른다. 그 자연스러운 흐름이, 깨지고 갈라진 콘크리트 벽이 아니라 어두운 심해를 아름답게 수놓는 산호초 같은 벽이라면 얼마나 좋을까?     


요가 매트를 폈다. 어디선가 본 적있는 발레리나의 모습을 떠올리며 내 몸 구석구석을 어루만졌다. 매트 위에 편안하게 앉아서 다리를 쭈욱 뻗어 최대한 양옆으로 밀어냈다. 음... 분명 45도 이상은 벌어진 것 같다. 등을 최대한 굽히지 않으려고 애쓰며 오른쪽 발끝을 몸쪽으로 당겨 두손으로 잡았다. 편안하게 호흡을 하려고 신경을 쓴다. 그런데... 정말 편안하다. 호흡이 자연스러워 지자 골반에서부터 발뒤꿈치로 연결되어있던 근육을 꽉 잡고있던 무언가가 툭 하고 떨어지는 느낌이다. 허벅지, 종아리, 발목이 시원하다. 처음으로 느껴보는 해방감이다. 

이 느낌을 이어가 오늘은 명상으로 고요하게 마무리해 볼 작정이다. 가부좌를 하고 두 눈을 감는다. 영상에서 흘러나오는 평온한 목소리가 마음에 든다. 다시한번 나의 머리, 눈, 코, 입, 가슴을 어루만진다. 다음은 내 등을 지탱해 주는 곧게 뻗은 척추를 느껴본다. 갑자기 눈앞이 섬뜩하다. 등쪽이 투명해지면서 나의 척추가 선명하게 보인다. 일자모양을 상상하고 있었는데 아름다운 굴곡을 가진 장엄한 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여전히 느껴진다 그 장엄함이.

해외이동학습을 준비하며 아이들과 수영강습을 받는 중이다. 내가 수영을 할 수 있는 건지 아닌지 나는 아직 모른다. 강사선생님이 할줄 아냐고 묻길래 집게손가락에 엄지를 올려 ’쬐금‘이라고 대답했다. 강습 2일차, 선생님이 잘한다고 칭찬해 주셨다. 그제서야 '아 내가 수영을 할 줄은 아는구나' 하고 생각한다. 그렇게 생각하니 자신감이 생기고 갑자기 실력이 느는것 같다.  아, 자유롭구나. 

    

평범한 일상속에서 순간순간 이상한 일들이 일어난다. 

내 마음의 벽에 생긴 균열이 쩍쩍 소리내며 폭을 키운다. 그 뒤에 숨어 있던 산호초가 보일 듯 말 듯 하다. 

짜릿한 요즘이다.

그저그런 제자리걸음이 아니었다. 나의 기초체력을 한껏 올려주는 시간이었다. 그 시간이 있었기에 오늘의 짜릿한 경험이 있는 것이리라.

또 오늘의 한 걸음이 10년 뒤, 20년 뒤에 어떤 짜릿함을 전해줄지 기대된다. 

오늘 나의 한 걸음, 한 번의 호흡, 한 줄의 독서, 한 마디의 대화가 참으로 소중하게 다가온다.

그것은 ’벽‘이 아니었다. 

더 높이, 더 멀리 바라보고 느낄 수 있게 해주는 디딤돌이었다.   


이 아침 햇빛이 어떻게 

내 가슴속으로 들어왔는가?

아침 새의 노래가 어떻게

이 동굴의 어둠을 부수었는가?

누구도 그것이 어떻게 일어났는지 알지 못한다.

그러나 내 영혼은

수 세기의 잠에서 깨어났다.


- 라빈드라나트 타고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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