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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약 Sep 16. 2021

편두통 통증, 고통의 정도를 수치화할 수 있는가

진단의 어려움



고혈압 환자가 있다고 생각해보자.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이 무엇일까? 바로 혈압이 잘 조절되는지 확인하는 일이다. 환자는 병원에 방문할 때마다 혈압을 잴 것이다. 혈압계에는 정확한 숫자가 떠오를 것이고(어느 정도 오차는 있겠지만), 혈압을 쉽게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이렇게 내가 정상혈압 범위에 속하는지, 저혈압인지, 고혈압인지 알기란 매우 쉽고 간단한 일이다.


만약 내가 정상혈압을 벗어난다는 것을 알게 되면 곧바로 후속 처치가 시행될 것이다. 고혈압이라는 진단과 함께 혈압을 낮추는 약을 처방받게 될 것이고, 만약 약을 먹고도 조절이 안 된다면 다른 약으로 변경하게 될 것이다. 일반적인 질환의 치료는 이런 식으로 이루어진다. 일단 환자가 병원을 방문하면 진단을 받기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닌 것이다.




그러나 두통은 그렇지 않다. 어떤 면에서 다르냐고 묻는다면, 글쎄, 두통만이 아닌 다른 모든 통증 관련 질환에 적용되는 부분일 것이다. 통증을 수치화할 수 있는 객관적인 검사가 없다 보니, 환자의 말에 따를 수밖에 없다. 고통의 정도를 어떻게 표현하느냐는 온전히 한 개인에게 달려있다. 설사 정말 한치의 다름도 없이 똑같은 정도의 통증을 느낀다 하더라도, 이는 표현하는 사람에 따라 다르게 해석될 여지가 있다.


환자가 정말 아픈지, 아프면 얼마나 아픈지, 어디가 어떻게 아픈지는 환자가 표현하지 않는 이상(그 표현이 설혹 일관되지 않고, 개개인마다 기준이 다를지라도) 그 누구도 알 방법이 없다. 이 말은 즉슨 의사의 처방도, 그에 따라 복용하게 되는 약도 오로지 환자의 말에 달려 있다는 뜻이 된다.(증상의 치료가 환자의 말에 의존한다는 사실은 사뭇 위험하게 들리기도 한다)



그 때문에 두통 환자는 지금 심각하게 아픈 상태인지 아니면 꾀병을 부리고 있는 건 아닌지 쉬이 의심을 받기도 한다. 그러나 부디 환자에게 묻지 않기를 바란다. 환자 본인도 아픔의 정도를 객관화할 수 없다 보니 혼란스럽기는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

아프긴 아픈데 이전과 비교해서 더 많이 아픈지 알 수 없고, 마땅한 기준이 없기에 지금 아파도 얼마나 아픈지도 모른다. 지나간 통증은 아프다는 사실로만 남을 뿐, 고통의 정도는 곧 잊혀지기 때문에 더욱 그렇다. 그러나 단지 아픔을 드러낼 지표가 없다는 이유로 꾀병이라는 말을 듣는다면 이 얼마나 슬픈 일이가.









두통이라는 '질환'


두통은 감기만 걸려도 겪을 수 있는 흔한 증상이다. 살면서 감기에 한 번도 걸려보지 않은 사람이 없듯, 단언컨대 두통을 겪어보지 않은 사람은 없다. 그래서 더더욱 두통이라는 '증상'은 두통이라는 '질환'으로 인식하기 힘들어졌다. 이미 아는 증상이기 때문에 쉬이 지나치기 쉽고, 환자가 이상을 느끼더라도 그 심각성에 대해 주변의 동의를 얻기 어렵다.



나는 두통환자가 겪는 문제 중 가장 안타까운 점이 바로 이 부분이라 생각한다. 질병으로서의 정체성을 갖게 되는, 즉 질병으로 인식되고 인정받는 '진단'이 늦어지는 이유가 단순히 쓸만한 진단지표가 없어서가 아니라 대부분 사람이 맞닥뜨릴 수밖에 없는 환경(가볍게 지나고 말 거라는 생각) 때문이라는 것. 그리하여 환자가 눈치챘을 때는 이미 견디기 힘든 상태일 것이고, 이렇게 될 때까지 미련하게 홀로 견뎌냈다는 후회와 미리 알아채지 못했다는 자책까지 한 세트로 밀려오는 것이다.










두통환자에게



누가 뭐라 해도 병으로 가장 힘든 사람은 당사자인 환자 본인이다. 그러니 자책도 말고 후회도 말자. 그러기에는 이미 너무 많은 시간을 (말 그대로) 아파하며 보내오지 않았는가.

솔직히 죽을병도 아니다. 내가 직접 들은 말이다. 죽을 만큼 아프니 그다지 위안은 되지 않았지만, 하루 내내 아파할 때 듣게 된 이 말이 신선하긴 했다. 이렇게 아파도 죽진 않는다는 거니까. (나중에 이 말을 들은 상황도 말해주고 싶다. 좀 황당하긴 했지만 그다지 나쁜 기억으로 남아 있지 않다)


앞으로 편두통과 관련된 내가 알고 있는 모든 내용을 다뤄볼 생각이다. 치료나 약에 대한 이야기 일 수도 있고, 내가 겪은 경험일 수도 있다. 지난 몇 년간 나는 내가 아는 것과 내가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했다. 좋아질 만한 일은 닥치지 않고 했다. 병원을 가고, 약을 먹고, 약을 바꾸고, 기사를 찾고, 책을 읽었다. 이 모든 게 자랑거리가 되진 않겠지만 내가 겪은 것들이 다른 누군가에겐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마지막으로 말하고 싶다. 우리는 좋아질 수 있다. 생각보다 더, 생각보다 빨리 좋아질 수 있다. 물론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도 미약한 두통이 있다. 그러나 글을 쓸 수 있을 정도라니 이 얼마나 완화된 것인지! 나는 좋아졌고, 또 좋아졌고, 여기서 더 좋아질 수 있나 싶었지만 거기서 더 나아졌다. 이 길은 계속되고 있지만 언제나 나아질 곳은 있었다. 나는 앞으로도 더 좋아질 것을 믿는다.


포기하지 말자. 고통에 익숙해지지 말자. 한 치 앞이 보이지 않을지라도 더 나아질 수 있음을 기억하자. 그리고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하자. 시간이 지나고, 또 지난 어느 날 어느새 한결 나아진 나를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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