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 집 밖에 몰랐던 나는 세상이 이렇게 넓고, 이렇게 다양한 사람들이 살아가는 재미있는 곳임을 그때서야 알게 되었다. 그래서였겠지? 나는 이제 막 태어난 아기 고양이마냥 눈을 휘둥그레 뜨고 이곳저곳을 둘러보며 막무가내로 여기저기 쫒아다니며 지낸 것 같다. 돌아보면 절대 기억하고 싶지 않은 수많은 악몽들도, 또 생각만 해도 가슴이 저려오는 설레는 순간들도 참 많다. 그때 그 시절을 생각하는 지금 나도 모르게 또 가슴이 뛴다. 그 시절은 그래서 참 잊기 힘든 귀한 시절이다.
그중에서 지금까지도 나에게 영향을 미치고 있는 가장 의미 있는 순간을 꼽으라면 단연코 학과 학생회 활동을 하면서 사회문제에 조금씩 관심을 가지게 된 것이라고 말할 수 있겠다.
졸업을 하고 사회생활을 하면서도 그리고 결혼을 하고 새로운 일상을 살면서도 한시도 나의 가슴 한 곳에서 떠난 적 없는 어떤 마음이 있었다. 일명 IMF 세대였던 나는 졸업과 동시에 척척 취업을 하던 선배들과는 달리 '아프니까 청춘이다'의 1세대로서 힘든 취준생 시절을 보내야 했다. 그 와중에 학생회 활동에 누구보다 진심이었던 몇몇 선배들은 알바생 정도의 급여를 받게 되는 시민단체 등에 바로 취업을 하는 것 이 아닌가. 하지만 나는 그럴 수 없었다. 어렵게 뒷바라지해 주신 부모님에게 차마 못 할 짓이어서였을까? 아니면 돈 많이 버는 친구들 앞에서 초라해 보이는 자신이 싫어서였을까?
그 시절 나는 참 보잘것없는 존재였다.
그렇게 정의를 외치던순수함, 열정, 사랑... 그런 것들과는 점점 멀어져 갔고, 내 마음 한 구석에는 어떤 부채감이 자리잡기 시작했다. 경제활동을 하고 있고, 아기를 낳아 기르고 있으니 분명 이 사회의 선순환에 작은 역할을 하고 있다고 끊임없이 스스로를 위로하며 그 부채감과 동거를 해야만 했다.
마흔에 도시 생활을 정리하고 시골에 살면서 조금 덜 환경을 파괴하는 사람으로, 아이들이 조금 더 행복한 어른으로 성장하도록 돕는 사람으로 살아가려고 애쓰는 것은 바로 그 시절의 부채감 때문이었으리라.
20년 전의 내가 20년 후의 나를 만든 것이 분명하다.
짙은 초록빛 나무들 속에 넓게 펼쳐진 풀밭 위를 신나게 뛰어노는 아이들을 보며 나는 알았다. 내가 꿈을 이루었음을. 드디어 입으로만 떠들던 그 시절의 나보다 조금은 더 나은 내가 된 것 같았다.
그래, 생각과 말과 행동이 일치는 삶이야 말로 내가 진정으로 바라는 바야!
바로 그때 커다란 파도가 내 가슴속에 있는 무언가를 싹 쓸어가 버리는 듯한 쓸쓸함이 몰려왔다.
이제 목표를 달성했구나!
그럼 이제 나는 어디를 향해 달려 가야 한단 말인가? 갈 곳이 없으니 굳이 가지 않고 멈춰 있으면 되는 걸까? 지금까지 늘 무언가를 꿈꾸고 갈망하며 살아온 삶이었구나. 오랫동안 꿈꾸던 것을 이루고 나니 이제 무엇을 해야 하나 허망하기까지 했다.
심호흡을 몇 번 하고는 가만히 나를, 주위를 돌아보았다. 어디선가 아이들 웃음소리가 들렸다. 그 소리는 저 먼 어느 작고 행복한 별나라에서 들려오는 듯한 황홀한 울림이었다.
그래 저 아이들과 같이 웃자. 꿈은 이루었지만 나는 아직 웃지 못했다. 이제부터는 웃을 차례다. 두 팔 벌려 가슴 활짝 펴고 저 푸른 하늘을 향해서 신나게 웃자.
나의 꿈은, 시골에서 살거나 교사가 되는 것이 아니었다.
나의 진짜 꿈은, 시골에 살면서 교사가 되어 더 많이 웃고, 배우고, 행복해지는 것임을 이제야 알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