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민희의 모닥
* 과수화상병: 세균에 의해 사과나 배나무의 잎·줄기·꽃·열매 등이 마치 불에 타 화상을 입은 듯한 증세를 보이다가 고사하는 병을 말한다. 과수화상병은 별다른 치료법이 없어 과수계의 코로나19로 불릴 만큼 치명적인 병이다. 과수 한 그루에만 증상이 나타나도 반경 100m 이내 과일나무를 모두 묻어야 한다. 매몰 후에는 3년 동안 같은 땅에서 과수화상병이 발병할 수 있는 식물을 기르지 못한다. 기후위기로 인해 그 횟수와 규모가 점점 더 커지고 빈번해지고 있다.
그 해 여름,
작열하는 태양 아래
사람들이 포위하듯 모여 있다.
엄숙한 침묵
끈적이는 더위에
끈적이는 땀방울 아래를 타고 내려가면
깊게 파인 구덩이 안에
나무시체들이 뒤엉켜 쌓여있다.
피골이 상접한 앙상한 가지
피를 흩뿌려 놓은 듯한 얼룩덜룩한 붉은 나뭇잎
군데군데 이파리 사이에 보이는
늙은이의 검버섯과 같은 거무튀튀한 반점
타 버릴듯한 더위에 못 이겨
깊게 말려들어간 이파리를 보자면
마치 나무의 절망적인 절규가 느껴지는 듯하다.
끼익, 끼이익
한쪽에서
커다란 고철덩어리가
기괴한 소리를 내며
나무허리를 깊게 움켜쥐고 거칠게 뽑아
깊은 구덩이에 처넣는다.
나무는 미처 영글지 못한 퍼런 사과를 대롱대롱 매단 채
몸덩이가 짓이겨진채로 고꾸라진다.
곧 나무들의 무덤 위로
흰 가루가 뿌려진다. 마지막 의식을 치르는 듯하다.
끼이익-쿵!
퍼서석 흙먼지를 날리며 기계가 멈추었다.
일이 끝났다.
그 누구도 말이 없다.
젊은 공무원은 흘긋 농부를 바라보았다.
텅 비어버린 눈동자를 한 채
늙은 농부는 그 모습을 멍하니 바라보었다.
농부의 눈물은 말라 버린 것일까?
검은 검버섯과 깊이 패인 주름살의 세월의 흔적만큼 함께 살아왔던 나무들을 파묻어버릴 수밖에 없는 농부의 마음을 가늠할 수 가 없다.
“어르신-”
젊은 공무원이 긴 침묵을 깨고 말하였다.
“어르신, 아시다시피 3년간 나무는 다시 심지 못하시고-.”
“40년 일세”
“...내 손주보다 더 아끼고 보살폈어”
좀처럼 말이 없던 늙은 농부는 이 한마디 끝으로 다시 굳게 입을 다물었다.
망충하게 입만 뻐끔거리던 젊은 공무원은 곧 사망명부와 같은 파일을 고쳐 잡고 말하였다.
“어르신 그럼 가보겠습니다”
늙은 농부는 조용히 고개를 주억거렸다.
젊은 공무원은 잠시 뒤를 흘깃했다.
그러나 곧 쓰러지듯 절망적으로 무너지는 다리를 보고,
서둘러 시선을 거두어 허둥대며 쫓기듯 걸음을 재촉한다.
감히 그 농부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을까?
평생의 세월 함께한 자식보다 아끼던 나무를 단 몇 분 사이에 잃어버린 그 마음을.
젊은 공무원은 집으로 돌아왔다.
식탁에는 어제 산 새빨간 사과가 놓여 있었다.
무언가 홀린 듯 그 사과를 싱크대로 가져가 벅벅 씻었다.
사과에 축축한 물방울이 주르륵 흘러내렸다.
그 뻘건 사과를 멀거니 바라보다
낮에 본 농부의 벌건 얼굴과 함께 시뻘건 사과 색과 같은 찐득한 피눈물이 겹쳐보였다.
그리고 이내 갑자기 찾아온 아찔해지는 현기증에 눈을 질끈 감았다.
그 때 그 늙은 농부는 말라버린 눈물대신 마음으로 피눈물을 흘리고 있었으리라.
인간의 욕망으로 만들어낸 자연의 참혹한 불운은 어째서 가장 약한 존재부터 찾아오는 것일까?
유튜브 영상 참고
모닥 불씨 | 김민희
기후위기를 지역에서 농업으로 대응하고 싶어 고향 제주로 귀향하진 5개월 되는 청년농업인입니다. :) 농촌에서 지속가능한 삶을 살아가기위해 청년들과 실험 작당연구하는 농촌재생프로젝트를 하며 농촌 농업르네상스 실현하기 위해 열심히 이리저리 헤매고 다니고 있습니다. 근데 역시 아직 쉽지 않네요.
마을에서 청년들이 농촌에서 먹고사니즘을 해결할 수 있도록 건강한 농촌생태계를 만드는 것이 목표입니다.
인스타그램 @jj_jamong @belocallylab