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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약 Sep 16. 2021

두통의 발견

수면시간의 변화


두통의 시작


감기 때문에 혹은 몸이 좋지 않아서, 술을 먹고 나서 등 일시적으로 두통을 겪게 되는 원인은 다양하다. 그러나 내가 알지 못하는 이유로 처음 반복적인 두통을 겪은 건 24~25살 즈음이었다. 당시 짚이는 이유는 하나뿐이었다. 바로 수면시간의 변화였다.


주말엔 항상 늦잠을 잤는데, 일어나면 하루 내내 두통에 시달렸다. 잠을 조금 잔 것도 아니고, 충분히 잤는데 머리가 아프다는 게 그때는 이해가 가지 않았다. 오히려 피로가 풀리고 컨디션이 좋아야 하지 않나 생각했기 때문이다. 게다가 10대 때는 주말에 깨어있는 시간보다 자고 있는 시간이 더 많을 정도로 잠을 몰아서 자곤 했는데도 자고 나서 (피로가 풀리면 풀렸지) 머리가 아픈 적이 한 번도 없었다. 그래서 두통의 원인이 잠 때문일 수 있다는 생각을 쉽게 하지 못했다.


그러나 매주 주말마다 두통을 앓았기 때문에 어느 순간 알 수밖에 없었다. 나는 결국 알게 되었다. 주말마다 머리가 아팠던 건 늦잠을 잤기 때문이라는 걸 말이다. 이 단순한 인과를 알아채는데 나는 적지 않은 시간을 소요했다.










사소한 대응


휴일을 망치는 두통은 늘 신경을 거슬리게 하는 존재였다. 그리고 이 시기 즈음해서 기억에 남는 일이 하나 있다. 별로 인상적인 일도 아닌데 지금까지 기억을 하고 있는 걸 보면 아마 아쉬워서가 아닐까 싶다. 이때 내가 좀 더 진지하게 두통에 대해 생각해봤다면 좀 더 빨리 병원을 찾지 않을까 하는. 그러면 그렇게 고통스럽지 않을 텐데.


당시 나는 소개팅을 몇 번 했는데 마침 상대가 한의사였던 적이 있다. 이 참에 나는 혹시 원하는 답을 얻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마음에 궁금했던 것을 물어보았다.




이상하게 늦잠만 자면 머리가 아프다.

혹시 예상가는 이유가 있냐




고 말이다. 그러나 한의사 친구 또한 나만큼 두통에 대해 잘 알지 못하는지 기대에 미치지 못한 일상적인 답을 들었고, 아쉽게도 별 다른 소득 없이 다른 화제로 넘어갔다. (그다지 관심 있는 주제도 아니었을 것이다)


자리가 자리인 만큼 나도 가볍게 꺼낸 얘기였다. 그러나 상대방 얼굴은 잊혔어도, 그때의 아쉬움은 아직도 기억에 남는 걸 보면 본능적으로 나에게 중요한 일이라는 걸 알았는지도 모르겠다. 안타깝게도 그때의 나는 이제 늦잠도 못 자는 몸이 되어버렸다고 웃어넘겨버렸지만.


그때 그 한의사가 나에게 진지하게 병원을 가보라고 권했으면 어땠을까. 너무 큰 기대일까. 상대를 탓할 일이 아니라는 걸 안다. 진료실에서 만난 사이도 아니었고, 소개팅 자리에서 길게 이어갈 화제는 아니니까. 아파서 한의원에 찾아온 환자의 상담이었다면 아마 달랐을 것이다. 아무리 신출내기 한의사라 할지라도 그랬을 것이다.


나는 약학을 공부하는 학생이었다. 학생이라 '수면시간의 변화가 편두통을 유발할 수 있다'는 사실을 몰랐다 하면 핑계가 될까. 그러나 나중이라고 내가 뭘 그리 잘 알았을까. 내 일이 아니라면, 평생 나와 상관없는 문제로 생각하며 그렇게 살았을지 모를 일이다.









두통과 나


나는 내가 두통환자 일수도 있다는 생각을 한 번도 해본 적이 없다. 암에 걸릴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미리 하는 사람이 없듯(가족력을 제외하고) 나에겐 두통이 그랬다. 일어날 수 없는 일이 아니라, 일어날 거라 상상하지 못하는 비현실적인 일이었다. 편두통은 나에게 책에서 보는 활자로만 존재했다. 그러니 지금은 명확히 보이는 수면 패턴의 변화와 두통의 발생 관계를 쉬이 연관 짓지 못한 것도 그리 이해 못할 일은 아니다.


당시엔 정말 그 정도 문제였다. 나는 반복적으로 두통을 앓았지만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한의사를 만났으니 이 김에 물어나 볼까 하는 딱 그 정도의 문제였다. 진실로 나에게 중요한 일이라면 내 발로 한의원을 찾아가 병증을 설명하고 한의학적 관점에 대해 설명을 들어보지 않았겠는가.

그러나 나는 그러지 않았고, 내 발로 병원을 찾은 것은 그로부터  몇 년이나 훌쩍 지난 후였다. 어떻게 해도 사라지지 않는 통증에 어쩔 수 없이 입원을 했고, 그날 바로 MRI를 찍었다. 퇴원 이후로 찾아간 한의원만 5군데가 넘는다. 신경과는 이미 다니고 있으면서도 그랬다.









늦은 대응


두통은 주말에만 나를 괴롭혔다. 그래서 내가 고민했던 부분은 (바깥바람을 쐬거나, 밥을 먹거나 하는)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면 괜찮아질 줄 알았던 두통이 진통제를 먹지 않는 한 잦아들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일부러 몇 시간 동안 산책을 나가기도 하고, 낮잠을 자본 적도 있으나 한번 머리가 아프면 여간해선 나아지지 않았다. 그러나 약국에서 살 수 있는 일반적인 진통제 한 알이면 곧 괜찮아졌기에 여상히 넘겼다. 상비약으로 진통제를 좀 더 넉넉히 챙겨둘 뿐이었다.


위의 일이 벌써 7~8년 전 일이다. 새삼스레 내가 생각보다 일찍 두통을 인식했고, 긴 시간 힘들어했구나 싶다. 그러나 나는 입원을 할 때까지 제 발로 병원을 찾지 않았다. 그 입원을 한지도 벌써 3년 지났다. 4년 넘게 두통으로 힘들어했으면서 나는 왜 진작 병원을 찾지 않았을까. 그러면 입원까진 하지 않았을 텐데. 그만큼 아프지 않았을 텐데.

후회는 항상 늦는 법이라지만 이제 와 늦은 후회를 한다. 그리고 내가 글을 쓰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다른 사람들은 나처럼 후회하지를 않기를 바라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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