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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쓰는 요가 수행자 Dec 20. 2022

그럼에도 친구가 필요하다

코로나에서 버틴 임신, 출산, 육아의 시간들


사실 우리 집 맨 끝방에는 하우스메이트로 조용하고 든든한 남동생이 하나 살고 있다. 공무원 시험공부를 할 수 있도록 신랑이 배려해줬고 나도 혼자 공부하는 것보다는 여기가 나을 것 같아서 와서 살라고 했다. 


20살 이후로 동생과 같은 공간에서 지내본 적이 없었다. 그래도 동생을 부른 건 주말 부부 시절에 나 혼자 있는 게 너무 심심했던 이유도 있었다. 


동생은 아파트 헬스장에서 프런트를 보는 간단한 아르바이트를 해서 용돈벌이를 했고 나머지 시간에는 거의 방에 틀어 박혀 지냈다. 이제 다 큰 성인이다 보니 몇 시에 자고 일어나는지 알 길은 없었지만 그래도 식사 시간이 되면 나와서 밥은 먹고 들어갔다.


신랑이 집에 없는 날이 더 많으니 남자가 필요한 순간에 동생은 성실한 일꾼이 되어 나를 도와줬다. 하지만 아무리 혈연이더라도 10년 동안 떨어져 살았던 막둥이 동생과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하며 친구처럼 지내기에는 좀 무리가 있었다. 


나는 친구가 필요했다.     




인천으로 파견을 오면서도 이 새로운 동네에서 친구를 사귈 생각은 하지 못했다. 평일에는 학교에서 동료 선생님, 아이들과 시간을 보냈고 주말에는 남편과 시간을 보냈기에 딱히 필요성을 느끼지도 않았다.

 

하지만 이제는 사정이 달라졌다. 남편은 내가 퇴원한 뒤에도 여전히 야근이 잦았다. 새벽까지 일하는 날도 있었다. 남편과 인사를 하고 자는 날보다 혼자 잠드는 날이 더 많았다. 아침에도 출근하기 바빴기에 침대에 손을 흔들어 보내고 나면 하루를 오롯이 혼자 보내야 했다. 


Photo by Augustine Wong on Unsplash


나는 엄마에게도 친근하게 전화를 거는 사람이 아니었다. 하지만 종일 입을 꾹 닫고 살다 보니 누구라도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동생이랑은 주로 밥 먹을 때 만날 수 있었지만 그조차도 생활 패턴이 달라서 각자의 식사를 준비해 먹는 날이 더 많았다. 남동생과의 대화는 건조하기 짝이 없는 일상 대화랄까. 동생은 그마저도 누나가 방 청소 좀 하라고 잔소리를 안 하면 다행이라고 여겼을 것이다. 


주변에 말을 나눌 사람이 없고 내 이야기를 들어줄 사람도 없으니 나중에는 배에 있는 아기랑 이야기한답시고 혼잣말을 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걸로는 목마른 갈증을 채울 수가 없었다. 


“해피야, 이제 뭐 할까? 넌 뭐하고 싶니?”

대답 없는 메아리는 사람을 더 공허하게 만들었다.      




이렇게는 못 살겠다 싶어서 동네 맘 카페에 접속했다. 처음 결혼했을 때만 해도 맘 카페에 들어가는 게 좀 낯설었다. 하지만 이제는 정말 엄마가 되고 있지 않은가. 


결국 아기 엄마가 맘 카페만큼 위안과 위로를 느낄만한 공간도 없었다. 나는 용기 내 친구 찾는 글을 올렸고 댓글이 두 개 달렸다. 나이가 같은 아기 엄마라는 이유만으로 그 친구들을 만나러 갔다. 


한 명은 같은 아파트에 사는 친구였다. 우리는 둘 다 2월이 출산 예정일이었다. 다른 점이 있다면 그 친구는 첫째가 이미 5살이고 이번에 둘째가 나올 거라는 것이었다. 


우리는 가끔 아파트 근처를 살살 걸었고 임당 검사를 통과했는지 안부를 물었다. 몸이 점점 더 무거워지면서 자주 보지는 못했지만 바로 옆에 동지가 있다는 것에 안심이 됐다. 


두 번째 친구는 6개월 아기를 키우고 있는 엄마였다. 처음으로 아기 있는 집에 놀러 갔는데 온갖 소리가 나는 알록달록한 장난감과 아기의 모습을 보고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그 친구도 초보 엄마였지만 나에게는 엄청나게 대단한 선배였다. 아기를 안고 다루는 것을 보면서 내가 저런 걸 할 수 있을까 생각했다. 그 친구와는 출산 전에 두 번인가 본 게 전부였지만 아기를 낳고 카톡으로는 수없이 많은 것들을 물어볼 수 있었다. 


그러면서 생각했다. 내가 혼자는 아니구나.      


*사진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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