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도 어김없는 가을이다.
나에게 가을은 벅차오름과 황홀함의 다른 말이다. 네 계절 중 가장 기다리는 순간임은 애써 말할 것도 없다. 곳곳마다 샛노랗게 익은 거리를 바라보고 있으면, 가던 걸음을 그대로 멈춰서 내가 마주하고 있는 운치를 듬뿍 느끼곤 한다. 주변에 함께하는 사람이 있다면 '이 은행나무 너무 예쁘지.' '지금 하늘 색깔 좀 봐. 이건 찍어야 해.' 하며 너스레를 떨어보기도 한다.
특히, 가을이 주는 특유의 냄새와 낙엽의 바스락거리는 소리는 오직 이맘때에만 느낄 수 있는 정취다. 마른 단풍이 수북이 떨어진 가로수길을 걸을 땐 슥슥- 발을 끌어 낙엽 속에 발을 푹 파묻어보는 장난을 좋아한다.
이 마법 같은 계절은 나의 플레이리스트 수록곡을 180도 뒤집게 만들기도 한다. 평소 출퇴근길엔 업무로 내려앉은 텐션을 끌어올릴 목적으로 가벼운 댄스 팝이나 대중음악을 듣는데, 가을이 완연해질 때쯤부턴 리듬이 느리고 무거운 재즈와 클래식이 플레이리스트의 90프로를 지배한다. 이 계절엔 음악마저도 무르익는 것 같다.
길을 수놓는 들꽃들도 계절에 맞춰 또렷한 색으로 영글어간다. 불과 2~3년 전만 하더라도 들꽃은 너무 노골적인 빛을 띠고 있어 예쁘다고 생각하지 않았는데, 요즘 들어선 건강한 들꽃이 아름답다는 생각을 자주 한다. 크고 작은 일들을 아주 조금 겪어보니 보는 안목이 바뀐 것인지도. 아니면 생각하는 시선이 달라진 것인지도 모르겠다.
가을은 차 맛이 유독 달큼하고, 책 맛이 한층 높아지는 계절이기도 하다. 과일향을 머금은 따뜻한 차 한잔으로 한기를 녹이면, 일상을 바삐 보내느라 미뤄두었던 페이지들이 술술 넘어가는 '책 맛'을 더욱 느낄 수 있다.
나는 가을이 곁으로 다가올 때 풍기는 그윽한 분위기를 사랑한다.
올해도 가을은 나에게 그저 좋은 계절.
언제나 가을은 나에게 벅찰 만큼 황홀한 계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