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렸을 적부터 크게 가려먹는 음식이 없었다. '편식하지 말고 먹어야지'라는 말이 등 뒤에 따라붙을 무렵의 나이엔 그 나이 또래들이 싫어했던 각종 나물 반찬들도 곧잘 집어먹곤 했다. '편식'이란 단어와는 거리가 먼 유년기를 보냈다.
편독(偏讀)- 한 방면에만 치우쳐 책을 읽음.
그런데 웬걸, 다 커버린 마당에 이제 와서 편식하는 것이 생겨버렸다. 바로 읽는 것이다. 간혹 '안 읽는 것보단 낫지 않냐'란 의견이 있지만 나에겐 독서 편식을 극복하기 위해 나름의 노력을 기울였던 역사가 있다.
대학시절 한 학기동안 책만 읽기 위해 과감히(?) 휴학계를 낸 적이 있다. 학기 중에 이런저런 핑계로 읽지 못해 켜켜이 쌓인 책들과 그간 범접하지 못했던 분야의 책들에도 손을 대고 싶다는 이유에서였다.
이 기회에 독서 편식을 뿌리 뽑자는 '맹랑'한 다짐은 '허무맹랑'한 실패로 매듭지어졌다. 오히려 관심있던 분야에 더더욱 몰입하게 되었고, 관심 밖의 책들은 여전히 미지의 영역으로 남았다. 지금도 편독하는 습관은 쉬이 고쳐지지 않는다.
몸이 따라주지 않는다면 반대로 마음을 고쳐먹는 방법이 있다. '가볍게 즐기는 책'과 '각 잡고 배우는 책'으로 독서의 영역을 나눠본다.
각 잡고 어려운 책을 마주 할 땐 두 눈 부릅뜨고 연필을 집어 든다. 집중이 안될 땐 밑줄 그어가며 중간중간 낙서도 끄적인다. 어떤 날은 몇 시간 내내 열 페이지도 채 넘기지 못하고 책을 덮는 날도 있다.
이제는 그렇게 책을 덮은 날마저도 만족스럽다. 그 책을 펴기가 무섭게 꾸벅꾸벅 졸았던 시절에서 몇 페이지라도 넘기게 되었음은 장족의 발전이 아닌가. 독서 편식은 야금야금 고쳐가는 즐거움이 있다.
그리고 조금은 추상적일지라도 따뜻한 문장을 쓰게 만들어준 책들. 지금처럼 브런치에 글을 써 내려갈 수 있게 만든 나의 '편애 서적'들도 더욱 사랑해줄 예정이다.
독서 편식. 가만 생각해보면 그리 나쁜 것만도 아닌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