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쓰기의 꿈 5
어디서 봤는데, (아마 글쓰기 책에서 봤을 것이다) 한결같이 다들 완결을 내는 게 대단히 중요하다 말했다. 완결을 경험한 사람과 경험하지 못한 사람은 천지차이라는 말을 꾸준히 접하며 나는 무조건 완결을 내겠다는 각오를 굳혔다.
잘 쓰든 못 쓰든 글에 대한 품평은 뒤로 젖혀두고 아쉬운 대로 완결부터 내보자는 목표를 최우선 과제로 삼았다. 그러자 도리어 글을 쓰기 수월해졌는데, 뜻밖에도 새로운 단기 목표가 내가 나아갈 방향을 제시해 줬던 것이다.
그동안 갈피를 잡지 못하고 이것저것 조금씩 건드리던 여러 개의 자투리 글 중 내가 가장 관심 있고, 하고 싶고, 할 말이 많아 끝까지 끌고 나갈 자신이 있는 주제를 골랐다. 첫 작품인지라 유려함과 거리가 멀고, 내 눈에도 차지 않았지만 첫 글을 쓸 때 나는 곧잘 신이 나곤 했다.
의욕에 가득 차 있었으나 기술적인 부분은 무지한 터라, 되면 되는대로 안 써지면 안 써지는 대로 요령 없이 주먹구구식으로 내내 글을 붙잡고 있었다. 효율적이라던가, 속도감 있거나, 균형 있는 글과는 거리가 있었다. 대략적인 줄거리조차 잡아두지 않고 글을 쓰기 시작했고, 절정/위기/결말 혹은 1부/2부/3부로 글을 나누는 등 기본적인 얼개도 짜지 않았던 것 같다. 그저 쓰고 싶은 내용 그 하나만을 가지고 글이 흘러가는 대로 내버려 두었기 때문에 내가 쓰고 싶은 내용을 쓴다 하면서도, 여긴 어디고 어딜 향해 가는지 곧잘 길을 잃곤 했다.
다행히 하고 싶은 말이 명확한 만큼 헤매다가도 결국엔 글이 알아서 길을 찾아갔지만, 완결을 내기 전부터 글의 완성도가 떨어질 듯한 확신에 가까운 예감이 들었다. 용두사미일 것 같은 느낌마저 물씬 풍겼는데, 앞으로 돌아가 다시 읽는 순간 끊임없는 수정의 늪에 빠질 것 같아 애써 무시하고 앞만 바라보고 달려갔다. 몸은 힘들고 시간 대비 글이 쌓이지 않아 압박을 받았지만 어찌 됐든 꾸준히 지속했다.
학생 때, 그리고 이어진 직장 생활 내내 노력한 덕에 오래 붙잡고 있던 글이 빛을 볼 수 있었다. 마침내 완성한 글은 등장인물이 단 두 명 밖에 나오지 않는 소설이었다. 안타깝게도 완성된 글은 그닥 만족스럽지 않았다.
힘들게 글을 완성한 당시에는 후련함이 컸다. 기어이 해냈다는 생각에 벅찬 마음으로 앞장부터 마지막까지 완독 했다.
한 번 쭉 읽어내리고 나자 후련함은 어느새 자취를 감추고, 고작 이를 쓰기 위해 내가 그토록 노력했나 하는 생각에 힘이 들었다. 잘 쓰는 것까진 아니더라도 그럴듯하길 바랐는데 그조차 쉽지 않았다. 몇 년에 걸친 결과물이 예상을 벗어나자 크게 충격받았다. 한눈에도 고쳐야 할 부분이 우수수 눈에 띄어 나는 금세 의기소침해졌다.
어느 정도 예견된 일이었지만, 결론으로 갈수록 부실해져 가히 용두사미의 표본으로 삼을만했다. 단순히 머리만 크다면 그래도 위안을 삼겠는데 분하게도 그렇지가 않았다. 내 글을 사람이라 치면, 우선 팔과 다리가 여러 개였고 같은 팔이라 할지라도 크기와 모양이 제각기 따로 놀았다.
설상가상으로 팔인지 다리인지 구분마저 모호한 여럿이 커다란 몸통에 아무렇게나 들쭉날쭉 마구잡이로 붙어있는데, 그 많은 팔다리가 도통 주체가 되지 않았다. 한마디 기형적이었다.
하고 싶은 말은 많은데 그럴 능력이 되지 않음을 체감했다. 아무리 하고 싶은 말이 많아도 그 모든 말을 다 할 순 없었다. 암만 욕심이 나도 내 글에 맞는 부분만 조절하여 좁고 깊게 길을 내야 했는데, 꾸역꾸역 욱여넣었더니 버리지 못한 욕심만큼 몸통은 비대해지고 팔다리는 늘어났다. 욕심은 버리지 못한 결과가 내 눈앞에 있었다.
한동안 글과 관련된 모든 것이 꼴도 보기 싫었다. 글을 쓸 생각은커녕 다른 사람의 글도 읽고 싶지 않았다. 하루아침에 모든 걸 내팽개쳤음에도 글을 쓰지 않는 하루하루는 평탄히 흘러갔다.
나는 환경의 변화와 상황에 맞춰 유연하게 대응하기보다 변치 않는 절대성을 추구하는 쪽이었다. 이와 궤를 같이하여 이상적이고, 극단적이며, 완고하기까지 하여 영원을 가장하여 결론을 내리고 쉬이 뒤돌아보지 않는 편향적인 논리의 소유자이기도 했다.
그리하여 기본적으로 좋든 나쁘든 한 번 정한 생각을 고집스럽게 이행하여 지키는 편이었는데, 이상하게도 글에 한해서만큼은 자연스러울만치 아무 저항 없이 마음이 돌아서곤 했다. 내 마음인데도 정말 알다가도 모를 일이었다.
다시 보지 않을 것처럼 내팽개치고 떠나 글쓰기를 멀리하며, 잠시지만 머리를 비우고 평화로운 시간을 보냈다. 그러나 정말 까맣게 잊은 것이 무색하게도 얼마 지나지 않아 내 첫 글을 다시 읽어볼 생각이 들었는데, 칠전팔기의 정신으로 한 번의 실패 따위에 굴하지 않는 굳센 의지나 마음 때문이 아니었다. (그러면 좋으련만)
나에게 너무 중요했고, 중요한 만큼 열렬히 몸과 마음을 바쳤기에 뒤따라온 실망과 충격을 '한낱' 혹은 '따위'로 치부할 수 없었다. 당금의 실패가 나에게 아무 의미 없다고는 차마 말할 수 없었다. 결과적으로 오뚝이처럼 금방 일어서긴 했으나, 실은 용기와는 거리가 먼 이유에서였다.
퇴고에 대한 생각이 스멀스멀 올라왔던 것은 다름 아닌 미련 때문이었다. 내 의지와 시간과 노력이, 몇 년간 나를 이루는 모든 게 이 글 하나에 들어있다 생각하니 아쉽고 서운하여 쉽게 놓을 수가 없었다. 모든 게 너무 컸다 나에게. 이대로 멀어지기 아쉬웠고, 이렇게 놓아버리기엔 내가 쏟은 세월이 눈에 밟혔다.
새로이 글을 쓸 기력은 없었다. 그러나 단지 많이 지쳤을 뿐으로, 이제 더는 쓸 자신이 없다거나 글쓰기를 포기하겠다는 과장된 결론을 내리진 않았다. 결과물이 내 기준에 미치지 못해 실망하고 좌절하여 낙심했던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나, 다행스럽게도 아직 나를 이루는 대부분의 것은 견고히 땅에 뿌리를 내리고 있었다.
글을 완결 짓고 나면 퇴고 과정을 반드시 거쳐야 하는데, 글을 다 쓴 후 최소 한 달 정도는 시간이 지난 후 수정을 하는 게 좋다고 한다. 익숙한 내용이 아닌 낯선 글을 보는 느낌으로 읽기 위함인데, 이리 하면 그전엔 보이지 않던 수정할 사항이 새로이 눈에 들어온다고 했다.
얼마간 쉬며 정신을 차리고 보니 어느새 퇴고하기에 적당한 시간이 지나있었고, 여러 번 쓰고 지우며 반복했던 익숙한 문장들이 기억 속에서 조금은 희미해졌을 무렵 나는 마음을 비우고 다시 내 글을 읽어보았다. 맑아진 머릿속만큼 기대는 저 멀리 밀어 두고 말이다.
다시 만난 글은 팔도 다리도 여럿이라 여전히 인상이 찌푸려졌지만, 이미 알고 있는 사항인 데다 (한 번 봤다고) 알게 모르게 어느 정도 마음의 준비가 돼있던 것인지 약간의 거슬림만 남긴 채 큰 충격 없이 지나갔다. 별 탈 없는 것을 넘어서 짧은 휴식기간 동안 그새 너그러워졌는지 '처음부터 어떻게 잘하겠어. 첫 술에 배부를 순 없지. 처음이면 그럴 수도 있어' 하는 넓은 아량을 나 자신에게도 베풀 수 있었다.
완결을 낸 직후 글을 읽었을 땐 실망감에 압도되어 모르고 지나친 사항도 눈에 들어왔는데, 이래서 시간 간격을 두고 퇴고를 하라는 거구나 싶었다. (나보다 먼저 경험한 사람의 말은 한 번쯤은 들어서 정말 나쁠 게 없다)
시간이 지나 다시 보니 정말 새롭게 눈에 띄는 부분이 있었다. 내가 전달하고 싶은 무엇, 내가 하고 싶었던 말. 그 무엇이든 간에 아직은 미완성이지만, 수차례의 미숙한 시도 끝에 그럴듯한 형상을 이뤄 꿋꿋이 분명하게 존재했다. 내가 글을 쓰는 이유가 바로 그곳에 있었다.
오랜 기간 하나의 글만 잡고 있느라 익숙함이 눈을 가렸던 건지, 비관이 지나친 나머지 미처 보지 못했는지 모르겠다. 그러나 일단 한 번 눈에 띄고 나자 이후부턴 의외로 쉽게 내 글 군데군데에서 내가 추구하는 어떤 방향성을 발견할 수 있었는데, 내가 좋아하는 작가들에게서 익히 보았던 반짝임이었다.
만약 내 글을 다른 작가의 작품으로 만났다면, 당장 소장할 마음은 들지 않아도 이름쯤은 기억해 둘 용의가 생길 만큼 딱 그 정도의 반짝임. 더 나아질 미래를 고대하며, 이보다 더 성숙해질 다음 작품을 기대하며 말이다. 나도 모르는 사이 내가 좋아하는 작가들의 과거와 현재의 나를 같은 선상에 두게 되자 절로 가슴이 두근거렸다.
작고 서툴지만 이렇게 분명히 존재하는 반짝임을 도대체 얼마나 큰 충격을 받았다고 발견조차 못 하고 지나쳤는지, 어쩜 아예 본 기억조차 없는지 좀 웃기기도 하다. 나는 당선되지 못하는 글도 따 놓은 당상인 마냥 자신만만하게 제출하고, 떨어지는 면접도 만족하며 나오는 (어찌 보면 현실감각이 떨어지고 주제 파악이 덜 된) 자기애 만만인 사람인데, 그래도 이번 경우엔 어지간히 충격받았구나 싶어 남모를 헛웃음이 나왔다.
장르소설 계에서 엄청 다작을 하는 어떤 작가가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고 한다. 본인은 자신이 쓰는 글이 제일 재미있다고 말이다. 그 말을 듣고 나는 그 작가의 책이 나에겐 보통 이하였기 때문에 '이 작가는 자신한테 후한 편인가' 하는 생각과 함께 정말 진심으로 저런 생각을 했는지, 과연 가능은 한 지 의심스러웠는데 (눈이 낮은가?) 쉬지 않고 끊임없이 작품 활동을 줄줄이 이어가는 작가를 보며 어쩌면 이 사람은 정말 진심일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렇게 이 작가를 조금은 이해하는 입장으로 포지션을 변경하자, '자신의 글이 최고로 재밌진 않더라도 어느 정도는 그럴 수밖에 없겠다'며 당연하게 여겨지기까지 했는데, 조금만 더 생각해 보면 정말 그럴 수밖에 없어 보였다. 내가 좋아하는 소재, 배경, 관심 있는 사항 등 내 구미에 맞는 온 관심사를 때려 밖은 글이 바로 자신의 글일 텐데 재미가 없으면 오히려 이상하지 않겠는가. (읽는 것만큼이나 쓰는 것도 재미가 있어야 쓴다)
위와 같은 논리로 내가 쓴 글이니만큼 어설퍼도 (완전히 들어맞진 않아도 어느 정도) 당연히 내 취향일 거라 생각했다. 그리고 정말 그 흔적을 발견하자 기쁨을 감출 수 없었다.
내가 말하고자 하는 바가 어렴풋이 밖에 드러나지 않아 속상했지만, 이번이 그랬다는 거지 영원히 그러리라는 법은 없고 무엇보다 방향이 틀리지 않았음이다. 이렇게 쭉 쓰기만 한다면 나는 더 나아질 것이고, 언젠가 내 눈에 차는 글을 신나게 써내리고 있을 것이다. 그런 내 모습이 눈에 선하게 그려졌다.
시간을 들인다면 왜 나아지지 않겠는가? 당장 다음 단계를 뛰어넘진 못하더라도 적어도 첫 글을 쓸 때처럼 헤매진 않을 것이고, 다음이 안되면 그다음 그다음이라도, 짧게는 오르내림이 있다 해도 먼 시선으로 바라본다면 언젠가 내가 원하는 바를 내가 원하는 수준으로 표현해 낼 수 있음이 명백했다. 나는 지금보다 더 발전하고 더 나아갈 것이다. 이미 이 길을 걸어간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말이다.
한 번 글을 완성한 경험으로 말미암아 글쓰기에 어떻게 접근해야 하는지 조금은 내 나름의 윤곽이 잡히기 시작했다. 글을 막 쓰기 시작한 사람에게 왜 다들 완결 완결 부르짖는지 이해하고, 동의했다.
미약하지만 자신감이 붙은 나는 두 번째 글을 쓰기로 마음먹었다. 장편은 아직 끌고 갈 능력이 부족하다는 생각에 짧고 굵게 처음부터 아예 단편으로 계획했다. 한 번 해봤다고 줄거리 얼개도 알아서 슥슥 잡았고, 파트를 간단히 네 부분으로 나누었다. 그리고 각 파트를 완성하는 것을 단기 목표로 잡아 전략적으로 시간과 체력도 분배했다.
글의 내용은 더 짧아졌고 이번에도 등장인물은 단 2명뿐인 소설이었지만, 1년이 채 되기 전에 두 번째 작품을 완성했다. 정말 그렇게 나는 두 번째 글을 이전보다 훨씬 더 빨리 완성할 수 있었다. 짧은 시간에 완성한 두 번째 글은 첫 글보다 마음에 들었다. 고무적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