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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일권 Dec 07. 2023

색즉시공(色卽是空)

고래가 사는 세상

바깥사돈의 49제에 참석하기 위해 처음 삼성동에 있는 봉은사를 찾았다. 언젠가 이 절을 바라보며 이런 노른자위 땅에 절이 있다니 땅값 엄청나겠는데 라는 생각을 하며 지나치던 그곳을 방문하게 된 거다. 그러나 가만히 생각해 보면 이 절을 와본 게 이번이 처음은 아니었다. 초등학교 시절 동대문에서 기동차를 타고 뚝섬 인지 광나루 인지를 친구들과 놀러 갔을 때 도착하자마자  수영팬티와 튜브를 빌려 수영을 하며 놀았는데 그다음 어떻게 나룻배를 타고 강 건너 까지 가게 됐는지 지금 기억으로는 흐릿해서 알 수 없지만 하여간 친구들과 강을 건너 아무도 보이질 않는 모래사장과 배밭을 지나 밭고랑에 숨어있던 개똥참외로 배를 채우며 한참을 걷다 지쳐갈 때쯤 자그마한 절이 하나 보여 그곳엘 들어간 적이 있는데 나중에 알고보니 그 절이 바로 봉은사였다. 이런 기억 속에 남아 있는 그곳으로 다시 돌아갈 수는 없지만 오랜 시간이 지나도 그 한적하고 아름답던 풍광을 잊을 수가 없어 지금까지 머릿속에 남아 있었나 보다. 봉은사에 들어서니 목탁과 불경 소리 속에 많은 관광객과 참배객들로 붐볐고 대웅전 입구 근처에는 얼마 전  세상을 떠난 자승스님을 추모하는 현수막들이 걸려 있었는데 그걸 보는 순간 알 수 없는 의문과 함께 가슴이 답답해지는 걸 느꼈다. 높은 빌딩 숲 속에 웅크리고 있는 듯 자리 잡고 있는 봉은사는 언젠가 명진 스님인가 때문에 더욱 알려진 적이 있었던 곳인데 나는 그곳 승방마루에 걸터앉아 커피잔속에 나의 생각을 담아 보았다.*자승, 조계종 총무원장까지 지내 이미 잘 알고 있는 스님인데 70세도 안된 나이에 부처님을 통해 무엇을 깨달았기에 소신공양이란 말을 남기며 누굴 위해 무엇을 위해 자신을 불태운 건지는 모르겠지만 공(空)이 뭔지를 깨닫지 못해 비우고 내려놓지를 못하는 나 또한 결국 한 줌의 재만 남긴다는 것을 알면서도 그놈의 미련 때문에 지루한 말년을 무위도식하며 지내고 있다. 원컨대 어릴 때 맛보았던  맑고 시원했던 봉은사의 약수처럼 모든 중생을 구원할 수 있는 도량으로 거듭나기를  부처님께 부탁드리며 스님들의 금강경을 끝으로 49제를 마치고 절을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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