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약 초등학교 1학년부터 6학년까지 6년 동안 한 명의 담임 선생님이 아이를 지도한다면 사람들은 어떻게 생각할까?
먼저 학부모가 극구 반대할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다양한 선생님들이 많은데 어떻게 한 선생님에게서만 6년을 배울 수 있겠는가.
매해 담임 선생님이 바뀌기 때문에 여러 선생님을 만나 볼 수 있고, 올해 담임선생님이 마음에 들지 않더라도 1년만 기다리면 새로운 선생님을 만날 수 있다. 선생님마다 좋은 점과 나쁜 점이 있으니 한 사람만 6년 내내 보는 것은 좀 억울해 보이기도 하다.
부담스럽기는 선생님도 마찬가지이다. 학년 말이면 대부분의 선생님들은 다음 학년으로 올라가는 아이들을 맡으려고 하지 않는다. 가르쳤던 아이들을 또 가르치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이미 1년 동안 애증의 관계가 된 아이들을 또 만나느니 새로운 아이들을 만나 교실을 꾸리고 싶어 한다.
몇 년에 걸친 깊은 관계를 맺은 것은 교사와 학생 사이에도 서로에게 부담스러운 일이다. 하지만 이런 방침을 기본으로 두고 만든 놀라운 학교가 있다.
바로, 발도르프 학교이다.
발도르프 학교는 1919년 루돌프 슈타이너에 의해 세워졌고 독일에서 전 세계로 퍼져나간 대안교육이다. 발도르프 교육에서는 신체 - 정신 - 영혼의 조화로운 교육을 강조하여 신체를 이용하여 정신과의 협력적인 발전을 도모하는 '노작교육'을 교육 내용으로 한다. 1994년 열린 세계 교육부 장관 회의에서 21세기 교육의 모델로 발도르프 학교가 선정되었다. (출처 : 위키백과)
발도르프 학교의 증가 그래프 (위키백과)
사실 발도르프는 유아 교구로도 유명하다. 누구나 한번쯤 봤을 레인보우 원목교구와 마블트리가 발도르프 교구이다.
출처 : 정토이스 네이버 스토어 샵
발도르프 학교의 특징은 아래와 같다.
1. 8년 담임제.
발도르프 학교에서는 1학년 입학 후 8학년까지 같은 교사가 담임을 맡아 주요 교과목을 가르친다. 9학년부터 12학년까지의 시기에서는 교사가 조언자, 가이드의 역할을 한다.
2. 에포크 수업
에포크 수업은 동일한 과목을 매일 2시간 정도 3~6주에 걸쳐 집중적으로 공부하는 발도르프 학교만의 수업방식이다. 아침 첫 수업으로 100분 동안 진행한다.
3. 오이리트미
전 학년의 필수과목으로 편안하게 움직일 수 있는 옷을 입고 연주에 따라 몸을 움직이는 움직임 수업.
4. 교과서 없음
교과서 수업은 학생들의 창의성과 교사의 수업 구성에 방해가 되어, 다양한 방식으로 교사가 수업을 이끌어간다. 학생들의 노트가 교과서가 되기도 한다.
5. 성적표
학생들이 수업을 통해 성취한 내용을 기재. 8년 담임제로 성취, 발달사항, 재능이 세부적으로 기재됨. 9학년부터는 전공 선생님들의 평가를 받음. 1년에 1번 배부.
6. 교장 없음
창의적인 학생을 육성하기 위해 교사또한 틀에 박혀 있어서는 안 되며 다양한 선택권 자유 보장. 교장 없이 교사들이 회의에서 민주적으로 의사를 결정. 또한 학부모들과 학교 운영에 대해 적극적으로 상의.
(출처: 위키백과)
제주자유발드로프학교 교육과정(출처:인스타그램)
매해 아이들을 가르치고 다음 학년으로 올려 보내면서 '올해가 끝나서 다행이다. 다시는 보지 말자.' 하는 후련한 기분이 들 때도 있었지만, 한편으로는 아이들은 흘러가고 자라는데 나는 계속 같은 자리에 있는 건 아닌가 하는 허무함이 들기도 했던 것 같다.
만약 1학년에 입학한 이 아이들을 6학년 졸업 때까지 계속 가르칠 수 있다면 어떨까? 아쉬운 마음으로 아이들과 헤어지고 새로운 아이들을 만나는 것이 아니라, 지금 만난 8살 이 아이들의 9살과 10살 그리고 13살을 볼 수 있다면 말이다.
처음 입학해서 자기 이름을 쓰기 어려워하던 아이들이 6학년 졸업을 앞두고 있는 모습을 본다면.그 자체로 교사에게 커다란 감동과 배움이라는 성장을 얻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것은 분명 아이들에게만 좋은 것이 아니라, 교사 자신에게도 엄청난 배움이 될 것이다.
아이의 어린 시절의 추억을 함께하며 늙어가고 아이는 자라 성숙한 한 사람이 된다면 그 과정을 함께 하는 것은 정말 의미 있는 일일 것이다!
한 명 한 명의 학생에 대해 '에라 모르겠다, 내년 담임이 알아서 하겠지.' 하고 넘기지 않고 끝까지 책임을 지는 일이기도 할 것이다.
발도르프 학교에서는 8년 동안 아이들의 담임을 맡기 때문에 교사와 학생 사이에 부모만큼이나 끈끈한 유대관계가 생긴다. 교사는 평생 아이들을 가르친다고 하더라도 만날 수 있는 학생들의 수가 제한적이다.
나는 교직 10년 차이니, 20명씩만 생각해도 벌써 200명의 아이들을 만났다. 하지만 정말 그 아이들 중에 지금도 연락을 하면서 안부를 묻는 아이는 얼마나 될까? 이름과 얼굴을 정확히 떠올려 기억할 수 있는 아이들은 몇 명이나 될까?
공교육에 있으면서도 항상 공교육에 대한 의문을 가지고 있다.
정말 중요한 게 뭘까? 지금 이렇게 가르치는 게 맞는 걸까? 시기에 따라 바뀌는 국가 교육과정. 거기에 따라 가르치면 나는 괜찮은 교사가 되는 걸까?
학생수가 많이 줄어들었다고는 하지만 정말로 공교육에서 생각하는 배움이 일어나려면 교사와 학생의 비율이 더 줄어들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현재 내가 맡은 1학년 교실은 12명이 한 반이다. 굉장히 적은 학생수라고 생각했지만 1년을 지내보니 배움이 일어나려면 24명, 30명이 한 반인 교실이 너무 과밀되어 있다는 생각이 든다.
빠르게 지나가는 현대사회에서 인간 사이의 깊은 유대감은 그 무엇보다 중요해졌다. 바쁘게 흘러가고, 지나가고, 사라지는 사이에서 허무주의에 빠지지 않으려면 중심을 잡아야 한다. 우선 '나'를 알고 주변을 알아야 한다. 무엇보다 지식 위주의 암기 학습이 아니라, '나 자신을 알아가는' 수업을 해야 한다.
그게 뭘까? 어떻게 하면 그럴 수 있나? 인생에 한 번쯤은 발도르프 교사로 살아보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