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들은 원래 그럴까?
<유치원 다닐 때는 멀쩡했는데 학교 가더니 아이가 달라졌어요>
ad 진단을 받은 아이들을 둔 엄마들의 항변이다. 정말 그랬을까? 정말 당신의 아이는, 내 아이는 유치원 다닐 때는 없던 ad기질이 입학과 동시에 나타나는 걸까? 나는 자신 있게 "NO"라고 대답할 수 있다. 그냥 문제가 있다고 생각해 본 적이 없었던 것뿐이다. 또래처럼 말하고, 또래와 비슷한 정서를 가진 아이가 이상하다고 생각할 부모는 없다. 무엇보다 객관적인 비교 평가가 불가능하다. 특히 첫째이면서 아들을 키우고 있다면 내 아이가 또래들과 어떤 점이 다른지 알기 어렵다.
대부분의 미취학 아이들은 부모와 함께 있을 때는 문제행동을 보이지 않는다. 익숙한 환경과 익숙한 사람들 속에서 사랑받고 배려받고 본인의 욕구를 충분히 충족하며 생활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기관에서는 사정이 다르다. 또래들 틈에서 교사와 친구들에게 더 사랑받고 인정받기 위해 예민해진다. 때론 공격하기도 하고 공격받기도 한다. 좌절과 슬픔, 분노를 맛보기도 할 것이다. 가정보다는 또래집단에 속했을 때, 부정적인 감정들을 경험하고 받아들이며 다스리는 것을 배우기에 용이하다고 생각된다. 교사는 제삼자로써 보다 객관적으로 아이들을 대할 수 있는 위치에 있으며, 아이들 또한 교사들위 통제와 지시를 잘 따르는 편이기 때문이다.
우리 집 1호가 두 돌이 지나고 훈육을 시작할 무렵이었다. 어린이집 원장선생님께서 내 손을 꼭 잡고 오해 없었으면 한다며, 아이 자폐검사를 받아보자고 했다. 작은 가정 어린이집이었고 아이 반 정원은 4명이었는데, 그중에 세 명이 여자아이였다. 물론 내 아이는 남자아이다. 다른 3명과 어울려 노는 것이 서툴렀고 혼자 놀기에 심취해 있었으며 불러도 대답이 없다는 것이었다. 몸이 재빠른 것에 비해 말이 느리기도 했다. 자폐검사는 할 곳이 마땅치 않아서 지역 내 큰 병원에 데려갔더니 병원에서 언어검사를 해주셨다. 복도에 서서 대기하는데 아이가 쉬지 않고 떠드는 소리가 들렸다. 별 이상 없음으로 결론이 났다. 그래도 불안한 마음에 민간 센터에 아이를 데려갔는데 센터에서도 아이에게 별 이상은 없지만, 언어를 더 늘리는 프로그램이 있으니 수업을 받아볼 것을 권했고, 나는 두 달 정도 그 센터를 다녔다. 당시 교류하던 아이엄마들도 남편도 나를 말리는 상황이었다.
"아들들은 원래 그래. 네가 예민한 거야."
엄마들 커뮤니티에 아이와 관련한 에피소드를 공유하면 항상 이런 댓글이 달리기도 했다.
"내 아들만 그런 게 아니었군요"
충동성이 강하고 주의가 산만하며 조리 있게 말하지 못하는 것이 과연 아들들의 특징일까?
타인에게 공감하지 못하며, 엄마나 선생님에게 싫은 소리를 들어도 5초 만에 미소 지으며 다가오는 것은 과연 아들의 심플함인 걸까?
유치원 1년 차, 보통의 5살들은 행동조절, 감정조절이 미숙하다. 그들은 쉽게 싸우고 화내고 슬퍼한다. 그리고 쉽게 화해하고 쉽게 웃는다. 아침엔 싫었는데 점심엔 좋았다가 오후엔 또 싫어지기도 한다. 엄마가 보고 싶어 눈물이 나다가도 눈앞의 마이쮸냐 집에 있는 엄마냐를 고르라면 우선 마이쮸를 고른다. 엄마 생각은 까맣게 잊어버리는 일도 허다하다. 유치원 2년 차, 6살쯤 되면 아이들의 발달에 슬슬 차이가 나기 시작한다. 어른이 보기에도 믿음직한 아이가 있는 반면 과연 유치원에서 2년 차가 맞는지 의심스러운 아이들도 있다. 색색깔의 무지개를 그려내는 아이가 있는 반면 동그라미 하나 못 그려서 멍하니 앉아있는 아이들도 있다. 수업시간 내내 선생님과 교감하며 배움을 익히는 아이가 있는 반면 본인 발가락을 빨고 있는 아이들도 있다. 보통은 남자아이들이 그런 편이긴 하다. 7살이 되면 아이들은 폭풍 성장을 한다. 몸집도 커지고 기운도 세지고 무엇보다 머리가 굵어진다. 교실바닥에 드러눕거나 이유 없이 친구를 괴롭히거나 선생님과 교감하지 못하는 아이들은 거의 없다. 혹시 7살 아이가 위와 같은 행동을 하고 있다면 당장 병원으로 데려가라고 권하고 싶다.
내 아이는 유치원에서 3년을 보내면서 숱한 말썽을 피웠다. 친구를 때리거나 물건을 뺏거나 선생님께 버릇없이 굴거나 하지는 않았다. 본인의 흥에 취해서 큰 소리로 노래 부르고 춤을 추는 과정에서 자기 때문에 친구들과 선생님이 불편하다는 것을 전혀 인지 하지 못 했다. 복도에서 뛰면 안 된다는 규칙을 항상 무시했던 것 같다. 누군가가 그 사실을 상기시켜 주면 알겠다고 대답하면서 뛰어다녔을 것이다. 책상 앞에 앉아서 하는 활동을 즐기지 않았다. 그림도 학습지도 완성도가 떨어졌다. 선생님의 지시를 들어도 완벽하게 이해하지 못했던 것 같고 작업 수행 능력도 떨어졌던 것 같다. 체육시간에는 지치지 않았고, 발표를 잘했다. 누구에게든 같이 놀자며 다가갔다. 상대방이 싫어하는 기색이어도 개의치 않았을 것이다. 블록 조립과 색종이 접기 등은 따라올 아이가 없었다. 선생님들도 아이의 창작물과 아이디어에 감탄을 하고는 했다. 내 아이를 만나는 선생님들은 한결같이 또래보다 순진한 아이라고 했다. 나 또한 그렇게 느꼈다. 내가 보기엔 과하다 싶은 공감능력 결여라든지 상황인지가 제대로 안 되는 부분 등에 대해서는 아직 어려서, 혹은 아들이라서 외동이라서 그런 것 같다고 하셨다. 나도 그런 줄 알았다. 난 아들이 아니어서 아들들의 사고방식에 대해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그냥 나랑 많이 다르구나...라고 막연히 생각했을 뿐이다.
만약 내가 그럼에도 내가 그때에 아이의 문제행동에 개입했다면 어땠을까? 아이의 내면을 객관적으로 평가받았다면? 나의 양육태도를 코칭받고, 아이에게 놀이치료나 사회성 수업 같은 것을 받게 해 주었다면? 남들의 말에 귀 기울이지 않고 아이와 병원을 다니고 언어치료를 감행했던 그때처럼 적극적인 행동을 취했다면. 만약 그랬다면 나도 아이도 더 건강한 지금을 살고 있지 않았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