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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쓰는 요가 수행자 Oct 31. 2024

비빔밥을 먹다가 오열하게 만든 책

읽어는 보셨나요? 나의 라임오렌지나무  


집정리 연재를 시작했던 것이 벌써 1년 전. 1년 동안 쌓인 물건들이 냉장고, 발코니에 터질 것처럼 꽉꽉 차 있다.


다시 정리를 해야 하는데 퇴근 후에 지쳐서 집에 가면 집안일이 산더미 같아서 한숨만 나온다.




지난 토요일 책상과 공부방 정리를 해냈다. 문제는 아직도 정리해야 할 공간이 많다는 것이다.



집안일을 하기 싫어서 방으로 숨었다. 책을 읽는데 동동이가 찾아왔다.


저녁은 먹어야 해서 부엌으로 나오니 해야 할 일이 산더미. 보기만 해도 화가 난다. 비빔밥을 퍼먹으면서 '나의 라임 오렌지 나무'를 읽었다. 뭐든 화가 난다. 동동이가 변비인 것도 집이 엉망인 것도. 책 속으로 숨어버리고만 싶다.  




제제의 이야기를 읽으며 비빔밥을 떠먹는데 크리스마스 이야기가 나왔다.


제제는 시내에서 공짜로 나눠주는 장난감을 받으러 가고 싶지만 제제와 동생을 데려다줄 사람이 아무도 없다. 결국 뒤늦게 걸어서 도착한 곳에 제제와 동생을 위한 장난감은 없었다.


형이 말한다. 아기예수는 착한 아이에게 선물을 주는 게 아니라고. 부자인 아이들만 선물을 받는 거라고.

여기에서부터 눈물샘이 터져버렸다.


산타를 믿은 적이 없었다. 엄마 아빠가 크리스마스 선물을 챙겨주었는지는 솔직히 기억이 나지 않는다. 중요한 건, 분명히 제제와 같은 생각을 했었다는 것이다. 산타할아버지는 착한 일을 한다고 크리스선물을 주지 않아.




제제는 크리스마스날 밤에 희망을 버리지 않고 운동화를 밖에 내놓았다. 하지만 역시나 선물은 없다.


"아빠가 가난뱅이라서 진짜 싫어."

그 말을 멍하니 듣고 있는 아빠만 있을 뿐이다.  


제제는 뒤늦게 자신의 말을 후회하며 아빠를 위해 구두닦이 통을 들고 시내로 나왔다. 크리스마스날 5살짜리 꼬마가 구두를 닦으러 나왔다. 제제가 구두를 닦는 이유는, 아빠를 위한 담배 두 갑을 사기 위해서이다. 아빠에게 선물을 주려고 말이다.




어느새 오열하고 있는 나를 발견한다. 옆에서 밥을 먹던 동동이가 놀라서 쳐다본다.


"엄마 왜 울어?"

"이야기가 너무 슬퍼서 그래. 책에 나오는 아이가 너무 가난해서. 크리스마스 선물도 못 받고..."


그렇게 이야기는 했지만 사실 그건 핑계였고 슬퍼서 울었다. 화난 줄 알고 계속 화만 내고 다녔는데  화가 난 게 아니고 슬픈 거였다. 집안일을 해내야 해서, 깨끗한 집을 가지고 싶지만 엉망이어서, 집안일을 할 힘도 없어서 슬펐다.


"엄마가 슬퍼하니까 나도 슬퍼요. 엄마가 슬퍼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어느새 큰 동동이가 눈물을 삼키며 또박또박 이야기한다. 엄마가 우는 것을 안 좋아한다는 걸 알고 울지 않고 말하는 것이리라. 동동이는 그렇게 말했지만 나는 벌써 실컷 운 뒤였고 울고 나니 가슴이 후련한 게 기분이 좋아졌다.





나의 라임오렌지나무. 작가는 독자를 울리려고 작정이라도 한 듯이 글을 쓴다. 이래도 안 울래? 이래도? 나는 거기에 홀딱 빠져서 펑펑 울고 말았다.


아름다운 이야기에서 나오는 눈물은 치유의 힘이 있나 보다. 펑펑 울었고 잘 먹었고 기분이 좋아져서는 그날 해야 하는 집안일들을 모두 해냈다. 잠이 들기 전에는 집이 깨끗해 보이기까지 했다.


다행이다. 오늘 하루도 이렇게 지나가서. 언제든 책 속으로 숨어버릴 수 있는 능력은 순간이동 만큼 굉장한 능력이다.




*사진: UnsplashArtur Aldyrkhano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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