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 세상에 존재하지만 드러나지 않은 이야기를 무대로
덕업일치는 가능한가?
일단 해봐야 아는 거다!
내 지론은 그렇다.
나는 생태계를 관찰하고 공부하는 게 재밌다.
그래서 나도 모르게 자연다큐멘터리를 즐겨보곤 했다.
이미 현실에서 넘쳐나는 폭력과 그에 대한 은유를 다시 영화나 tv 프로그램으로 보고 싶지 않았기 때문에 자연히 자연 다큐멘터리를 즐겨보게 되기도 했다.
삶의 기로에서 언제나 생태계는 내게 살아갈 힘을 줬다. 그러니 자연은 그 자체로 해독제였고, 삶에 중요한 힌트가 무한한 보물창고였다.
단순히 자연다큐를 좋아한다고 해서 다큐를 만들고 싶었던 것은 아니었다. 내가 이미 처한 상황들, 내 삶에 등장하는 어떤 존재들이 놓인 이야기들을 생각할때마다 항상 나도 모르게 다큐멘터리라는 장르를 생각하게 됐던 것 같다. 다큐멘터리야말로 현실의 생동하는 이야기들을 잘 담을 수 있는 그릇이라 생각했던 터다.
나는 일전에 내가 좋아하는 것을 탐구하는 과정에서 ‘기록’을 좋아한다는 공통점을 찾아냈다. 때문에 좋아하는 것을 찾아가는 과정이 결국 기록의 방법을 다양하게 시도해보는 꼴이 되었다. 다큐멘터리도 그중 하나가 되기도 한다.
당신은 이 다큐멘터리를 통해 무엇을 말하려고 하나요? 다큐멘터리가 만들어질 필요가 있는건가요?
다큐멘터리를 시작했을 때부터 끝날 때까지 내내 쫓아오는 질문이었다. 이 다큐멘터리를 왜 만들려고 하는가? 이 다큐멘터리에서 무엇을 말하고자 하는가? 에 대한 문제의식이 분명해야 좋은 작품을 만들 수 있다고 한다.
나는 그동안 다큐멘터리를 통해 만났던 많은 존재들로부터 위로를 받았다. 또 세상에 존재하고 있지만 드러나지 않는 이야기들을 무대에 올리는 작업이 매력 있게 느껴졌다. 그래서 이미 있지만 가려진 이야기들을 무대에 올리고, 다른 누군가를 위로하고 싶었다.
최근 가장 의미 있게 본 다큐는 나의 문어 선생님이다. 감독이 번아웃이 왔을 때 어릴 적 아버지와 자주 다니던 다시마 숲에 가게 된다. 그러다가 한 마리의 문어를 발견한다. 감독은 1년이 넘는 기간 동안 문어와 관계를 맺으며 생기는 이야기들, 놀라운 발견들을 담는다.
감독은 작품을 만드는 과정을 통해 일상의 표면 아래 가려진 심오한 삶의 영역으로 들어서게 된다. 다큐 제작자들은 기쁨과 고통, 화해를 존중하는 것을 배우고 살아 움직이는 것들로부터 뭔가를 깨닫는다. 당신에게 무엇보다 필요한 것은 용기이고 수수께끼를 풀려는 정열적인 충동이며 당신이 현실에서 포착한 것을 관객의 마음속에서 폭발하는 이야기로 만들어낼 수 있는 끈기이다. -도서관에서 빌린 책 중 한 구절을 가져왔는데 출처가 기억이 나지 않습니다 흑흑 ㅠㅠ
다큐멘터리를 만든다는 것은 수수께끼, 다시 말해 어떤 질문들을 가지고 살아갈 것인가에 대한 의지를 담는 행위라는 말에 번뜩임이 왔다. 역시나 기록하고 곱씹는 것을 좋아하는 내게 다큐멘터리는 찰떡궁합 아닌가?! 다큐멘터리 제작 활동은 흥미로운 도전이 될 것 같았다. 드로잉이 보는 법을 가르쳐주듯 다큐멘터리 또한 삶을 자세히 들여다보기 위한 노력, 삶의 수수께끼를 푸는 과정, 삶과 세상에의 강한 의지로 연결되는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