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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님 그만두고 뮤지컬 오디션에 1차 합격!

35세, 아들엄마 배우 도전기


어제는 뮤지컬 1차 합격자 발표날이었다.


전날 꿈을 꿨는데 안타깝지만 탈락이라는 꿈이었다. 그래서 내심 기대를 하지 않았다. 요가를 다녀와서 하나로 마트로 향했다. 가서 수박이라도 하나 사 올까 하는 생각이었다.


그런데 잠시 후 이메일과 문자가 왔다. 1차 서류전형에 합격했다는 것이다!





오디션은 지인이 알려주었다. 제주에서 만드는 창작 뮤지컬 이었다.


오디션을 보는 게 맞아? 본다고 될까? 되면 연습을 해서 극을 올릴 수나 있을까? 여러 가지 생각이 머리에 스쳐 지나갔다. 오는 사람 막지 않기로 했으니, 나에게 다가오는 오디션을 차마 무시할 수가 없었다.


그렇게 일주일간 자기소개서를 쓰고 연기, 노래 동영상을 만들어서 제출했다. 그게 통과했다는 것!




사실 연기와 노래에 꿈을 가진 역사는 오래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초등학교에 들어가기도 전 어린이날 뮤지컬을 보고 뮤지컬에 빠졌다. 그 뒤에는 임상아의 '뮤지컬' 노래를 참 좋아했다.


"내 삶을 그냥 내버려 둬. 더 이상 간섭하지 마. 내 뜻대로 살아갈 수 있는 나만의 세상으로 난 다시 태어나려 해. 다른 건 필요하지 않아. 음악과 춤이 있다면 난 이대로 내가 하고픈대로 날개를 펴는 거야. 내 삶의 주인은 바로 내가 돼야만 해!"


그것은 긴 이야기의 서막이었다.




중학생이 되고 고등학생이 되어서도 노래하고 연기하는 사람이 되기를 꿈꿨지만 그건 마음속 작은 비밀 같은 거였다.


노래를 잘 못했고. 중학교 합창부에 떨어졌고. 고등학교 때는 겨우 합창부에 붙었지만 음역이 높아서 힘들었고. 연기의 '연'짜도 배운 적이 없었고. 농사지어서 간간히 입에 풀칠하는 부모님한테 차마 예술과 관련된 대학을 가겠다고 말할 수도 없는 상황이었다.


학교 생활에서도 나는 쪼그라들어 있었고. 나 자신을 제대로 믿지도 못했다. 어른이 되고 나면 좀 더 나아지겠지 하는 생각으로 빨리 독립하고 싶은 마음뿐이었다.




영화 '왕의 남자'를 영화관에서 보고 와서 한참 그 안에 빠져 살던 때가 있었다. 음악도 좋고 이야기도 아름다워서 어딘가에서 원작 연극대본을 빌려왔다. 밤에 내 작은 방에서 대본을 읽는데 왜 눈물이 나는 걸까.


어떻게 해도 그 세계에 다가갈 수 없는 사람처럼 느껴졌다. 집을 나갈 용기도 없었고 그렇다 할 재능도 없었다.


그러던 내가 창작뮤지컬 1차 오디션에 덜컥 합격문자를 받은 것이다.




이래도 되나. 수많은 감정이 교차하면서 눈물이 났다.


2차 오디션은 금요일. 정해진 대본의 연기와 즉흥연기, 자유곡 노래, 그리고 즉석에서 안무를 배워 추어야 한다.


얼마 전 백상예술대상에서 김태리가 수상한 것을 보고 뒤늦게 드라마 '정년이'를 찾아보았다. 정년이는 갯벌에서 꼬막 캐다가 오디션을 보러 서울에 간다. 반대하는 엄마에게서 도망치느라 생선 냄새나는 옷을 그대로 입고 간다.


나는 정년이가 되었다. 이제 진짜 오디션을 보러 간다!




오디션 앞에서 당당해질 수 있는 이유는. 나 자신을 더 포장할 것도, 위축시키지도 않고. 있는 그대로 무대 앞에 설 수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당당하게 설 수 있기까지 수많은 시간을 지나쳐왔다.


잃을게 뭐가 있겠는가. 잃을 거라고는 겨우 오디션에서 떨어져서 배역을 받지 못하는 것이다. 이미 1차 오디션에 통과했다는 것만으로도 기쁘고 행복하다.


그러니 새로운 경험들이 모두 나에게는 선물이나 마찬가지이다.


딱 하루 남았다. 내일이면 10시부터 16시까지 긴 하루를 보내게 될 것이다. 35살이 되기까지 내가 했던 작고 큰 도전들이 연기 선생님, 보컬 선생님, 춤 선생님이 되어 주었다. 요가가 나의 몸을 다스려 주었다.


이제 세상 앞에 당당하게 서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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