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대륙이 아닌 아프리카를 꼭 가야했던 사연
나는 오랜 기간 지구 여행을 꿈꿨다. 특히 가고 싶다고 생각했던 대륙은 아시아와 중동, 아프리카다. 한국에서 난민 활동을 하며 80여 개국 출신 사람들을 만났는데, 그들 대부분이 아시아와 중동, 아프리카 출신이었기 때문이다. 많은 시간 그들의 이야기를 듣고, 해당 지역의 인권 실태를 조사하는 일을 했다. 그렇게 그들의 이야기에 스며들었다.
나는 침략자들의 땅보다 생존자들의 이야기에 관심이 많다. 그게 내 삶에 절실히 다가오는 이야기였다. 생존자들이 어떻게 삶의 고통에도 불구하고 나아가는지 듣고 싶다. 그래서 유럽이나 미국 등 스스로 1세계라고 분류한 나라들에 가고 싶단 생각이 들지 않았다.
먼저 아프리카에 가야겠다고 생각했다. 2015년에 유간다로 들어가는 비행기표를 끊었다. 그러나 여행을 앞두고 운명의 장난처럼 오토바이에 치였다. 교통사고 후유증으로 제대로 걷거나 앉아 있지 못했다. 1년 동안 치료하는 시간을 가졌다. 이후 일하는 단체에서 대표를 맡으며 버거운 책임을 짊어졌다. 그렇게 오랜 기간 아프리카에 가고 싶은 마음을 뒤로해야 했다.
시간이 흘러 2019년이 되었다. 일하던 단체에 안식년 제도가 있었다. 임금이 적은 대신 쉴 수 있는 시간을 주는 제도였다. 나는 이 시간을 이용해 꼭 아프리카로 여행을 떠나야겠다고 생각했다.
지도를 펼치고 그동안 만난 난민분들의 국가에 대충 점을 찍어 보았다. 방글라데시, 인도, 파키스탄, 티베트, 신장, 키르키스탄, 카자흐스탄, 우즈베키스탄, 타지키스탄, 투르크메니스탄, 이란 등의 중앙아시아와 서아시아 국가들 그리고 유간다, 케냐 등의 그나마 여행 정보가 있는 동, 남부 아프리카 국가들로 동선을 그렸다.
그렇게 여행하던 9개월째, 우즈베키스탄-투르크메니스탄 국경 앞에 다다랐을 때 전 세계에 코로나 팬데믹이 시작됐다. 나는 한국으로 돌아와야 했다. 그렇게 아프리카 여행은 다시 한번 좌초될 수밖에 없었다.
시간이 흘렀고, 퇴사를 했다. 비로소 아프리카를 여행할 수 있는 때가 왔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처음 아프리카 가고싶다고 생각했던 때로부터 9년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이미 많은 것이 변해버린 시간이었다. 9년 전에 절실했던 내 꿈은 어느덧 많이 흐릿해졌다. 아프리카 가야할 이유가 있는지 다시 묻는 시간이 필요했다.
2008년 방글라데시와 인도 여행을 통해 내 세계는 붕괴했고, 그 여행을 계기로 난민 활동을 시작했다. 난민이 처한 상황을 볼 때마다 화가나 잠을 이룰 수 없었다. 일본에서 나고 자랐다는 이유로 한국에서 고통받았던 삶, 하지만 기댈 곳도 다른 선택지도 없었던 내 어릴 적 이야기와 그들의 이야기가 겹쳐 보였다. 모든 것을 다해 뭐라도 하고 싶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10년이 넘는 기간 동안 활동에 전념하며 살았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고통밖에 느껴지지 않았다. 고통의 곁에 있는 시간이 누적되면서, 내 삶 자체가 고통으로 점철되어 갔다. 마치 영원히 풀리지 않는 실타래가 내 몸 어딘가에 꽉 막혀 있는 것 같았다.
어떻게 이 고통을 풀어야 할지 갈피를 잡지 못했다. 글을 썼고, 책을 읽었고, 법문을 들었고, 명상을 했고, 비슷한 활동가들을 만나 이야기를 나눴다. 하지만 실타래는 그대로였다. 어느 시점 이후로부터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사람들은 내가 즐거운 일, 하고 싶은 일을 하라 충고해 줬다. 하지만 나는 읽고 싶은 것, 쓰고 싶은 것, 듣고 싶은 것, 보고 싶은 것, 가고 싶은 것, 그 모든 것을 아울러 하고 싶은 것이 없었고,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았다. 앞으로의 삶에 기대되는 것도 없었다. 살아가는 모든 순간들이 고통으로밖에 느껴지지 않았다.
그러다 저 멀리 흔적처럼 남아 있던, 아프리카 가고 싶다는 마음이 떠올랐다. 그 마음은 이미 과거가 된 꿈이었다. 지금의 나는 어디에도 가고 싶지 않지만, 희미해진 마음이라도 붙잡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생각한 대로 살 수 있는 용기를 하나씩 다시 쌓아나가야겠다고 생각했다.
1년간 아프리카 일주를 하겠다고 결심한 이후로, 만나는 사람들에게 종종 내 여행 경로를 이야기를 했다. 대체로 사람들은 더 좋고, 안전하고, 싼 곳도 많은데 왜 굳이 아프리카 여행을 그렇게 길게 가냐고 했다. 대체로 여자 혼자 아프리카 일주를 한다고 말하면 무모하다는 피드백을 받는다. 왜 그렇게 위험한 지역으로 굳이 혼자 가냐며, 철딱서니 없는 이상한 사람 취급을 받은 적도 있다.
실로 유명 여행 유튜버들의 아프리카 컨텐츠는 자극적인 상황을 중심으로 다뤄진다고 느껴졌다. 유튜브 컨텐츠들 처럼 한국어로 된 아프리카 여행 정보는 극단적이고 제한적이어서 겁이 나기도 했다. 국경에 대한 정보가 없어서 육로 이동을 위한 대략적인 여행 동선조차 짤 수 없었고, 현지에서 부딪혀 가며 여행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나는 아프리카에 대한 부정적 편견을 심화하는 그 어떠한 행동과 소문에 동조하지 않고 싶었다. 내가 만난 난민분들이 말해줬던 고국의 이야기는 한국의 제한된 정보와 상반된 것이었다.
나는 내가 경험하는 아프리카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 그대로 느끼고 보며 여행해 나갈 것을 다짐했다. 아프리카 여행은 가족과 동료들 사이에서 더 많은 책임을 지느라 나를 뒤로했던 시간에 대한 보상이며, (중간에 포기하더라도) 꼭 해내고 싶은 삶의 숙제이기도 했다.
아프리카 여행은 한국 국적자로서의 권력을, 내가 딛고 서 있는 폭력의 구조를 마주해야 하는 수치심을 반복적으로 일으킨다. 그러나 이미 과거가 된 약속일지라도, 다른 누가 아닌 나를 위한 약속을 오롯이 지키기 위해 아프리카 여행을 계속 하고자 한다.
여행의 이유는 계속해서 바껴왔다. 다만 여행은 언제나 내 삶 근처에 있었다. 더 많은 곳을 가거나, 더 멀리 가기 위해 떠나는 여행이 아니다. 스무 살, 방글라데시와 인도 여행을 통해 내 세계가 붕괴되었듯, 아프리카에서 만날 이야기들을 통해 나는 얼마나 또 부서질까. 아프리카 일주를 통해 만날 선물이 기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