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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쓰는 요가 수행자 Dec 23. 2022

무거워지고 지쳐가는 하루하루

코로나에서 버틴 임신, 출산, 육아의 시간들

신랑이랑 여유로운 시간을 보냈던 건 아기가 생기게 된 5월의 결혼기념일 여행과 평창으로 갔던 여름휴가 이렇게 두 번이었던 것 같다. 그 뒤로 신랑은 꾸준히 참 바빴고 나는 하루하루 변하는 몸 때문에 힘들었다. 


인천에서 수돗물로 난리가 난 적이 있어서 우리는 이사를 온 뒤에도 정수기를 설치하지 않고 2리터짜리 생수 묶음을 시켜서 먹고 있었다. 평소에 무서운 물건은 대부분 신랑이나 동생이 옮겨줬지만 그날따라 집에 아무도 없었다. 


나는 세탁실에서 뭘 꺼내기 위해서 잠깐 생수병 묶음을 밖으로 꺼냈다 다시 집어넣었다. 단지 그뿐이었는데 손가락 관절이 망가져 버렸다. 손이 팅팅 부어서 접었다 폈다를 하면 아팠고 힘이 하나도 들어가지 않았다. 이젠 페트병 뚜껑도 돌려서 딸 수 없는 손이 돼버리고 말았다. 




물론 남편도 힘들었다. 가끔 남편이 일찍 퇴근하면 사무실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종알종알 이야기했다. 나는 거의 들어주는 편이었는데 그게 우리 대화의 많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었다. 


사무실 직원들에게 어떤 말도 안 되는 일이 있었는지 그들 각자의 성격이 어떻고 복장 터지는 포인트는 무엇인지 모두 파악하고 있었다. 


내 얘기도 좀 들어줬으면 했지만 그런 일은 거의 없었다. 사실 물어본다고 해도 나의 하루는 매일 똑같고 지겹고 그냥 그래서 딱히 할 말이 많지는 않았다.


그러면서 기대를 말아야지 생각했다. 기대를 조금이라도 할수록 화나고 짜증 나는 일만 많아지는 것 같았다. 그냥 주말 내내 나가서 일해도 아무 소리도 하기 싫었다. 글 쓰는 방에서 창문을 열어봤자 보이는 것도 없고 예전처럼 자유롭게 멀리까지 돌아다닐 수도 없었다.


나는 몸이 무거워서 못 나가는 걸까 아니면 코로나 때문에 무서워서 못 나가는 걸까. 퇴원을 한 뒤로는 운동도 무서웠고 그렇다고 가만히 집에만 있으니 날이 갈수록 살이 찌는 것도 싫었다. 


저녁때가 되면 앉아 있기 힘들어서 누워있어야 하는 것도 답답하기만 했다. 만삭 사진을 찍으려고 알아보고 있었는데 찍으면 뭐 하나 싶고 그냥 아무 소용도 없는 것 같았다.     



뭘 해내는 일은 참 어려웠다. 뭔가 열심히 해내면서 살고자 노력했으나 결국은 어느 정도 신랑을 기다리다가 오늘도 늦어진다는 소식에 지쳐가고 있었다. 


어느 날은 혼자서 유튜브를 보면서 밥을 먹다가 감성적인 노래를 틀어놓고 울기도 했다. 막달에 다다르면서 정신은 더 말랑말랑해지고 몸의 변화를 받아들이는 게 결코 쉽지 않았다.


몸무게는 늘 50kg 언저리에서 벗어난 적이 없었건만 이제 70kg을 코앞에 두고 있었다. 앉았다 일어나는 건 물론이고 혼자서는 양말을 신기도 벅찬 몸이 되어버렸다. 


매일 잠들기 전에는 욕조에 물을 받아 반신욕을 했는데 그렇게 하지 않으면 온몸에 혈액순환이 되지 않아서 잠잘 수가 없었다. 타이머를 맞춰 놓고 따뜻한 욕조에 누워있었다. 하루 중에 가장 행복한 시간이었다.




해피는 이런 나의 복잡한 심경을 아는지 모르는지 궁둥이를 쭉 내밀고 다리도 쭉쭉 뻗으면서 잘 지내고 있다. 댄스 음악이 나오면 들썩들썩 움직이기도 하고 엄마 목소리보다는 아빠 목소리를 좋아했다. 


인터넷에서 임신 중 교통사고 이후에 아이가 청력을 잃었다는 이야기를 듣고 해피가 우리 목소리를 듣고 있는지 더 눈여겨서 관찰했다. 


괜찮다 싶다가도 아닌 것 같기도 했다. 쓰레기를 버릴 때 소형전자제품을 담는 커다란 철제 함을 열었다가 일부로 쾅 닫아보기도 했다. 해피가 움찔 놀라면 아, 다행이다 싶었다. 


막달까지 학교에 가서 일했다면 집에서 이런 날들을 보내는 것을 사치라고 여겼을 것이다. 지루한 일상에 침착되어 버린 나는 그런 생각을 못 했다. 다만 오늘의 내가 얼마나 힘들고 지쳐가는지를 온몸으로 느낄 뿐이었다. 




하루하루는 너무 빨리 지나가고 아침에 일어나서 밤에 자기를 반복하는데 점점 깨어있는 시간은 줄어들었다. 매일 목표한 만큼 글을 쓰지는 못했다. 한 시간에서 두 시간 정도 앉아 있는 것도 허리와 등이 아파서 힘들었다. 


배는 이제 묵직해져서 똑바로 누우면 복부를 압박했고 밤에 잘 때도 기다란 쿠션을 끼고 이리저리로 돌아눕다가 겨우 잠이 들었다. 결국 침대에 누워서 핸드폰만 보다가 저녁밥을 먹었고 다시 책상에 앉으면 하루가 끝나가고 있었다. 


사실 해피는 어떻게든 세상에 잘 나올 것 같은데 내가 소설을 마무리 짓지 못할까 봐 그게 더 겁났다. 이 소설이 세상에 나오는 그날이 올까. 더 미룰 수도 없고 누가 나 대신 마무리를 지어줄 수도 없다. 이래도 저래도 몸이 아플 거라면 그냥 앉아서 버티는 게 맞는 것 같은데 그게 잘 안 됐다. 


*사진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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