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쓰기의 꿈 4
그리 멀리 내다보지 않더라도, 당장 몇 년 후 직장을 다니면서의 상황은 불 보듯 뻔했다. 일과 병행하여 글을 쓴다는 게 지금보다 더 어려우면 어렵지 절대 쉽지는 않으리라 짐작되었다. 어떤 성과를 내거나, (혹 결과를 내지 못하더라도) 어느 정도 수준까지 나를 끌어올리는데 마음껏 노력을 할 수 있는 시간은 한정돼있었다. 졸업 전에 승부를 봐야겠다는 생각과 함께 조바심이 찾아들었다.
그러나 이내 나는 비교적 시간적 여유가 있는 대학생 때 하고 싶은 일을 명확히 알고, 노력할 수 있는 현실에 감사하기로 마음먹으며 현재 나에게 주어진 시간을 잘 활용하기로 다짐했다. 이중생활의 시작이었다.
매일 글을 쓰기로 약속했다. 홀로 자취를 했기에 방에서도 어떤 방해 없이 얼마든지 글을 쓸 수 있었지만, 가능한 한 밖으로 나가 하루에 몇 시간씩은 글을 쓰는 데만 집중하기로 했다. 당시 나는 학교 앞 코 닿을 거리에 살아서 3분만 걸어 나가도 밤늦게까지 문을 여는 카페가 여럿 있었다.
보통은 일과가 마무리된 밤에 저녁밥을 야무지게 챙겨 먹고 나가 (몇 시간씩 앉아있으면 금방 배가 고프다) 카페 문을 닫을 때까지 앉아있었다. 학교 근처 카페는 가격이 저렴하고, 밤늦게까지 인적이 드물지 않아 폐점 시간까지 편안한 마음으로 글에 집중할 수 있었다. 사람이 많지 않은 조용한 시간대여서 좋기도 했지만, 원체 밤이 되면 없던 힘도 솟는 야행성인지라 더욱 그랬다.
미리 약속된 일정이 있거나 낮에 시간이 비면, 호시탐탐 기회를 노리다가 카페로 향해 자투리 시간을 활용했다. 거의 매일 카페를 가다 보니 아는 사람을 자주 마주쳤는데 (그들이 보기에) 딱히 이유 없이 혼자 카페를 찾는 나를 향해 몇몇은 이해할 수 없다는 시선을 보냈고, 그냥 내가 카페를 되게 좋아하는 줄 아는 사람도 있었다.
돌이켜봐도 그때 카페에 참 돈을 많이 썼는데, 카페에 꼭 가야 하는가에 대해 나도 고민을 안 해본 것은 아니다. 매일 가니 작은 돈도 부담되고, 쌓이다 보니 죄책감마저 들었다. 내가 무슨 부귀영화를 누리겠다고 밤마다 이러고 있나 싶기도 했다. 그러나 하루에 대략 3,000원을 예산으로 잡고, 한 달 비용을 계산해 보면 3,000원 x 30일로 대략 10만 원이 나온다. 매달 10만 원이란 돈은 크다면 크고 작으면 작은 돈이겠지만,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는데 소요되는 초기 투자비용이라 생각하면 커피 한잔 마실 때마다 부들부들 떨 필요까지는 없지 않나 싶었다. 한 달에 10만 원이 그리 큰 투자는 아니지 않은가.
시간을 내는 것은 할 만했다. 확보한 시간에 비해 글쓰기에 익숙하지 않은 내가 생각보다 글을 빠르게 진전시키지 못한다는 게 고민이라면 고민이었다. 달릴 준비 만반인 마음은 의욕으로 가득 찼는데 반해 글쓰기에 익숙지 않은 머리와 손은 말을 듣지 않았다.
솔직히 글을 썼다고 말하기 멋쩍을 정도로 초기에는 들어간 시간 대비 뭔가를 제대로 쓰지 못했던 것 같다. 처음인 만큼 나도 당장 뭐 큰 걸 바라는 건 아니었지만, 시간은 한정돼있고 '직장인이 되면 절대적으로 더 부족해질 텐데' 하는 생각에 난감하기는 했다.
할 마음이 있는데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를 수도 있다는 걸 알았다. 시간, 의지, 실행 이 세 가지만 있으면 뭐가 돼도 될 줄 알았는데, 이제껏 읽기만 하던 내가 무언가를 쓰려고 하니 도무지 써지지가 않는 것이다. 어떻게 쓸지 몰라 많이 답답했다.
속도가 나지 않아 한 단락을 쓰는 게 힘들었고, 어느 날은 이상하게 필 받아서 줄줄 이어가다가도 문득 내가 무슨 말을 하려다 여기까지 왔나 싶어 돌연 손을 멈추기도 했다. 내가 무슨 글을 쓰고 있는지 모르겠는 거다. 기껏 써둔 내용을 다시 읽어보면 이걸 쓰는데 그리 시간을 쏟았나 하는 생각과 함께 필요 없는 내용인 것 같아 다 지워버리곤 했다. 어쩔 땐 그날 하루 내내 쓴 글을 다 삭제한 적도 있고, 인물의 성격이 확 달라진다거나 앞선 내용에 맞지 않는 내용을 나도 모르게 쓰고 있어서 어쩔 수 없이 지우기도 했다.
내가 하고 싶은 말이 명확할지언정 그 과정 또한 눈에 명료히 보이는 것은 아니기에 내가 정말 말하고자 하는 지점에 도달하기까지의 경로 또한 생각해 둘 필요가 있다는 것을 알았다. 한 예로 등장인물의 성격을 뭉뚱그려 대충 이런 사람이다 상정하기보다 가능한 한 구체적으로 생각해놔야 글을 진행하기 좋았다. 내가 헷갈리면, 글은 그보다 더 큰 각도로 갈팡질팡 길을 잃고 만다. 등장인물의 성격과 주된 특징을 마인드맵 앱을 사용해 정리해 보기도 했다. 그다지 도움이 된 것 같진 않지만 말이다.
애로사항이 많았다. 쓸데없이 등장인물의 외모 묘사에 지나치게 치중하기도 했고, 내용이 매끄럽게 연결되지 않아 뚝뚝 끊기는 등 다채롭기까지 했다. 너무 못 쓴 거 같아 멈춘 적도 있다. 당장 잘 쓰기를 바라지 않아도 못 쓰진 않았으면 싶었는데, 이조차 힘이 들었다.
그러나 가장 문제인 것은 전반적으로 스토리가 진행되지 않아 이쪽저쪽으로 헤매는데 너무 많은 시간을 쓰게 되는 것이었다. 시간도 내용도 그리 분배가 잘되지 않았다. 속도가 나지 않아 슬펐다. 기승전결 중 내가 하고자 하는 말은 후반부에 집중되어 있어서 '전'이나 '결'에 힘을 쏟아야 했는데, 마음에 들지 않는 앞부분을 몇 번이고 되풀이하며 수정하고 집착하다 보니 되려 뒤로 갈수록 내용이 빈약해졌다. 글쓰기는 홀로 하는 행위라지만 이대로 진행하기에는 무리가 있어 보였다. 혼자서 할 만큼 하던 나는 결국 다른 방법을 찾아 나섰다.
내가 부족한 부분은 글을 쓰는 기술적인 부분이라 생각했기 때문에 여러 방법을 시도해 보기로 했다. 처음엔 역시나 책이었다. 글쓰기 책을 몇 권 읽었다. 나는 내가 왜 쓰고, 무얼 쓰고 같은 원론적인 내용보다는 당장 실천할 수 있는 방안에 대해 알고 싶었다.
그러나 책에 따라 정도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내가 원하는 글 쓰는 기술에 대한 내용은 거의 다루고 있지 않았다. 또 방법론적인 도움을 제시하는 경우일지라도 '이 작가는 이렇게 글을 쓰나 보다' 싶지만 좀처럼 공감이 가지 않아 따라 할 생각이 들지 않는 경우도 있었다. 그러다 보니 (원래는 책을 처음부터 끝까지 정독하는 편인데) 글쓰기 책은 여러 권을 대충 훑어보며 나에게 도움이 될 만한 부분만 골라 읽게 되었다.
책 내용 중 지금까지 기억에 남는 하나는 글이 잘 안 써질 때 '1분 동안 아무 말이라도 계속 써보라'는 말이었다. '안녕하세요'나 'ㅋㅋㅋㅋ' 같은 의미 없는 말을 단순 반복해도 상관없으니 무엇이든 1분간 쉬지 말고 타자를 치라 했다. 실행은 손쉽고 만족도 또한 높았는데, 글쓰기가 무서운 적이 없었음에도 이 방법은 의외로 도움이 됐다.
쓰는 행위 그 자체는 별거 아니라는 걸 직접적으로 보여주니, 단순히 글쓰기에 대한 두려움을 완화시키는 것에 그치지 않고 내가 가지고 있던 '글이라면 무릇 이래야지' 하는 엄격하고 매서운 기준도 스리슬쩍 같이 낮아졌던 것이다. 아무리 초보라도, 뭐가 됐든 'ㅋㅋㅋㅋ' 보다는 글 다운 글을 쓰지 않겠는가.
교내 평생교육원에서 글쓰기 수업을 듣기도 했다. 춥고 어두운 밤, 학교 외곽에 있는지라 그동안 존재도 몰랐던 문화센터를 향해 난 길을 굽이굽이 걸었다. 깜깜한 밤 사이 드문드문 빛나는 가로등 아래로 주차장을 가득 채운 까만 자동차의 행렬이 보였다. 삼삼오오 모여드는 사람들을 따라 두꺼운 유리문을 힘껏 밀어내고 강의실보다 몇 배는 큰 강당에 앉았다.
장년 혹은 노년에 접어든 나이대의 분들이 자리를 잡고 있었는데, 성실히 일상을 살면서 밤에 따로 시간을 내 글을 쓰려는 사람이 이렇게 많다는 것이 놀라웠다. 나는 빈자리에 홀로 오도카니 앉아 주변을 둘러보았는데, 내가 제일 어린것 같았다. 내 또래조차 눈에 띄지 않았다.
나에겐 글쓰기 노트가 있었는데, 쓰고 싶은 소재나 내용이 별안간 떠오르면 간단히 적어두는 용도였다. 당시 나는 툭 치면 하고 싶은 말이 우르르 쏟아질 듯해서 그새 휘발되어 머릿속이 다른 생각으로 채워지기 전에 얼른 공책에 써두곤 했다. 이 공책을 자주 들고 다니며, (특정 대사나 등장인물의 대표적인 성격 등) 두서없이 떠오르는 생각들을 스스럼없이 써 내렸기 때문에 첫 수업에 대한 기대감에 가득 찬 이날도 여느 날과 같이 가방 한구석에 소중히 노트를 챙겨 왔었다. 그러나 수업 내내 나는 하릴없이 공책만 끄적거리다가 낙심한 채 집으로 돌아왔다.
수업은 하루만 듣고 취소했다. 강단에 선 선생님도 글을 쓰는 사람이었는데, 이 자리에 모인 사람들에게 무언가 알려줄 듯하면서 알려주지 않고 쓱 빠져나와 자꾸 본인을 자랑을 했다. 자신에게 취한 나머지 거듭 본인 자랑으로 귀결되곤 해서 별로 마음에 들지 않았다.
무엇보다 수업의 대부분을 새로운 시나 소설 등을 소개해 주는데 그쳤기 때문에 지금 당장 나에게 필요한 부분을 충족시키지 못한다 생각했다. 이런 수업은 고등학교 때 문학 수업으로 충분했다. 시간이 아까웠다. 나로서는 흔치 않게 빠르게 환불을 결정했다.
동네에 있는 글쓰기 모임에 찾아가 보기도 했다. 동아리 혹은 소모임일까. 지금 보면 어떻게 알고 찾아갔는지 신기한데 혼자 갈 자신이 없어서 친구한테 같이 가자고 부탁했다. 그렇게 친구와 함께 모임 사람을 만났는데, 글쓰기 동호회 멤버로 나이가 지긋하신 아주머니 한 분이 나왔다. 내가 약대생이라는 걸 알자 이 모임에는 문과인 사람들뿐이라면서 이과인 사람은 어떤 글을 쓰는지 궁금하다고 했다.
내 글이 궁금하다니 기쁘다고 생각할 법도 한데, 그때 나는 내 글이 궁금하다는 말을 듣자마자 팍 쭈그러들었다. 내 글을 내보일 자신이 없는 것은 물론이고 부끄럽기까지 했는데, 내가 누군가에게 읽히길 바라지 않는 글을 쓴다는 걸 그때 처음 알았다.
아주머니는 나를 붙잡을 생각도 없었던 것 같은데, 나는 말을 어물어물 거리며 도망치듯 그대로 뒤돌아 나왔다. 나오면서도 나는 내 글은 나이대가 있으신 분들이 읽기엔 영 맞지 않으니 그리 틀린 결정은 아니라 생각했다.
글을 쓸 기회가 있다면 새로운 글을 썼다. 꼭 소설이 아니더라도 교내 공모전이 있으면 그에 맞는 글을 쓰고, 제약회사 공모전에도 제시하는 주제에 맞는 글을 신나게 써서 냈다. 너무 잘 썼다고 매우 흡족해하며 제출했는데, 들려오는 소식은 없었다.
그때도 이후에도 쭉 나는 주최자의 의도와는 거리가 먼 자기만족용 글을 쓰는 것 같다. (정말 그 하나의 목표에만 충실한 글이었을 것이다) 조금은 변할 법도 한데 사람이 참 변하지 않는구나. 새삼스럽지만 무서울 만큼 일관적이라는 생각이 든다. 제대로 한 건 없는 것 같은데, 그래도 이렇게 나열해 보니 (의미 있는 노력이었는지 의문이 들긴 하지만) 노력은 했구나 싶다.
학년이 올라가면서 제약회사, 약국, 병원으로 실습을 나갔다. 낯선 환경에 적응하는 건 익숙한 강의실에 편안히 앉아 수업을 듣는 것보다 몇 배는 힘이 들었다. 그래도 직장인보단 덜하리란 생각으로 저녁에 카페로 출근하는 일상을 지속했다.
지친 몸을 끌고 다시 방으로 돌아와 침대에 누워서도 마음이 편치 않았다. 몸은 몸대로 힘들지만 눈에 띄는 성과 없이 졸업이 가까워지자 속이 타고 조급해졌다. 때마다 돌아오는 중간고사와 기말고사는 물론이고, 졸업을 앞두고서 최소 반년 간은 국가고시 시험 준비에만 몰두해야 했다. 나는 현실을 살아가야 했다.
시간은 흐르고 무사히 국가고시를 합격했다. 이후 취직을 하고 직장인이 되어서는 그럴 거라 예상했음에도 과거 내가 생각했던 수준보다 시간은 더 부족하고 몸은 더욱 힘들었다. 사회초년생이 되어 일하는 것만으로 힘이 부쳤지만, 나는 이전처럼 낮에는 일을 하고 밤에는 글을 썼다.
의욕에 가득 찼던 나는 내 의지와 힘으로 해낼 수 있다고 생각했다. 마음을 먹으면 태산도 옮기는 게 사람인데, 의지를 가지면 해내지 못할 것이 무엇이 있을쏘냐. 앞서 학생 때부터 충실히 낮과 밤 각각의 일정에 맞춘 이중생활을 해왔기에 더 그렇게 생각됐다. 몇 년째 지속한 몸에 익은 일이었기에 특별히 내가 무리한다 생각하지 않았다. 설혹 무리한다 해서 뭐 어떤가 싶기도 했다. 보람 차기 그지없는 노력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