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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이야 Oct 19. 2021

물안경 쓰고 롸이딩?

누구냐 넌!


예측 불허한

아들의 세계


"엄마, 물안경 어딨어요?"

아이가 여덟 살 때였다. 네 발 자전거에서 뒷바퀴를 떼고 자전거에 한창 재미를 붙이던 때였을 게다. 자전거를 타러 나가기로 했는데 아이가 갑자기 물안경을 찾는다. 양파 다질 때 눈 매워 물안경 쓴다는 이야기는 들어봤지만, 자전거 타러 나가는데 물안경을? 그날 오후 아이는 물안경을 쓴 채 자전거로 당당히 그리고 유유히 한참을 달렸다. 나라면 상상도 못 할 일들을 해내는 아들의 세계. 어쩌랴, 아이들의 이런 말도 안 되는 모습이 난 너무너무 좋다. 


초현실주의 작가 르네 마그리트의 작품들이 떠오른다. 파이프 그림을 그려놓고 그 아래 <이것은 파이프가 아니다>라 써 놓은 것처럼. 아이는 물안경을 쓰고 자전거를 타는 게 아니라, 어쩌면 자전거를 타고 수영중이었는지도 모르겠다. 물안경과 자전거만큼 '어울리지 않는' 조합이 또 뭐가 있을까. 커피와 단무지? 우산과 볼링공? 동굴과 태닝오일? 선인장과 북극곰?... 하하! 이 놀이 은근 재미있다. 다음에 아이들과 함께 해 봐야겠다.


르네 마그리트 <이것은 파이프가 아니다>




범접 불가능한

남동생의 편지


얼마 전 나의 초등학교 일기를 꺼내보았다. 후우.. 왜 이렇게 재미가 없냐. 어쩜 이렇게 재미없게 산 것이냐. 나는 남동생이 둘이다. 우리 삼 남매는 흔히 말하는 FM이다. 크게 일탈한 적도 속을 썪인 적도 없이 무난하게 자라났다. 그런 나의 초등학교 일기에는 온통 감사하다, 더 열심히 살겠다는 의지로 가득 차 있다. 내겐 일기조차 칭찬받기 위한 도구였다. 매일 한 바닥 바른 글씨로 가득 채워 써내야 하는 숙제일 뿐이었다.

반면 남동생들 일기와 편지에는 그들만의 거칠고도 솔직한 면모가 종종 드러나 다. 막내 동생이 초등학교 때 쓴 어버이날 편지를 읽고 배꼽을 잡고 웃었던 기억이 난다.


막내는 개 같은 존재지요.

막내는 생긴 것부터 동글동글 귀염지게 생겼다. 나이 마흔이 되어도 참 해맑게 웃는다. 말이 좋아 해맑게지 나와 첫째 동생이 보기엔 답답할 때도 많다. 그러나 이는 분명 크나큰 매력이자 장점이라 주변 사람들 모두 그를 좋아하고 예뻐한다. 그런 막둥이는 어렸을 때도 집안의 분위기를 유柔하고 경쾌하게 만드는 강아지 같은 존재였다. 막내는 예쁨 받으며 자라서 행복한 자신의 모습을 이와 같이 묘사했다. "막내는 개 같은 존재지요." 하. 하. 하. 내가 감히 범접할 수 없는 그들만의 유머? 용기? 무모함?이 존재하는 게 분명하다. Let's get weird!나도 좀 그럴 필요가 있다.


Photo by Ryan Stone on Unsplash




도 모르는

의 세계


"얘들아, 물안경 쓰고 자전거 타면 좋은 점이 뭐가 있을까?"

 아이들에게 물어보았다.


"낙엽에 안 맞는 거? 바람에 안 맞는 거?"

둘째가 답했다.


"..... 물안경을 끼고  자전거를 타요."

-_-a 뭐 이런 걸 물어봐 라는 표정으로

물안경 끼고 자전거 타던 그분이 말한다.


"너가 그러고 다녔거든?"

첫째에게 말했더니 펄쩍 뛴다.


"에이, 무슨 소리예요!"

당사자는 기억도 못할뿐더러

심지어 오리발을 내민다.


"나도 그것이 궁금하다. 대체 왜 그랬을까?"

사진을 보여주니 "그렇네요, 헤헷" 하며 웃는 첫째.


대체 물안경을 왜 고 나갔지? 도무지 기억이 안 난다. 모래놀이터에서 뒹굴어도, 빗 속을 우산 없이 뛰어다녀도, 갯벌에서 헤엄을 쳐도 그러려니... 하는 애미라 자전거 타러 나가는 와중에 아이가 물안경을 챙겨 나올 때도 그러려니... 했을 것이다. 이유라도 물어볼걸. 정신없이 키울 땐 보이지 않던 것들이 이제야 반짝반짝 내 눈을 뜨게 만든다. 이래서 뒤늦게 낳은 늦둥이가 그렇게 예쁘다 예쁘다 하나 보다.




용기 있는 삶


도서관에서 그림책을 뒤적거리다 첫째와 똑 닮은 그림을 발견했다. 버나드 와버의 그림책 <용기> 한 장면.  말괄량이 삐삐 뺨치게 용감하며 한 고집할 것 같은 소녀가 보인다. 스포츠 고글을 낀 채 자전거를 타고 있는 아이 개구진 표정이 절로 엄마 미소를 짓게 만든.


버나드 와버는 묻는다. "용기란 무엇일까?" 굉장한 것부터 언제라도 할 수 있는 모험까지, 어느 것이든 용기는 용기라고 그는 말한다. 어느 순간 보조 바퀴 없이 자전거로 씽씽 달려 보는 것도, 새싹이 차가운 눈을 뚫고 솟아 나오는 것도, 꿈을 향해 굳세게 버텨 나가는 것도 용기라고.


어느 순간 보조 바퀴 없이
자전거로 씽씽 달려 보는 것도 용기.
Courage is riding your bicycle
for the first time
without training wheels.

캄캄한 방에서 잠자는 것도 용기.
Courage is going to bedwithout a nightlight.

헤어져야 할 때 '잘 가'라고 말할 수 있는 것도 용기.
Courage is sometimes having to say goodbye.

- 버나드 와버 <용기 Courage>


나는 전례 없이 매일매일 용기를 내는 중이다. 남편과 집안일을 분담하는 용기, 동화책 그림을 한 장씩 완성해 나가는 용기, 브런치에 주기적으로 글을 올리는 용기, 아이들을 조금씩 내 품에서 독립시키는 용기.


아이들도 매일매일 용기를 내는 중이다. 소수를 더하고 빼는 용기, 줌수업 중 딴짓 안 하고 발표하는 용기, 운동 승급심사에 도전하는 용기, 엄마에게 게임 좀 더 시켜달라 말하는 용기, 친구에게 거절의 메시지를 표현하는 용기.


1학년 때 물안경을 끼고 엄마와 자전거를 타던 용감한 아이는 어느덧 6학년이 되었다. 아이는 이제 훨씬 더 큰 자전거를 타고 친구와 함께 꽤 멀리 있는 도장까지 롸이딩을 간다. 아이가 엄마 품을 벗어나 더 넓은 세상으로 나아가는 것도 용기, 아이가 돌아올 시간을 훌쩍 넘겨 불안해도 믿고 기다려주는 것 역시 용기이다.


우리는 그렇게 오늘도

용기 있는 하루를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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