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요일 아침... 그리고 장마
장마다.
국지적으로 호우가 쏟아지는 듯 하다. 작년에 큰 수해를 입은 우리 지역은 다행히 올해 장마는 큰 문제가 없이 지나가는 모양새이다. 지진을 겪고, 물난리를 겪고. 유래없는 자연재해가 연달아 닥치면서 내가 사는 지역의 사람들은 꽤 마음 고생을 했었다.
나는 뿜어내는 에너지가 많은 사람이라, 월요일 화요일이 지나고 수요일 아침이 되면 유난히 피곤하다. 남편을 보내고, 식탁에 앉아서 멍을 좀 때렸다. 포털창에 휙휙 넘어가버리는 광고마냥 여러 상념들이 머리속을 스친다. 맥락없는 생각덩어리들이 이쪽으로 떠올랐다가 저쪽으로 사라진다. 그렇게 멍하니 시간을 흘려보내고 아이들을 깨운다.
내 아이는 경증adhd 진단을 받은지라 호르몬조절을 위한 약을 복용중이다. 이 약의 유일한 부작용은 속이 뒤틀리면서 입맛을 뺏어버리는 것이다. 아이는 약을 삼킨 뒤 약 10시간쯤 무엇이든 먹기를 거부한다. 한창 먹고 커야 할 나이에 강제로 간헐적 단식 중이다. 이 상황이 매우 안타깝긴 하지만, 약 기운이 도는 그 시간동안에 평범한 아이들처럼 생각하고 말하고 행동하는 아이의 모습은 매우 만족스럽다. 초등학생쯤 되면 적당히 좋은 평판도 필요하기 때문이다.
점심과 오후 간식을 거르는 아이를 위해서 나는 아침과 저녁은 거하게 먹이려고 노력한다. 오늘의 아침은 돈까스이다. 검은 쌀과 섞은 밥 조금과 노릇 노릇 구운 돈까스. 아이의 최애인 시골 할머니댁에서 받아 온 김치를 차려냈다. 의도하지 않은 간헐적 단식으로 인해 위가 쪼그라든 아이는 한번에 많이 먹지 않는다. 밥을 깨작대더니 돈까스를 몇 입 먹고는 빵을 달라고 한다. 각종 견과류로 뒤덮힌 보슬보슬한 빵을 줬다. 아이는 만족스럽게 빵을 살피더니 냉장고 문을 열고 콜라를 꺼내온다. 아침부터 빵과 콜라라. 여느 엄마라면 이게 과연 옳은 식단인지에 대해 한번쯤 고민해 보기도 하겠지만. 나는 선택지가 없다. 비록 빵과 콜라지만, 그나마 견과와 건포도를 씹어 삼키는 아이를 보며 위안을 삼기로 했다. 기름에 튀긴 돼지고기를 먹어주기를 바랬지만 오늘은 그 날이 아니라고 하니 어쩔 수 없다.
"근데 너 오늘 무슨 계절인지 알아?"
타인에 대한 공감능력이 떨어지면 사회성이 부족할 수 밖에 없다. 사람들과의 평범하고 일상적인 대화를 이어가지 못 하고, 본인의 관심분야에 대해서만 전문가마냥 떠들어 대는 아이를 위해 나는 항상 날씨 얘기를 꺼낸다. "덥다"로 시작하게 되는 대화가 여름휴가까지 확장될 수 있다. "춥다"로 시작한 이야기는 평창에 눈이 얼마나 많이 내리는지, 어디 스키장의 어떤 슬로프는 어떤지를 지나서 마침내 양털은 언제 깍는지 등으로 마무리 될 수 도 있다. 그만큼 무궁무궁진한 스토리텔링이 가능한 것이 날씨이다.
"근데 너 오늘 무슨 계절인지 알아?"
다시 아이와의 식탁으로 돌아와서, 아이는 별 거 아니라는 듯이 답한다.
"여름이잖아"
"장마잖아"
거의 동시에 대답을 했다. 장마는 계절이 아니다. 아이는 내가 묻는대로 대답을 했다. Chat GPT가 등장하고 우리 인간은 질문을 잘 하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고 하던데, 나는 좋은 질문러가 되지는 못 할 것 같다.
"장마가 계절이야?"
아이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묻는다.
"계절은 아니지..."
"그럼 우리는 오계절이겠네?"
잠시 할 말을 잃은 나에게 아이는 또 신나서 떠든다.
"봄, 여름, 장마, 가을, 겨울. 대한민국은 오계절"
평범하고 시시콜콜한 날씨 이야기를 나누고 싶었던 엄마의 노력은 그렇게 사계절 대한민국이 오계절로 바뀌면서 마무리 되었다. 밤새 내리던 비는 그쳤고 하늘이 점점 밝아진다. 한창 장마중이라 덥고 습한 하루가 예상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