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 완료형 6
이삼일 잘 적응하는 듯하던 아기가 나흘 째 되던 날, 하루 종일 울며 내 마음을 애태웠다. 우유병, 물병도 거부하고 서럽게 서럽게 울기만 했다. 열도 없고 기저귀도 말라있는데 안아줘도 소용없었고, 내려놓으면 숨 넘어갈 듯 더 울어댔다. 손녀 돌봐주시기로 하고 며칠 와 계시는 어머님께서 잠시 시댁에 다녀오신다고 외출하신 날, 하필 이런 날, 아기는 그렇게 하루 종일 울었다. 신생아를 포대기로 업을 수도 없어서 나는 아기를 안은 채 점심밥도 못 먹고 오전부터 오후까지 내내 그렇게 벌을 서야만 했다. 당장 병원에라도 데리고 가고 싶지만 의사에게 "아기가 너무 울어서 왔어요."라고 할 수는 없는 노릇이니 잠시 후면 괜찮아지겠지, 이러다 잠들겠지, 하면서 버텨보았다. 팔이 떨어져 나갈 것 같았다. 잠깐 2~3분 내려놓으면 더 큰소리로 울어대는 통에 다시 안기를 반복했다. 너무 힘들어서 서글퍼지더니 결국 서러워져서 나도 같이 울었다. 나와 아기 모두 온몸은 땀범벅, 얼굴은 눈물범벅이 가 되었다. 훌쩍거리며 울다가 마침내 나도 아기처럼 마음껏 소리 내어 울으니 차라리 속은 시원해졌다.
엄마의 훌쩍거리는 소리가 '엉엉~' 대포 떨어지는 소리로 바뀌자 아기가 울음을 멈추었다. 그러고는 나를 쳐다본다. 속은 시원하고 아기는 울음을 멈추고... 이젠 살았다 싶은 엄마의 표정을 읽은 아기가 다시 울기 시작한다. 나도 다시 울었다. 내가 울면 아기는 멈추고, 내가 멈추면 아기는 다시 울고, 때로 같이 울기도 하고... 우리는 그렇게 서로의 우는 타이밍을 밀당해 가며 오후 시간을 보냈다. 내 팔도 정신과 함께 가출하여 모든 감각이 마비된 듯했다.
오후 5시가 다 될 무렵, 어머니께서 돌아오셨다. 나는 낮에 있었던 상황을 어머니께 말씀드리고는 아기를 건네자마자 다른 방으로 들어가 누워버렸다. 아기에게 삐친 것이다. 나는 엄마로서 최선을 다 한다고 하는데 뭐가 그리 마음에 안 들어서 운단 말인가. 이렇게 오전부터 오후까지 쉬지 않고 우는 아기를 상상해 본 적이 없었다. 아, 엄마 노릇이 쉬운 게 아니구나.
그런데 어머니께서 오신 후로는 아기가 울지 않는다. 살짝 밖을 내다보니 아기는 우유도 잘 먹고 방바닥에서 꼬물락거리며 잘 놀고 있었다. 생후 한 달 밖에 안 된 아기에게 덩치 큰 어른인 내가 여전히 마음이 안 풀리고 단단히 토라져 있었다. 어머니께서는 저녁에 퇴근한 아들에게 며느리한테 들은 이야기를 들려주시면서 놀리신다. 아기를 보며 "이렇게 착한 우리 손녀가 무슨 엄마를 힘들게 했다고 그래... 그렇지? 할미는 안 믿지요.". 아기와 하루 종일 그러고 있었다는 아기 엄마의 증언만 있을 뿐, 물증은 남아있지 않으니 혼자만 맥이 빠진다. 아기는 다른 날보다 일찍 잠이 들었다. 저도 하루 종일 피곤했겠지. 무늬만 엄마인 나도 이렇게 피곤한데...
다음 날 아침이 되니, 전날에 무슨 일이 있었냐는 듯 아기는 최상의 컨디션으로 우유도 잘 먹고, 잘 자고, 잘 쌌다. 눈빛이 하루 만에 더 똘똘해진 느낌이다. 전날에 하루 종일 울던 그 아기가 아니다. 이렇게 사랑스러운 아기에게 어른스럽지 못하게 살짝 삐쳐있던 내가 부끄러웠다. 혹시나 할머니의 손길 때문이었나 싶어 서로 짜고 어머니는 안 보이게 멀리 계시고 내가 계속 옆에 붙어 있어도 순딩 순딩하게 잘 놀았다. 미스터리다.
단지 스치듯 드는 생각이 있다면, 식물에게 좋은 환경을 제공해 주려고 더 넓은 화분에 분갈이를 해주면 조금씩, 혹은 심각하게 몸살을 앓는 경우가 있다고 들은 적이 있다. 아기도 우리와 가족이 되고 나서 며칠 얼떨결에 적응하다가 뭔가 새로운 환경으로 바뀐 것을 감지하고는 세게 몸살을 앓았던 건 아닐까, 추측해볼 뿐이다.
그날의 후유증으로 나는 지금 3일 동안 팔에 파스를 붙이고 있다. 겨우 5Kg도 안 되는 아기를 몇 시간 안고 있었을 뿐인데 지금까지도 이렇게 욱신거리고 아프다. 어쩌면 그동안 나는 '엄마'라는 이미지에 환상을 갖고 있었던 건 아니었을까? 아기가 잠자고 싶어 하면 재우고, 배고파서 울면 우유 먹이고, 심심해할 때 놀아주는 엄마들의 단편적인 모습만 상상만 해왔었나 보다. 초보 엄마가 겁도 없이 예습을 게을리 한 탓이다.
앞으로도 이런 날은 또 있을 거고, 아픈 날도 많을 거고, 우리 서로에 대해 배워야 할 일들도 많이 생길 것이다. 우리 아기 자랄 때 나도 같이 자라서 마음이 성숙한 엄마가 되고 싶다.
2001년 2월 29일 목요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