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아이들은 어쩜 그렇게 해맑게 웃을까?

어른들이 지켜줘야 하는 '웃음'

엄마, 어린 시절 사진을 보고 놀란 건 내가 너무나도 자연스럽게 웃고 있다는 거였어.


아이들은 어쩜 그렇게 해맑게 웃을까? 누가 알려준 것도 아닌데 말이야. '까꿍'소리에 까르르 웃는 걸 보면 정말 행복이란 이런 거구나 싶어.




초등학교 때, 정말 부러워하던 아이가 있었어. 방송반이었던 친구인데 인기도 많고 참 잘 웃었던 것 같아.


그때 처음으로 거울을 보고 '나는 어떻게 웃지?' 생각했었어. 그 뒤로 중학교, 고등학교, 대학생이 된 뒤에도 나는 잘 웃는 아이는 아니었던 것 같아.


그런데 사실은, 태어날 때부터 잘 웃었던 아이였던 거야. 신기하게도. 너무나 당연하게도.





남동생이 저렇게 웃었던 시절도 있었구나. 난 항상 남자애 같았고, 남동생은 너무 하얗고 예뻤지. 정말 그랬어. 저 밝은 웃음을 지켜줬으면 참 좋았을 텐데.


어느새 우울하고 어둡고 무거운 공기가 깔리기 전에. 아프지 않고 친구들과도 잘 어울릴 수 있게 말이야.





생일 케이크에 초가 두 개 켜져 있으니 아마 두 돌이었던 것 같아. 초콜릿케이크를 보고 어쩜 저렇게 흐뭇하게 웃고 있을까.


이제는 오래전에 돌아가신 할아버지.


할아버지는 가끔 꿈에 찾아와. 여전히 잘 있나 보고 가는 것 같아. 임고에 처음 붙을 때, 결혼할 때는 신랑 꿈에 나왔었고, 제주도로 이사 온 뒤 우리 집에도 왔다 가셨어.


어린 시절 할아버지가 밖에서 담배를 피우고 찬 바람에 씻어낸 뒤 들어오면 그 은은하게 남은 담배 냄새도 좋았어.


할아버지가 돌아가시던 날 엄마는 참 서럽게 울었지. 고모들보다 더 슬퍼했어. 시아버지가 진짜 아빠도 아닌데. 어쩜 그렇게 울까. 20년 동안 같은 집에서 미운 정 고운 정 다 들었을까.




엄마, 이제 엄마가 돼서 다시 생각해.


요즘 다섯 살 동동이는 자기표현을 얼마나 잘하는지 몰라. 좋은 것도 싫은 것도 참 명확해. 그렇다 보니 울고 떼쓰고 짜증을 낼 때도 많아.


그래도 많이 웃었으면 좋겠어.

아기일 때처럼. 까르르.



어른들이 지켜줘야 하는 건 아이들의 '웃음'인 것 같아. 아이들이 계속 웃을 수 있게 말이야.


웃는 법을 잃어버려서

웃지 못하는 아이가 되지 않도록 말이야.


오늘도 동동이랑 뛰어야겠다. 그게 다섯 살의 웃음을 지켜주는 방법이겠지.


엄마 또 쓸게.



keyword
이전 05화엄마의 젊은 시절을 기억할 수 있다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