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글쓰는 로오렌 Jul 31. 2023

차라리 개를 키우는 게 낫지 않을까.

ADHD 아이를 키우는 고충... 에 대해.


차라리 개를 키우는 게 낫지 않을까?   


개가 낫다. 개는 항상 낫다. 그럼 대체 어떤 비교군을 가지고 있기에 “차라리”라는 수사가 붙는가? 놀랍게도 내 아이를 일컫는 말이다.      


2014년생, 올해 딱 10살이 된 나의 첫 아이. 처음 그의 존재를 알게 되었을 때를 기억한다. 나는 산부인과 진료실의 문을 나서며 오열했다. 배를 부둥켜안고 울었었다. 일주일 전에 차사고를 당했었고 x-ray 촬영을 했던 차였다. 평소에는 인지하지 못했던 가임기 여성 및 임산부에 대한 방사선 경고문이 그날따라 마음에 걸렸다. 허리를 정밀하게 촬영하기 위해서 방사선은 정확하게 나의 배를 겨냥했을 것이다. 임산부라면 당연히 겪게 되는 온갖 염려에 방사선 피폭에 대한 두려움까지 안고 이듬해 봄에 나는 아이를 만날 수 있었다. 2.8kg의 길쭉하고 작은 아이는 우렁찬 울음으로 존재감을 드러냈다.      


- ADHD 아이는 어릴 때 어떤가요?     


두 돌에서 세돌사이의 아이를 키우는 부모들의 막연한 질문이다. 그들은 말이 늦되거나, 움직임이 부산스러운 자신의 아이를 보며 혹시 내 아이가 ADHD는 아닐까 걱정한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애바애>다. 특별히 부산스럽고 공격적이고 말이 없는 아이가 있는 반면, 말도 잘하고 야무치게 행동하는 아이들도 있다. ADHD는 뇌의 전전두엽이 어떤 속도로 발달하는가의 문제이다. 발달을 잘하다가 어느 순간 멈춰버리거나 그 속도가 또래보다 느려지는 것 같다는 게 현실 토끼맘의 의견이다.      


이러다 내가 아이를 죽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한 적이 있다. 코로나가 극성이던 2020년의 어느 여름이었다. 당시 나는 갓난쟁이를 키우고 있었고, 아이는 유치원을 못 가고 있었다. 따로 학습지 선생님을 모시는 것 외에 사교육을 시키지도 않았고, 엄마표는 연산문제집 한 바닥이 전부였는데 아이는 잘 따라 했다. 동생도 잘 봐주었고, 잔심부름도 잘해주었다. 잘 먹고 잘 자고 책 보는 것도 좋아하고 말도 잘하고. 다 좋았다. 하지만 단 하나 고쳐지지 않는 문제가 있었는데, 그것이 나를 미치게 했다. 소변을 볼 때 조절이 미숙했다. 나는 이 아이를 4월에 아이를 낳고 다음 해 3월부터 일을 시작했다. 아이가 4살이 되던 해에 남편에게 모든 화장실 수발을 맡긴 터였다. 실로 오랜만에 아이와 오롯이 한 집에서 하루종일 생활하게 되면서 아이가 소변 조절이 미숙하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원활한 조준을 위해 스티커도 붙여보고 아이가 변기에 다녀간 후에는 물바가지로 물을 끼얹기도 해 보았지만 역부족이었다. 관리 안 되는 공중변소처럼 지린내가 진동을 했다. 아들의 전립선을 지켜주지 못해서 미안하다고 생각하면서도 나는 아이에게 통보했다.   

   

“앉아서 싸”         


아이는 울부짖었다. 절대 앉아서 오줌을 눌 수 없단다. 남자도 배변활동 시에는 앉은 채로 대소변 모두 가능한데 왜 너는 안되느냐고 물었다. 화내면서 앉아서 볼일 보라고 소리 지르기도 했지만, 기분 좋은 상태에서 아이와 이야기를 나누어보기도 했었다. 나는 도저히 내가 변기에 앉았을 때 진동하는 지린내와 뒤따라오는 불쾌감을 참을 수가 없었다. 이유는 없었다. 아이는 막무가내였다. 절대 앉아서 소변보지 않겠다고 울부짖어었다. 통곡을 하면서 떼를 썼다. 아이의 사고가 정지한 것처럼 보였다. 


돌이켜보면 ADHD 기질을 가진 아이의 지극히 평범한 행동이었지만, 그때는 그런 아이가 곱게 보이지 않았다. 나도 같이 소리 지르고 화장실 쓰지 말라고 악을 쓰기도 했다. 그러면 아이는 미안하다며 나한테 안겨서는 엉엉 울었다. 그래도 앉아서 쉬를 하는 것은 할 수 없다며 통곡했다. 그나마 여름이 지나고 나의 불쾌감이 조금은 가라앉았고 우리는 본인이 흘린 쉬는 본인이 처리하는 것으로 극적인 타협을 보았다. 


2023년 7월.. 지금도 여전히 아이는 소변 조절을 못 한다. 앉아서 소변보는 것은 여전히 거부한다. 하지만 예전처럼 바닥을 구르거나 소리 지르지 않는다. 그냥 본인이 노력하고 있지만 잘 안된다고 얘기할 뿐이다. 며칠 전에는 너무 화가 나서 앞으로 변기를 이용하지 말라고 했다. 아이는 알겠다고 했고, 몸을 배배 꼬면서 오줌을 참아내다가 본인이 뒤처리 잘하겠다고 싹싹 빌었다. 아마 극한까지 오줌을 참아낸 것은 사춘기의 조짐이 아니었나 생각한다. 


개들은 훈련받으면 행동교정이 가능하다. 주인에게 집중하고 주인과 교감하며 지시를 따르고자 애쓴다. 하지만 ADHD 아이는 본인에게 집중하고 본인의 감정만 중요하다. 본인이 싫으면 그냥 싫을 뿐이고, 깊게 생각하는 것을 거부한다. 주인이 슬퍼하면 개도 그 슬픔을 느낀다. 내가 슬퍼하면 아이는 불안해한다. 개는 주인을 위로하려고 한다. 아이는 자기의 불안을 해소하려고 한다. 


어떤가? 개를 키우는 게 더 마음 편하지 않은가?







매거진의 이전글 ADHD 아이 관찰일기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