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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도에 진짜 살러 왔습니다.

서귀포 참 좋네요

by 글쓰는 요가 수행자 Feb 21.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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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퇴 계획을 올리면서 가끔은 스스로도 무슨 생각이지 싶었습니다. 그래도 기회를 놓칠 수 없어서 끝까지 가보게 되었어요. 사직서를 내자 2025학년도 학사 계획에서 저의 이름은 없어졌습니다.


그리고 대망의 제주도 이사날짜가 다가왔습니다.




이사 날짜를 잡아놓고 떨려서 잠 못 드는 시간들이 있었습니다. 마치 결혼식 날짜를 잡은 예비신부의 마음 같았어요. 도대체 내가 무슨 짓을 한 건지, 이대로 계속 가도 되는지, 걱정은 되는데. 이미 다 잡아놓은 날짜를 되돌릴 수도 취소할 수도 없는 것이지요.


마지막 육지에서의 약속을 마치고, 귀중품을 캐리어에 정리한 뒤 우리 가족은 이삿짐 업체의 도착과 함께 집에서 쫓겨나고 말았습니다. 아파트 편의점에서 평소에는 잘 먹지도 않던 삼각김밥과 컵라면으로 아침을 때우며 이사가 끝나기를 기다렸어요.




텅 빈 집은 어수선 하지만 햇빛이 참 좋았습니다.

 

안녕, 고마웠다 우리집


동동이는 얼마 전부터 25층 집에서 계속 살고 싶다고 징징거리는 중이었습니다. 1층 집에 가면 마음껏 뛸 수 있다고 설득을 해봐도 소용이 없었어요. 동동이를 아기처럼 안아주었더니 그대로 엄마 품에서 손가락을 빨기 시작합니다.


우리가 신혼부부로 처음 들어왔던 집. 16평 원룸에서 처음 아파트로 왔을 때, 방 3개가 얼마나 넓어 보이던지요. 그 집에서 아이가 태어나 식구가 되었습니다.


기저귀를 지겹도록 갈고, 손목이 아프도록 매일 저녁 아이를 씻기기재우던 그 기억들이 모두 이 집에 있습니다. 엉거주춤 엉덩이를 들고 일어서던 기억, 엄마 손을 잡고 걸음마를 하던 기억도 여기에 있지요.


그러니 동동이가 이 집을 떠나는 걸 서운해하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그렇게 제주도로 와서, 집 근처 저렴한 호텔에서 하룻밤을 묵었습니다. 아침에 창 밖으로 보이는 풍경이 정말 제주입니다.


산방산이 보이는 제주





이사는 처음이라서 짐은 어떻게 들어오는지, 짐 정리는 또 어떻게 해야 하는지 모르는 것투성이입니다. 그 와중에 신랑은 발령이 나서 인사를 하러 다녀야 하고 바로 출근. 저는 이삿짐을 풀자마자 동동이를 데리고 어린이집 수료식에 가기 위해 다시 인천으로 올라왔습니다.


교직에서 은퇴하면서 꼭 챙기고 싶었던 것이 바로 송별회였거든요. 선생님과 친구들에게 마지막으로 인사를 할 수 있는 수료식은 동동이에게 정말 소중하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멋진 무대의상을 입은 동동이의 재롱잔치도 보고, 가장 멀리에서 수료식에 참여한 가족으로 선물도 두둑이 받았네요.




후다닥 다시 제주로 내려오면서, 동동이에게 말했어요.


"우리 진짜, 잘했다."


동동이는 인천에서 제주로, 다시 인천으로 비행기를 타고 다니는 동안 무척이나 자란 느낌입니다. 제주로 이사 간다는 것이 무엇인지도 좀 알게 된 것 같아요. 동동이도 어느새 새로운 제주 집이 우리 집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제주 공항에 주차되어 있는 모닝을 만나니 얼마나 반갑던지요! 아무래도 택시로 이동하다 보니 불편했었는데 이제 제주에 내 차가 있습니다.


집정리는 끝이 없고, 부엌 정리도 안돼서 외출 겸 밖으로 나가 외식을 했습니다. 보일러가 안 돌아가던 집은 첫날밤엔 너무 추웠고 이제 조금씩 따뜻하게 데워지는 중입니다.




아직도 실감이 안나는 제주 생활. 그래도 참 좋습니다. 운전을 하다 멈추면 창 밖으로 보이는 풍경이 마치 그림처럼 느껴집니다.


평화로에서 샛길로 빠질 때 보이는 산방산도 좋고, 언덕을 내려와 보이는 우리 동네도 좋습니다. 바람은 많이 불지만 햇살은 따뜻하고 창가 나무에 벌써 꽃 봉오리가 올라오고 있습니다.


대청마루가 있는 집에서 살고 싶다는 바람이 이루어진 듯, 거실에서 창문을 열고 손을 뻗으면 나무가 손 끝에 닿습니다.






여전히 설치할 가전제품은 많고, 다음 주까지도 정리가 될지 의문이지만. 저는 제주에 있습니다.


어떤 삶을 살게 될지는 잘 모르겠지만 이제 막 도착한 나의 새로운 삶을 응원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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