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집에 있는 피아노의 감동
초, 중, 고를 거치며 내가 다닌 유일한 학원은 '피아노 학원'이다. 7살 때 엄마는 시골인 우리 집까지 통학을 시켜주는 피아노 학원 겸 유치원에 나를 보냈다. 그때부터 바이엘을 배우기 시작했다.
도레 도레 도레 도 ~
집에 피아노가 없었다. 실력은 평범한 수준이었다. 하지만 음악을 좋아하는 마음은 남달랐다. 특히 노래 부르는 걸 좋아했다. 엄마는 피아노 학원이 망해서 더는 운영하지 않는다는 통보를 받을 때까지 학원에 보내주었다. 12살이었다.
집 앞 교회에 다니던 나는 한 장로님으로부터 '피아노 무료 강습'을 제안받았다. 무료로 일주일에 한 번 피아노를 알려줄 테니 교회에서 반주를 맡아 달라는 거였다.
악보를 볼 줄 알았던 나는 연습을 하면 찬송가 정도는 칠 수 있었다. 그렇게 교회에서 피아노를 치기 시작했다.
교회에서 피아노를 치기 시작한 역사는 고등학교까지 계속되었다. 심지어는 교회에 안 다니게 된 이후에도 당당하게 교회에 가서 피아노를 쳤다.
시간도 마음대로였다. 아침, 점심, 저녁을 가리지 않고 가서 피아노 뚜껑을 열었다. 한 밤중에 집에서 뛰쳐나와 피아노를 치러 가기도 했다. 지금 생각하면 교회에 붙은 가정집에 사는 목사님네 가족은 피아노를 칠 때마다 소음에 시달렸을 것이 분명하다.
겨울에 추우면 꽁꽁 언 손으로 가서 피아노를 쳤다. 피아노를 치면 사모님이 어느새 예배당에 나와서 기도를 했다. 사모님은 단 한 번도 피아노를 치러 오지 말라고 말한 적이 없었다.
교직을 그만두며 마지막 소원은 아이들이랑 피아노를 치면서 노래를 부르는 것이었다. 3월 초부터 쓸만한 피아노를 찾아 헤맸지만 찾지 못한 채 12월이 되었다.
방학을 앞두고 아이들에게 물어서 '늘품꿈터'에 방치된 전자피아노가 있다는 걸 알아냈다. 뿌듯한 마음으로 교실에 피아노를 가져왔을 때 방학은 2주 뒤였다.
10년 동안 피아노를 치지 않았더니 악보를 읽는 것도 어려웠다. 노래 몇 곡을 뽑아 놓았지만 생활통지표를 쓰느라 연습할 시간도 없었다. 이러다가는 정말 노래 한 번 못 부르고 방학이 올 것 같아서 그날은 마음을 먹고 피아노 앞에 앉았다.
반주를 엉망으로 해도 아이들은 신이 나서 노래를 불렀다.
"나는 문어~ 꿈을 꾸는 문어~"
3학년 때 담임선생님처럼 능숙하게 피아노를 치진 못했지만 어찌어찌 반주를 할 수 있었다. 그렇게 아이들은 2학년이 되었고 피아노는 원래 교실로 돌아갔다.
그러다 나를 위한 피아노가 생겼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언제든 칠 수 있는 나만의 피아노.
당근 마켓에 알람 설정을 해 놓고 기다리다가 마침내 50만 원짜리 전자피아노를 보러 갔다. 피아노 건반을 하나 누르는 순간, 음색에 홀리고 말았다. '전자피아노가 이런 소리가 난단 말이야?' 학교에서 치던 것보다 훨씬 좋았다.
"이게 헤드폰을 쓰면요. 헤드폰 안 쓴 것처럼 소리가 나요."
헤드폰을 쓰고 건반을 눌러보니 더 놀라웠다. 교회에서 피아노를 치던 그 느낌이었다. 업라이트 피아노를 치는 느낌, 귀는 하나도 아프지 않고 소리가 사방에서 들려오는 것 같았다. 당장 그 피아노를 용달을 불러 집으로 가져왔다.
운전하고 집으로 돌아오는 동안 마음에 와닿은 노래가 있었다.
옥상 달빛 - 내가 사라졌으면 좋겠어.
들어 본 적은 있지만 너무 우울하다고 생각되었던 노래. 그런데 그 노래를 듣다가 생각이 났다. 내가 사라지고 싶었던 때가 있다는 걸.
나는 사라지고 싶을 때마다 교회에 가서 피아노를 쳤다. 손가락이 아프도록 쾅쾅 눌러서 쳤다. 피아노를 두 시간씩 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발걸음은 무거웠다. 나와 피아노만 있는 교회가 쓸쓸하면서도 좋았다.
아침에 일어나
곱게 정리한 이불을 보며
문득 그런 생각을 했어
아무도 모르게
그런 생각을 했었어
누구나 한 번쯤 해 봤을
그런 생각을
내가 사라졌으면
내가 사라진다면
처음부터 이 자리에
없었던 듯이.
갑자기 훅 들어온 가사들이 뜨거운 눈물이 되어 흘렀다. 피아노는 세상이 나에게 주는 선물이구나. 세상이 나를 위해 정말로 멋진 피아노를 준비해 놓았구나.
우리 집 한 켠에 피아노가 놓여있다.
오늘도 어제처럼
열심히는 살고 있어
이렇게 살다보면
내가 사라지면 안 되는
중요한 사람이 되어 있겠지
언젠가 지금보다
행복한 일들도 생기겠지
이렇게 살다보면
이제 피아노를 치기 위해 어디에 가야 할 필요가 없다. 밤늦게도 헤드폰만 쓰면 쾅쾅 피아노를 쳐도 된다. 아무 때나 뚜껑을 열어도 된다는 게, 따뜻한 곳에서 피아노를 칠 수 있다는 게 감사할 따름이다.
https://youtu.be/5atkyx05wrA?si=BRc-X8ykcQLtCNfW
* 사진: Unsplash의Jordan Whitfield
피아노~~~ 미진님에게 그런 의미가~~^^ 깨끗하고 단단해 보이네요 피아노^^♡
감사해요 이다작가님 ㅎㅎ 이제 다시 치려니 손가락도 악보보는 법도 느리기만 해요 ㅎㅎ 그래도 마음이 뿌듯하고 너무 좋아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