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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와가치 Sep 24. 2021

'엄마'라고 불러주었을 때

과거 완료형 10

날이 갈수록 아기의 옹알이가 활기찬 것이 엄마에게 할 말이 참 많은 듯싶다. '아아오오 아오아'로 시작했던 옹알이가 최근에 '아오마 음마 오마 음마'로 변형되더니 가끔은 '엄마'라는 단어가 들리는 듯한데 옹알이 중에 우연히 나온 것인지는 잘 모르겠으나, 얼마 전부터는 배가 고프거나 졸리면 내 귀에 유난히 "엄마~"라는 소리로 들려왔다. 엄마를 알고 부르는 것인지, 그냥 우는 도중에 입술이 붙었다 떨어지면서 자연스럽게 나오는 발음인지 애매하여 좀 더 느긋이 기다려 보기로 했었다. 옹알이하는 딸의 수다를 들어주다가도 자주 내 손을 가슴에 대고 "엄마야. 엄마라고 해봐. 엄마! 엄마! 엄마! 알았지? 엄마~" 아기에게 언제 엄마 소릴 들으려나 틈만 나면 부단히도 외쳐대긴 했었다. 



시내에서 볼일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버스 정류장 옆에 있는 L마트의 아기용품점에 들렀다. 이제 이가 나오려는지 잇몸을 앙 물기도 하고 최근 들어 침을 많이 흘리는 아기를 위해 치발기 하나를 사기 위해서였다. 우유 먹을 시간이 가까워지고 있어서 다음에 살까 잠시 갈등하다 얼른 사고 가면 되겠지, 하고 들른 건데 내 예상이 빗나갔다. 배가 많이 고픈가 보다. 아기가 울기 시작했다. "엄마~" 하면서.


"어머, 아기가 몇 개월이에요? 벌써 엄마라고 하네?" 내 또래쯤 되는 여직원이 신기한 듯 말했다.

"맞죠? 엄마라고 그러는 거죠?" 나는 신이 나서 어쩔 줄을 몰랐다.

엄마라고 그러는구나. 내 착각이 아니었구나. 우리 아기가 이제 나를 확실히 엄마라고 불러주는구나. 


매장 의자에 앉아 우유를 찾아 꺼내는 동안에도 배고파 못 참겠다는 듯 계속 울면서 "엄마~" 하고 운다. 다른 때보다 발음이 더 정확한 것 같기는 하다. 그때 근처를 지나가던 다른 여직원이 우리에게 다가오며 말했다.

"아기가 아직 어린것 같은데 벌써 엄마 소리를 하네요."

"우리 아기 4개월 지났어요. 맞죠? 아기가 비슷하게 발음하기에 저는 착각인 줄 알았어요."

갑자기 말이 많아지며 흥분한 나에게 두 여직원이 함께 기뻐해 준다.

"이렇게 빨리 말하는 아기들도 있더라고요. 좋으시겠다. 축하드려요."

감동을 주체할 수가 없다. 옹알이가 아닌 완성된 말의 첫 단어를 '엄마'로 시작하다니 말이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 생략 --

우리들은 모두

무엇이 되고 싶다

-- 생략 --


김춘수 시인께서, 꽃은 꽃이라고 이름을 불러줄 때야 비로소 꽃이 된다고 했다. 그동안 열심히 몸짓만 해왔는데 아기가 나를 엄마라고 불러주니 이제야 비로소 '엄마'로서의 확실한 자격을 인정받은 듯, 도무지 웃음이 내게서 떠나질 않는다. 


2001년 5월 31일 목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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