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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호연 May 30. 2022

한살림 냉면과 푸주오이무침

먹고 있는 음식의 또 다른 맛을 상상한다

한살림 협동조합에서 먹거리를 주문한지는 상당히 오래되었다. 소정의 조합비를 내고 가입하면, 나와 가장 가까운 산지에서 생산된 식재료를 배송받을 수 있다. 먹거리에 드는 탄소 발자국도 줄이고, 유통 단계를 줄여 농가 소득에 보탬도 되면서 비교적 싱싱한 식재료를 얻을 수 있다는 점에서 두루 권장할 만하다. 그러나 한살림도 만능일 순 없다. 점포가 없는 동네에서는 오로지 배송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데, 한살림의 우리 지역 공급일은 일주일에 한 번뿐이다. 미리 주문해 두어도 주문 내역을 깜빡하기 일쑤다. 먹이에 대한 욕망과 계획은 매일, 매 끼니 수시로 바뀌기에 과거의 내가 세운 계획 따위는 아주 쉽게 무산되고 만다. 그래서 한살림 공급으로 식생활을 이끌어가지는 못하고 친환경 세정제와 화장지 등 생필품을 주문할 때를 노려 열심히 식품 목록을 살핀다. 주로 곡식이나 저장성이 좋은 뿌리채소, 언제나 반가운 쌈채소, 두었다 먹을 수 있는 가공식품 등이다. 더구나 지금 같은 여름이라면, 아무리 먹어도 질리지 않는 냉면 몇 봉지는 필수로 담아야 안심이다.


한살림 물냉면은 깔끔하고 개운한 맛이다. 달거나 짜지 않고, 밍밍하거나 비리지 않다. 줄 서서 먹는 이름난 맛집의 냉면이 아닌 가공식품 정도로 만족할 수 있다니, 실로 복 받은 입맛이라 하겠다. 냉면은 차게 먹는 것이므로 다른 때보다 면발을 더 부드럽게 삶아 먹는다. 냉면이 맛있으려면 면을 삶고 나서 전분을 열심히 씻어내는 것도 중요하지만, 국물을 담는 그릇도 그만큼 중요하다. 특히 물냉면은 면과 육수가 넉넉하게 담길 수 있도록 밑이 넓고 깊은 그릇이 좋다. 면이 국물에 푹 담기지 않으면 면 사이로 국물이 들지 않아 조금 답답하고 심심한 맛이 난다. 하지만 우리 집에는 적당한 면기가 없어 늘 밑이 가파르게 좁은 파스타 접시에 담아 먹는다. 대신에 육수를 넉넉하게 준비해두고, 아쉬운 대로 젓가락으로 면을 열심히 휘저으며 살얼음이 든 육수를 중간중간 끼얹어 먹는다. 냉면이 '식어서' 미지근해지지 않도록.  


레토로트로 만드는 국수라도 면 위에는 고명을 올려야 직성이 풀린다. 마침 오이가 있어 돌려 깎은 다음 면 위에 채 썰어 올렸다. 생채소라면 무엇이든 잘 먹고 탈이 안 나는 편인데, 이 또한 흔치 않은 복이라 함부로 자랑할 순 없겠다. 채소의 맛은 저마다 다르고, 매번 다른 즐거움을 준다. 특히 제철 채소는 '이 계절에 가장 싼 것'을 먹는 기쁨마저 배가된다. 지금부터는 오이가 싼 계절이니, 오이를 마음껏 먹어야 아쉬움이 없으리라. 불려 놓은 푸주를 라조장과 식초, 간장으로 양념해 푸주오이무침을 만들었다. 목이버섯과 푸주, 오이의 식감이 재미있고 매콤 새콤한 것이 입에 착착 감긴다. 동대문 중식당에서 먹었던 것과 비교할 순 없지만, 몇 번 만들어 보면 좋은 반찬이 될 것 같다. 먹는 동안에는 '지금 먹는 맛'을 음미할 뿐 아니라, '다음에 먹고 싶은 맛'을 미리 생각해보기도 한다. 


'다음에는 양념에 청양고추를 다져 넣어볼까' 

'고수를 송송 썰어 얹고 볶은 땅콩을 뿌려 먹으면 좋겠다' 

'이왕이면 중국 흑식초도 갖고 싶은데?'


먹고 있는 음식의 또 다른 맛을 상상하는 일은 지금 먹고 있는 음식을 더 새롭게 바라보도록 한다. 이 음식의 어떤 부분이 좋은지 거듭 생각하고, 어떤 부분을 보완하거나 각색하여 또 새로운 맛을 낼 수 있을지 헤아려볼수록 음식은 다채롭고 흥미로워진다. 그것을 먹는 방식이나, 담는 그릇에 대한 생각도 마찬가지다. 음식을 만들고 먹는다는 것은 생각하기에 따라서 단순히 배를 채우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무엇을 좋아하는지, 어디까지 좋아할 수 있는지 가늠해 보는 실험일지도 모른다. 


한 입, 두 입, 세 입, 먹을 때마다 생각은 더해지고 머릿속은 또렷한 감각과 상상으로 충만하다. 반드시 맛있지 않아도, 먹는 동안엔 대부분 그렇다. 이렇게 먹는 일을 즐거워하면서도 겉으로는 무심한 척, 묵묵히 젓가락질을 한다. 그리고는 식탁에 마주 앉은 사람에게 아주 쿨한 목소리로 짧게 내뱉는 것이다. 


"괜찮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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