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기부. 그 시절의 선생님이 적어주었을 몇 마디. 초등학교 시절 생기부는 집에 종이로 차곡차곡 모아져 있어서 꺼내본 기억이 나지만 중학교 고등학교는 성적표 밖에는 기억이 안 난다.
카카오톡에 들어가서 점 세 개 더 보기를 누르면 지갑에 '전자증명서'가 있다. 전자증명서를 누르면 이렇게나 많은 문서들을 카톡으로 받아 볼 수 있다.
그중에 새로 생겼다는 '학교 생활기록부(초중고)'를 눌러본다.
신랑은 몇 년 차이로 초등학교 생기부가 검색이 안되지만, 나는 2003년 졸업자부터 볼 수 있는 초등학교 생기부까지 생성이 된다.
그렇게 나의 학교 생활을 되돌아본다.
생기부의 특징을 살펴보면
첫 번째, 12년 개근.
초등학교 6년 개근에, 중학교 3년, 고등학교 3년 개근이 들어가 있다. 참 꾸준히 학교에 다녔다. 폐렴으로 병원에 입원했던 1학년 일주일을 빼면 학교에 빠진 적이 없다. 교외체험학습을 간 적도 없고 참 꾸준하지만 조금은 답답하게 느껴진다. 도대체 어떻게 학교에 다닌 걸까?
두 번째, 글쓰기와 음악에 관심이 많았다.
글짓기 대회에서 상을 많이 받았다. 글짓기는 초등학교 5학년쯤 시작했다. 중3 때는 장래희망에 '작가'를 적기도 했다. 평생 교사만 하고 싶어 했는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다! 중학교 때는 작곡을 배우고, 반별 합창대회 반주를 두 번이나 맞았다. 고등학교 때도 합창부로 활동했다.
세 번째, 자기주장이 강한 아이였다.
초등학교 시절 생기부를 마치 점괘를 받듯이 들고 읽어 내려가면서 항상 의문이었던 문장. '자기주장이 강하다는 말. 의지를 가지고 행동한다.' 뭐 그런 말들. 그때의 나는 이해를 못 해서 '도대체 무슨 뜻이지?'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초등학교 6년 중에 3년은 이런 말이 적혀있다.
생기부를 읽으며 놀라웠던 건, 기억에서 사라지고 만 담임선생님의 이름이 모두 적혀있다는 것이다. 이름을 보니 선생님들의 얼굴이 떠오르고 그 시절의 기억이 어렴풋하게 난다.
선생님과 생기부를 연결해 보니 선생님의 마음이 느껴지는 듯하기도 하다. 어떤 문장들은 생각보다 짧아서 '왜 이렇게 짧아?'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지만, 그 시절 학생수가 지금보다 훨씬 많다는 점을 생각하면 결코 짧은 것은 아니다.
예전의 나는 어떤 아이 었는지 참 궁금했는데 기록이 공적인 문서로나마 남아있다는 게 참 고마운 일이다. 심지어는 고등학교 체육대회에서 발야구 선수로 경기에 참여한 것까지 적혀있다.
신랑과 생기부를 바꿔보기도 했는데, 주의사항은 그 시절의 사진이 뜰 수도 있다는 것이다. 나는 중학교 1학년 때 찍은 사진이 올라가 있었고, 신랑은 중학교와 고등학교 사진이 모두 올라가 있었다. 우리는 서로의 사진을 보며 낄낄 거리며 웃었다.
중1 증명사진을 진짜 싫어했던 기억이 난다. 그런데 지금 보니 왜 이렇게 귀여운 건지 모르겠다. 처음 잘랐던 짧은 커트머리도 귀엽기만 하다. 리본을 맨 것도 노란 명찰도. 그 시절의 나는 아직 초등학생 티를 다 벗지 못했다.
중학교 1학년때 합창부에 들어가려고 오디션을 봤다가 떨어졌다. 그 이유는 너무 목소리가 어려서였었다. 아직 아기 목소리여서. 합창부 선생님이던 우리 담임선생님은 나를 '작곡부'에 넣어주셨다.
그렇게 피아노 학원만 다녔던 내가 작곡을 배우게 되었고, 그걸로 실기대회에 출전해서 상을 받기도 했다. 지금은 잘 기억도 안 나지만 그때 당시 굉장히 재미있고 성취감이 있었다.
지금은 피아노를 안 친지 10년 이상이 된 것 같다. 취미로 집에 사 두고 칠 수도 있는데 그런 생각을 하질 못했다. 앞으로는 다시 피아노를 쳐보려고 한다. 그 시절의 나는 글 쓰고 음악을 사랑하고 노래하고 연기하기를 좋아했던 아이였다.
그걸 왜 인정할 수 없었을까. 내가 좋아하는 걸 왜 당당히 좋아한다고 말하지 못하고 움츠러들었을까. 이제 34살이 되어서 내가 좋아하는 것을 당당히 좋아한다고 말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