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난히 책에 손이 가게 만드는 공간이 있다.
책이 잘 읽히는 공간, 저절로 책을 펼치게 만드는 공간이란 말은 너무 길고 오래 걸린다. 어느 정도 간략하고 적당한 말을 찾다가 이를 '리딩존(Reading zone)'으로 칭해본다.
나의 리딩존은 지하철이다. 지하철로 출퇴근을 시작하게 되고 나서 옆구리에 항상 책 한 권을 끼고 다닌다. 출근길에 소요되는 40분이란 시간은 한눈팔지 않고 책에게만 오롯이 집중할 수 있는 골든타임이다. 출근하는 노선이 다행히 지옥철이 아닌 덕분도 있다. 지하철에서는 주로 짤막한 에세이나 소설을 자주 읽는다. 가끔 공감을 불러일으키는 문장이나 눈시울이 왈칵 붉어지는 구절이 나오면 흡- 하는 소리와 함께 행여나 누가 볼세라 손으로 입을 막으며 청승을 떨어보기도 한다.
얼마 전에는 이런 일도 있었다. 읽고 있는 책의 배경이 서대문역과 그 안에서 벌어지는 일들이었는데, 때마침 내가 지나고 있던 역이 우연찮게 서대문이었다. 그때 심정을 글로 표현하자면 큰 비눗방울 안에 책과 내가 함께 감싸인 느낌이었다. 기분 좋은 포근함이었다.
요즘 들어 지하철 리딩족을 자주 접하는데 천고마비 독서의 계절인 가을이 도래해서일까. 지하철 안에서 책을 읽는 동지를 발견하면 그게 그렇게 반가울 수가 없다. 책 비눗방울에 폭 빠진 사람이 또 있다는 사실에 묘한 동질감과 안도감이 든다.
편안한 집도 또다른 성격의 리딩존이다. 지하철은 이동을 하는 중, 책에게 짧고 굵게 집중할 수 있는 공간이라면, 집은 여유 부리며 책을 듬뿍 즐길 수 있는 공간이다.
집콕 독서를 즐기는 나만의 방법
깨끗한 아크릴 독서대 위에 책을 올려놓는다.
저장해놓은 Book playlist를 잔잔하게 튼다.
따뜻한 차를 한잔 우려 홀짝대며 독서를 즐긴다.
피로감이 오면 책을 잠시 덮어두고 창밖을 바라본다. (*잠이 오면 잠시 눈을 붙였다가 일어나도 좋다.)
상황에 따라 기분에 따라 계절에 따라 리딩존은 시시각각 바뀐다. 리딩존을 만들면 또 그 영역을 점차 넓혀가는 재미를 느낄 수 있다.
이번 가을엔 청명한 하늘이 곧바로 보이는 한강 잔디밭으로 책을 들고나가봐야겠다. 아니면 한옥스테이에 머물며 그곳에서만 느낄 수 있는 분위기를 책과 함께 누려도 좋겠다.
리딩존을 탐색하는 길이 있다면 아마 그곳에서는 은은한 편백나무 향기가 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