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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쓰는 요가 수행자 Nov 01. 2024

노벨문학상 수상자 한강과 함께 제주를 마주 보다.

4.3 이제껏 외면해 왔던 현실  

노벨문학상 수상 발표가 나고, 도서관 사서 선생님에게 연락이 왔다. 한강 책이 있으니 빌려갈 사람은 연락 달라는 쪽지였다. 나는 '소년이 온다'를 신청했지만 사서 선생님이 나에게 빌려주신 책은 '작별하지 않는다'였다.


"이 책이 먼저 들어왔는데 읽으실래요?"


그날의 제주는 우연히 나에게 다가왔다.




제주 4.3에 대해 잘 알지 못했다. 고등학교 현대사 시간에 언급하고 넘어간 정도. 선생님도 자세히 말하지는 않았던 것 같다. 시험에 잘 나오는 범위가 아니었고 그렇게 지나쳤다.


학생 시절의 나는 '빨갱이'나 '폭도'라는 단어가 나오면 마치 내가 무슨 잘못을 한 사람인 것처럼 그 단어들을 마주치고 싶지 않았다. 제주도는 아주 먼 곳이었고 그곳에서 어떤 일이 있었건 그때의 나와는 별 상관이 없는 것만 같았다. 모두 옛날일처럼 느껴지기만 했다.




그런데 한강의 책 '작별하지 않는다'를 읽고 나니 4.3이 결코 옛날의 일이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지금 살아계신 우리 할머니가 1935년생. 4.3은 1948년에 일어났다.


쉬는 시간마다 틈틈이 책을 읽어갔다. 꿈인지 현실인지 알 수 없는 공간에서 주인공은 4.3에 대한 이야기를 친구에게서 듣는다. 그때의 이야기는 영혼의 대화들처럼 촛불 앞에서 흔들린다.




책을 읽고 먹먹한 가슴에 뒤늦게 4.3에 대해서 찾아보았다. 얼마 전 글에서 예술을 하는 사람이라면 어둠이 있다는 것을 무시해서는 안된다고 적었다.


이번에 나 자신이 마땅히 존재했던 현실을 무시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강원도 산골에서 살아왔지만, 제주 고씨이다. 할아버지는 족보를 보물처럼 보관했다. 때로는 그걸 펼쳐놓고 이야기를 했다.


"우리는 제주고씨 화전군파 18대손이다. 높을 고자를 사닥다리 고자로 써야 해."


그 말을 지겹도록 들었다. 우리 마을은 제주고씨 집성촌이었고 마을 중앙에 제사를 지낼 수 있는 사당이 따로 있었다. 마을 사람들이 제사를 지내면 전과 떡을 얻어먹었던 기억이 난다.


할아버지가 살아계시던 2008년에 인터뷰한 기사가 남아있었다. 돌아가신 지 벌써 10년이 넘었는데 할아버지의 인터뷰가 남아있는 것을 볼 때마다 마음이 따뜻하다.


https://www.wonjutoday.co.kr/news/articleView.html?idxno=50090





제주 고씨지만, 제주도에 살아보지 못했다. 처음 제주에 간 것은 고등학교 수학여행으로였다. 대학생이 되고, 결혼을 하고 아이와 함께 여행으로 제주도에 갔다.


한강의 소설처럼 겨울날 제주에 갔던 적이 있다. 폭설이 내리고 바람이 불어서 우리가 탄 비행기를 마지막으로 제주행 비행기가 결항되었다.


바람이 엄청나게 불었다. 중간산에 있는 숙소에 들어가기 전, 바닷가에서 저녁으로 먹을 회를 포장했는데 차에서 내려서 걸을 수가 없을 정도였다. 그렇게 우리는 렌트한 차를 차고 구불구불한 중간산으로 들어갔다.


바람이 분 곳은 눈이 쌓이지 않았지만 그렇지 않은 곳은 사람 허리만큼 눈이 쌓여있었다. 눈 치우는 차가 우리 앞에 가주어서 그 뒤를 졸졸 쫓아 겨우 숙소까지 갈 수 있었다.




처음 제주에 갈 때는 바다가 좋았지만 두 번, 세 번 가고 나니 제주의 숲이 좋았다.


사람의 흔적이 보이지 않는 우거진 나무와 숲이 신성하게 느껴졌다. 그때 나는 4.3에 대해서 잘 알지 못했지만 안개 낀 숲에 한이 서려있다고 느꼈다. 신랑은 산신령이 나올 것 같다고 했고 나는 하얀 소복을 입은 여자가 춤을 출 것 같다고 했다.


그냥 피해 가려고 했다. 이미 지났잖아. 옛날일이잖아. 난 잘 몰라. 하고 넘어가려고 했다. 그런데 그러면 안 되는 거였다. 작가이고 글 쓰는 사람이니까. 소설가 한강이 알아야 한다고 차근차근 알려주었다.




이제 제주를 마주 본다.


제주도 전체가 학살장소였다는 사실을 바라본다. 사람들이 몸을 담그고 노는 해수욕장에서 수십, 수백 명의 사람들이 총살당했다는 사실을 마주한다.


해안가로부터 5km 이후의 산간지역의 마을은 모조리 불태우고 말살했다는 걸 읽으며 제주의 큰 마을들은 왜 해안가에만 있는지에 대한 약간의 해답을 얻는다.


멀리 다른 나라의 일이 아니었다. 우리나라에서 채 100년이 흐르지 않은 일이다.





다시 제주에 간다면 제주가 다르게 보일 것 같다. 어느 동네에나 있다는 4.3 추모비도 찬찬히 읽어볼 것이다. 왠지 모르게 나는 제주 사람 같고, 그곳에서 안타깝게 죽어간 사람들이 나인 것 같다는 생각도 든다.  


우리가 통과하는 수많은 삶 중 어떤 삶은 제대로 살아보지도 못하고 죽음을 맞이했을지도 모른다. 작은 아이를 끌어안고 수많은 사람들과 함께 식어갔는지도 모른다.


동동이를 꼭 안아본다. 작고 따뜻하다.

동동이 고맙다. 다시 안을 수 있어서 기쁘다.

우리 이번 생에는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자.




*사진: UnsplashJanis Rozenfeld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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