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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쓰는 요가 수행자 Nov 05. 2024

내가 선생님으로 태어난 건 아닌데...

생각 보다 더 일찍 은퇴를 할지도 모르겠다.

마이클 싱어의 책 '될 일은 된다.'를 보면 그의 삶이 어떻게 흘러갔는지 자세히 엿볼 수 있다. 삶을 내 의지대로 움직이려는 욕망을 버리고 있는 그대로 두었을 때, 삶은 상상도 할 수 없는 방법으로 그를 새로운 곳에 데려다주었다.


하지만 보통의 사람들은 삶이 내 마음대로 움직이지 않을 때, 어떻게든 방향을 틀어보려고 아등바등한다. 힘도 잔뜩 들고 삶이 흘러가는 모습을 바라볼 수가 없다.


한마디로 삶을 흘러가게 두는 것은 아주 어려운 거라는 거다.





올 초애 복직한 지 얼마 안 됐을 때, 나는 삶을 흘러가게 두는 것에 푹 빠져 있었다. 삶이 나를 상상도 못 할 좋은 곳으로 데려다줄 거라는 믿음이 있었다.


그래서 복직과 동시에 1~2학년 부장을 맡기는 교감선생님에게 그렇게 하겠다고 기쁘게 말했다. 처음 하는 1학년 담임도, 그리고 학년 부장도 모두 오케이였다. 그것이 삶이 나에게 던져준 것이고 나는 즐겁게 받아들이기로 한 것이다.


덕분에 교감선생님은 어떤 저항도 없이 업무 분장을 마칠 수 있었다.


어쩌다 보니 어린이집이 있는 학교로 발령이 나서 동동이의 어린이집도 그곳으로 옮겼다. 미리 대기를 걸어둔 곳이 있었지만 그 또한 삶의 흐름으로 받아들였다.




요즘은 그때의 총명함은 많이 잃어버렸다. 할 수 있는 것과 할 수 없는 것을 깨닫기 시작하고, 내 체력으로 도저히 안 되는 일도 인정하기 시작했다. 주말에 나가서 외출을 하는 건 좋지만 조금만 무리하면 앓아눕는 것도 인정할 수밖에 없다.


도대체 어떻게 1학년 담임과 부장을 기쁜 마음으로 승낙했는지 되돌아보게 된다. 하긴, 징징거린다고 딱히 피할 수 있는 방법이 있었던 것도 아닐 거다.


교실 속에서 나 자신을 잃지 않으려고 부단히 노력도 해 보았다. 그것은 정말 쉽지 않은 일이었다.




그런 나에게 신랑이 말했다.


"제주에 내려가면 선생님을 그만둬도 돼."


우리의 커다란 계획 중에 하나, 제주에 내려가는 것.


자율연수 휴직을 써서 공직 생활을 이어 가는 것이 아무 의미도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휴직 후에 그만둘 거면 차라리 그만두고 내려가서 시간 강사 같은 다른 일을 소소하게 할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평생 교직에 있지는 않을 거라고 생각했지만 먼 일 일줄 알았다. 큰고모처럼 20년을 꽉 채워서 연금을 받을 자격을 가지고 명예퇴직을 할 줄 알았다.


'이번 생은 선생님으로 죽지만, 다음에 태어나면 더 많은 것을 해봐야지'


그렇게 생각했던 것 같다. 애초에 선생님으로 태어난 것도 아닌데 말이다. 신랑의 말을 듣고 '이번 생'에 생각지도 못 한 기회들이 많을 거란 걸 알게 되었다.


다음 생까지 기다릴 필요가 없다! 하고 싶은 일들을 바로 지금 할 수 있으니까!




내년이 될지, 후년이 될지 아직 정해진 것은 없다. 하지만 곧 은퇴 시기가 오리란 걸 마음으로 조금씩 받아들이고 있다.


보통 일을 그만두기 전에 파이프라인을 만들어 두라고들 말한다. 나에게는 그만한 파이프라인이 없다. 육아 휴직 후 복직하면서 월급이 들어온 지 1년이 채 안 됐다.


앞으로의 1년은 가계부를 써서라도 돈을 모아봐야겠다. 그래서 단 돈 몇십만 원이라도 다달이 받을 수 있도록 준비해 보려고 한다.




그래도 나는 새로운 삶이 떨린다. 그리고 은퇴 준비를 하는 지금이 기쁘다.


넓은 세상에서 마음껏 자유롭게 살고 싶다. 나 자신으로 온전히 하루를 쓰고 싶고 시간적, 공간적, 경제적 자유를 얻고 싶다. 경제적 자유를 먼저 얻었으면 파이어족이 됐을 테지만 시간적 공간적 자유를 먼저 얻는 것도 나쁘진 않다고 생각한다.


좋아하는 일을 하며 진정으로 내가 되어 사는 삶을 살기를 원한다.




미치지 못해 미칠 것 같은 젊음 - 구본형


내가 만일 다시 젊음으로 되돌아간다면, 겨우 시키는 일을 하며 늙지는 않을 것이니, 아침에 일어나 하고 싶은 일을 하는 사람이 되어 천둥처럼 내 자신에게 놀라워하리라.


신은 깊은 곳에 나를 숨겨 두었으니, 헤매며 나를 찾을 수밖에. 그러나 신도 들킬 때가 있어 신이 감추어 둔 나를 찾는 날 나는 승리하리라.


이 세상에서 내가 가장 잘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인가. 이것이 가장 훌륭한 질문이니, 하늘에 묻고 세상에 묻고 가슴에 물어 길을 찾으면, 억지로 일하지 않을 자유를 평생 얻게 되나니


길이 보이거든 사자의 입속으로 머리를 처넣듯 용감하게 그 길로 돌진하여 의심을 깨뜨리고, 길이 안보이거든 조용히 주어진 일을 할 뿐. 신이 나를 어디로 데려다 놓든 그곳이 바로 내가 있어야 할 곳. 위대함은 무엇을 하느냐에 달려있는 것이 아니며 무엇을 하든 그것에 사랑을 쏟는 것이니


내 길을 찾기 전에 한참을 기다려야 할지도 모른다. 천 번의 헛된 시도를 하게 되더라도 천한번의 용기로 맞서리니, 그리하여 내 가슴의 땅 가장 단단한 곳에 기둥을 박아 평생 쓰러지지 않는 집을 짓고, 지금 살아 있음에 눈물로 매 순간 감사하나니 이 떨림들이 고여 삶이 되는 것


아, 그때 나는 꿈을 이루게 되리니, 인생은 시와 같은 것. 낮에도 꿈을 꾸는 자는 시처럼 살게 되리니, 인생은 꿈으로 지어진 한 편의 시





*사진: UnsplashSichen Xia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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