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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밥을 해 먹는다는 것은

by 책읽는 알감자




바야흐로 배달의 세상. 삼시 세끼 심지어 1년 365일을 시켜 먹거나 사 먹을 수 있다고 해도 무방한 요즘. 직접 만들어 먹는 밥에 흥미를 느끼기 시작한 것은 중학생 시절 부모님께 치킨텐더 또띠아를 해주겠다고 온 부엌을 헤집어 놓았을 적부터다. 별 맛이 나지도 않았을 텐데 딸내미가 해준 요리라고 맛있게 먹어줬던 부모님의 반응에 '직접 요리해서 누군가를 먹인다는 것'의 보람을 알게 됐다.


본격적으로 밥을 해 먹은 시점은 서울로 삶의 터전을 옮겨 내 살림은 내가 챙기게 된 4년 전부터다. 비좁은 오피스텔 자취방 부엌에서 단출한 재료들로 간단한 요리들을 해 먹기 시작했는데, 이게 썩 맛도 있고 재미도 있는 것이다. 결혼 후 마련한 지금의 신혼집 부엌은 그에 비하면 태평양처럼(?) 넓어 나로선 요리할 수 있는 최적의 환경이 조성된 것이다.


그렇다고 난다 긴다 하는 요리 전문가들이나 주부 9단들 같은 화려한 스킬이 있는 것도 아니다. 그냥 남들 해 먹는 수준만큼 이거나 그에 조금 못 미치는 우리의 소박한 집밥을 소개해 본다.



새송이버섯이 많이 남아 계란물과 부침가루 입혀 만들어 먹은 버섯전과 참치김치찌개.
싱싱한 냉장 닭이 있어서 마늘, 청양고추, 버섯 넣고 만들어본 매콤한 닭갈비볶음. 모짜렐라 치즈로 마무리
복날 기념 삼계탕이 땡긴다는 남편이 해준 요리. 작은 5호 닭 2마리 푹 고아 삶아 먹었다. 목 부분이 좀 무서워서 대파로 가림..
비 오는 날은 역시 전이 땡긴다. 애호박, 양파, 계란에 부침가루만 넣어 얼른 부쳐먹은 애호박전. 달큼하고 식감도 좋은데 다른 전보다 간편하게 만들 수 있어서 추천.
갑자기 내가 만든 척 등장한 임금님 수라상의 정체는 바로 주부 9단의 위력을 뽐내는 우리 시어머님 밥상. 잠깐 자랑.
메추리알 장조림을 무진장 좋아하는 나. 반찬가게에서 사 먹으면 항상 양이 아쉬워서 대량으로 푹 만듦.


전날 밤 홍가리비찜을 해먹고 남은 가리비를 발라내 토마토 파스타 재료로 넣어먹었다. 냉동실에 남은 마늘빵까지 꽂으니깐 썩 요리스러워 보임.
회사에서 <요리킥> 마파두부 소스 팩을 받아왔다. 사실 소스가 어렵지 다짐육,두부,양파,대파 썰어 볶아주기만 하면 간단하게 끝!
대용량 올리브오일을 샀으니 얘를 적극 활용하는 올리브오일 파스타를 해야지. 면 따로 안 삶고 물 자작하게 넣어 만든 원팬 파스타.
오늘 아침 새벽에 눈뜨자마자 얼큰한 된장찌개가 땡겨 감자 삭삭 썰어 먹은 감자된장찌개. 고추장 반 스푼 넣어주면 쿰쿰한 맛이 덜 남.






사실 요즘 부엌의 주연은 내가 아니라 남편이다. 나보다 직장도 훨씬 멀어 퇴근하면 7시가 훌쩍 넘지만 오자마자 부엌에 들어가 임산부 저녁을 챙겨준다고 투닥거리는 남편의 뒷모습은 항상 분주하다. 나는 부엌에서 행복한 조연으로 전락했다.


다들 그러겠지만 가끔은 집에서 밥해 먹는 게 정말로 귀찮아 죽겠을 때도 있다. 일 끝나고 돌아오면 손 하나 까딱 안 하고 싶은 그 마음 우리도 매한가지다. 그럴 땐 그냥 맘 편하게 배달시켜 먹고 덜 피곤한 다른 날에 해 먹지 뭐. 집밥을 해 먹는다는 것은 습관화되어 있다고 해도 귀찮고 지난하다. 그래도 일주일에 3번 이상은 시켜 먹지 말자고 나 자신한테 다짐한다. 아무도 시킨 건 아니지만 그냥 안팎으로 건강하기 위한 나 그리고 우리 가족의 삶을 위해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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