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첫 직장이었다.
어리바리 느긋하게 취업 준비를 했었다. 졸업 전에 취업 준비를 하고, 어떤 이는 일찍 취업을 해서 졸업식에 참석 못하는 친구들도 있었다. 도서관에서 취업고시 공부하는 친구들에게 "뭐하는 거야? 기말 고사 끝났잖아?" 물었었다. 그렇게 어리바리 졸업식을 마치고나니, 나는 취업 준비생이었다.
처음 지원했던 회사에서 운이 좋게 면접도 보게 되었고, 최종 합격 소식을 받았다. 많은 인원을 뽑았던 시기여서, 운이 좋았다고 그때를 생각해 본다.
'운수가 좋았던 날'이었다.
공채 인원이 많아서 1차와 2차로 나뉘어서 입사를 했었다. 1차 입사는 7월 31일, 2차 입사는 8월 16일이었다. 나는 1차로 배정 받아 7월에 입사를 하게되었다.
본사 교육은 대학 생활과 군대 생활의 연장 같은 느낌이었다. 그리고 이어진 자사 교육은 조금 다른 느낌이었지만, 교육 받는 기간 동안 얻어진 지식은 지금까지도 유용하게 사용하고 있다.
자사교육이 끝나고 부서 배치를 받았다. 같은 차수 동기 여자 중 혼자 현장 엔지니어로 배정을 받았다. 5주간의 교육을 마치고, 처음 맞닥드린 현실이었다. 내가 속하게 된 팀은 엔지니어 80여명 중 여자는 1명이었다. 회계를 담당하는 동갑내기 여직원이 있어서 소소한 위로가 되었었다. 다른 팀은 여직원이 있었지만, 그 전 팀장님의 굳건한 의지로 유일하게 남자만 있었던 팀이었다. 1년 전 새로운 팀장이 자리에 앉고, 꺼내든 카드는 여자 엔지니어 였다. 완공된 지 5년이 되는 공장이었다. 최초의 여자 엔지니어 소식에, 현장 직원까지 800여명이 술렁거렸고, 몇몇 팀에서는 구경을 오는 사람도 있었다. 비루하게 시작되는 듯한 나의 첫 직장 생활에 드리운 원치 않는 유명세에 더 숨고 싶어졌다.
팀장은 첫 면담에서 나를 뽑은 것을 으스대며, 내가 잘하면 여직원을 더 뽑겠다고 나를 위로(?)하였다. 나에 대한 만족이 아니라, 본인의 정치에 대한 과시였다. 작은 사회에서 보이는 정치였다. 실권을 잡은 자는 그 힘을 이용해 무언가를 바꿔보이고 싶어한다. 의욕 넘치던 시절이였다. 구경꾼을 만난 원숭이로써의 역할에 충실했었다. 그리고 4개월 후에는 두번째 여자 직원이 왔다.
업무가 힘들었지만 주변에 좋은 사람들은 넘쳐났고, 밤을 새워 일하는 날에는 현장 직원들이 특히나 더 따뜻히 대해주었다. 멘토 선배라고 만난 대리님은 세상 부드럽고, 유능한 선배였다. 그 선배에게 일을 배우는 것이 재미있었다.
새로운 CEO 가 회사에 부임하고, 또 다른 정치가 시작되었다. 그의 정치색은 몸집 줄이기였다. 그 해에는 유난히 높은 성과급을 주었다. 그리고 5개월 밖에 안되는 근무 기간이지만, 7월 입사로 인정이 되었기에 첫 해에 인사평가를 받는 대상이 되었다. 새로운 CEO의 지침대로 내가 속한 공장은 실적에 따라 30프로 인원에게 'C'와 'D' 가 주어졌다. 나의 첫 인사평가는 "D" 였다. 교육기간을 빼면, 단 4개월 ... ... 이해하기 어려웠다. 내가 무얼 했기에 최악의 평가를 받아야하는 걸까? 우왁거려 보려고 과장님과 마주 앉았다. 잔뜩 볼멘 얼굴의 내게 과장님이 멋쩍게 웃으시며 하신 말은,
"미안하다" ... 였다.
한번 대들어 보지도 못했다. (무뚝뚝한 경상도 남자가 아내에게도 쉽게 하지 않는 말이라는 걸 알았다)
"아니예요, 제가 제일 어린데, 제가 받아야죠 머" ... 괜찮은 척 대답했다.
"다음에 꼭 챙겨줄게, 니 멘토 선배도 'C'를 받아야 했다." ... 라고 말을 이어 가셨다.
우리 팀에서 가장 일 잘 한다, 성실하다 모든 사람들이 인정하던, 내 선배...
그런 이유때문에 오기 전 부터 골치덩어리였던 '나'를 이 선배에게 배정했다는 것은 후에 알았다.
"내년에는 꼭 챙겨주겠다. 올해는 어쩔 수 없었다." ... 라는 과장님의 얘기로 대화는 끝났다.
술 한잔 하자는 동기들, 우리 팀 입사 동기는 나를 포함해 5명이었다. 둥그렇게 앉아서 "너는 뭐 받았냐? "를 물어 던져보다가 우리 모두가 같은 평가를 받았다는 게 우스워 '허허' 웃었다. 이렇게 똑같이 준 거 보니 '적어도 내가 뭘 크게 잘못하지 않았구나' 하고 '허허'...,... 억지 웃으며 술잔을 부딪혔다.
잠시 마음을 추스리고 나니, 또 다른 펀치가 기다리고 있었다. 그해 유난히 높았던 성과급은 평가 점수에 따라 차등 지급되었다. 'D'는 성과급*0% 였다. 가장 많이 받은 사람은 성과급*400% 였다. 우리 모두는 1차 입사 대상이라 인사평가를 받았지만, 8월에 입사 했던 다른 동기들은 평가 대상이 아니었다. 그들은 인사시스템 상의 평가는 없었고, 성과급을 위한 평가는 평균점수인 'B' 였다. 그들은 월급의 100%를 성과급으로 받았다. 회사에서 정해준 일정이었다.
세상은 공평하지 않은 것,
내가 선택할 수 없었던 일들로 생겨난 결과도 내가 감당해야하는 것,
몇 날 되지않는 세상살이 알아버린 아픔었다. 누구에게나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이 생기듯이 그냥 어쩔 수 없는 일이 있겠지. 그래도 내년은 좋아지겠지. '허허' 웃으며, 다시 동기들과 술잔을 부딪혔다.
첫 직장, 첫 인사 평가, 얼마씩 받았다고 이야기로만 들어본 첫 ....보너스 , 그럼에도 버티면 내년에는 좋아질거라는 직장 생활에 대한 이야기와는 다르게, 더 무서운 현실이 기다리고 있었다.
마지막, 어퍼컷.... 짧은 첫 직장 생활에서 들은 단어 '권고사직'이다.
새로 부임한 CEO는 애초에 다 계획이 있었다. 내가 속한 그룹에게 배정된 30프로의 절반, 15% 인원 감축이었다. 당연 인사평가서 기준으로 진행되었고, 나를 자신의 업적이라고 얘기하던 팀장의 첫 번째 면담자는 '나'였다.
"내가 왜 불렀는지 알지?"
" ... ... "
"니가 제일 어려운 선택이었다. 그래서, 너를 제일 먼저 불렀어."
"... ... "
"너의 생각을 듣고 싶다. "
"... ... "
"말 해야해"
"저에게 선택권이 있나요?"
"아니...."
"... ... 네 알겠습니다"
우리의 보상은 3개월치 급여였다. 희망퇴사 신청을 받은 그룹도 있었지만, 내가 속한 곳의 정치는 그렇지 못했다. 그렇게 동기들은 모두 회사를 떠났다. 나는 우리 부서의 희망 퇴직자와 위치를 바꿔주겠다는 또 다른 정치판에 끌어 들여졌다. 짧디 짧은 직장 생활이었는데, 온갖 것들에 휘말려 혼이 다 빠졌다. 더는 일하고 싶지 않았다. 그럼에도 그 정치판에서 내 선택권은 없음을 또 잘 알고 있었다. 팀장은 굳이 만신창이가 된 나를 다시 면담하자고 앉혔다.
"생각해 봤니? 니 입으로 말해야해"
"저는 선택권이 없는 게 아니었나요?"... 반항하고 싶었다. 저항하고 싶었다. ...
"이제 선택권을 주려고 해, 대신 니 입으로 말해야해" 무릎을 꿇어야하는 사람은 정해져 있었다.
"저는... 계속 일하고 싶습니다..."
"그래. 그말을 들어야 했어. 나가봐 "
찾을 수 있는 가장 은밀한 곳으로 숨어들어가, 펑펑 울었다. 첫 직장에서 알게된 어른들의 세계는 너무 복잡했고, 무거웠다. 나는 너무 하찮아졌고, 무력했다.
나의 '운수좋은 날'은 마치 그 소설과 같았다.
동기들이 떠나간 사무실에 '혼자 남았다...'는 죄책감으로 웅크려 앉았다. 선배들은 남아서 다행이라며 기뻐했다. 살벌한 전투에서 혼자 몸을 사렸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사무실에 앉아 있던 모든 사람들이 나와 같이 '살아남은 사람들'이었다. 그들도 정든 이들을 이유없이 떠나보내야 했었다. 모두가 살벌한 전투에 함께했었고, 나의 인생 1차 대전의 종료를 다 같이 안심했다. 내년에는 좀 좋아질거라고, 버티면 좋은 날 온다고, 선배들과 술잔을 부딪혔다. 보고싶다. 그때 나의 전우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