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조병묵 Apr 23. 2024

자전거 타는 법을 어떻게 설명할까

제인 오스틴의 ‘오만과 편견’

제인 오스틴은 1775년 영국의 작은 마을에서 8남매의 일곱째이자 둘째 딸로 태어났다.  아버지는 교구 목사였고, 전형적인 몰락한 귀족 집안에서 자라났다.  그 시대 결혼은 부와 지위로 상징되는 신분을 상승시킬 수 있는 가장 중요하고 속물스러운 수단이었다.  제인 오스틴도 스무 살이 되던 해에 한 남성과 결혼 직전의 관계까지 갔지만, 재산이나 권력이 많은 사람과 결혼하기 바라는 남자 쪽 집안의 방해로 무산되었다.  다음 해 그 시대의 사랑과 결혼을 주제로 한 ‘첫인상’이라는 장편 소설을 발표하였고, 15년 후 개작하여 <오만과 편견>이 세상에 나왔다.  몰락한 귀족, 베넷 집안의 다섯 딸 중 첫째 제인과 둘째 엘리자베스가 빙리와 다아시라는 남자들을 만나 결혼에 이르는 신데렐라 스토리다.  키 크고 오만한 남자 다아시와 명랑하고 지적이지만 다아시에 대한 편견에 빠진 엘리자베스가 서로를 알아가면서 사랑에 빠져든다.


이 소설에는 세속적이고 가벼운 어머니와 현명하고 차분한 아버지, 공손하고 매력적인 빙리와 차갑고 거만한 다아시, 착하고 투명한 제인과 개성 있고 명랑한 엘리자베스가 등장한다.  등장인물들의 인성을 자의식의 관점에서 선명하게 대조한다.  자존감이 부족한 속물스러운 어머니부터 자기중심의 오만함에 빠진 다아시까지 인간 군상들의 모습을 명징하게 보여 준다.  작가는 상대방에 대한 인식의 오류를 불러일으키는 오만과 편견을 통해 갈등을 전개해 나간다.  또한 부와 지위, 학력 등의 배경 정보와 첫 만남에서의 간단한 대화와 행동으로 결정되는 첫인상 선택의 오류를 보여준다.  배경 정보를 통해 상대방에 대한 기대가 생긴다면, 첫 만남이라는 경험을 통해서 첫인상이 결정된다.  첫인상의 결과로 호불호가 결정되는데, 이것은 상대에 대한 편견을 강화하면서 관계를 증진하거나 저해하는 요소가 된다. 


첫인상은 왜 중요한가? 


<아버지: 그(다아시) 사람은 널 소 닭 보듯 하는 데다, 넌 그 사람을 벌레보다 싫어하니...>  <어머니: 저 보기 싫은 다아시 씨가 제발 우리 예쁜 빙리하고 같이 안 올 수는 없을까!>  <엘리자베스: 다들 그의 모든 재산과 지위로도 지울 수 없는 혐오감을 가지고 있지 않나 하는 걱정조차 들 지경이었다.>  무도회에서 만난 다아시의 첫인상은 다른 사람에 대한 배려가 없는 당당함, 감정이 없는 듯한 냉정함, 그리고 짧고 강한 자기주장을 펼치는 오만함 자체였다.  그가 돈과 지위라는 멋진 배경을 가지고 있어도 강력한 첫인상, 오만함 때문에 그를 싫어했다.  오만함을 불손함으로 느끼고 첫인상으로 그에 대한 평가를 완료한 것이다.  모두가 다아시의 오만함에 부응하는 사건이나 정보만을 취합하는 확증 편향, 편견에 사로잡히게 된 것이다.  현명하고 합리적인 엘리자베스도 편견을 이겨내고 다아시의 진심을 이해할 때까지 시간과 경험이 필요했다.


우리는 출신지나 학교, 외모나 성격 등 배경 정보를 가지고 상대에 대한 기대(Expectation)를 한다.  첫 만남의 경험(Experience)은 외모와 옷차림, 대화와 태도를 통해 기대를 검증하는 역할을 한다.  검증 결과에 따라 은연중에 상대방에 대한 호불호를 선택하고 관계와 배려의 수준을 달리한다.  또한 첫인상은 이후 지속되는 관계에 대해 또 다른 기대를 만든다.  첫인상에서 지나치게 기대 수준을 높이는 것은 이후의 관계에서 실망을 이끌 수 있다.  하지만 부정적 첫인상을 남기는 것은 편견을 각인시켜 관계를 단절시킬 수 있는 위험이 있다.  취업 인터뷰에서 검은색 정장에 하얀 셔츠가 표준인 이유도 면접관에게 첫인상으로 인한 부정적 편견이나 지나친 기대를 피하고 싶기 때문이다.  관계의 지속성과 상호 의존성이 높아 첫인상을 만회할 시간이 있어도 다아시처럼 현실에서 구구절절한 러브스토리를 만들 이유는 없다.


첫인상 선택은 무엇이 결정하는가? 


<엘리자베스: 당신을 처음 알게 되었을 때, 처음 알게 된 바로 그 순간이라 해도 좋을 것 같군요, 저는 이미 당신의 태도를 보고 당신이 거만하고 잘난 체하며 자기 생각만 하면서 남의 감정은 무시하는 사람이라는 인상을 받았어요.  그 뒤로 다른 일들이 드러나면서 그런 좋지 않은 인상이라는 토대 위에 혐오감이 차곡차곡 쌓였다고 할까요.>  다아시의 지나친 자기 확신에서 나온 오만은 엘리자베스에게 불손함으로 전달되었고, 엘리자베스는 다아시에 대한 편견을 키워간다.  어떻게 긍정적인 첫인상을 심어줄 수 있을까?  학력이나 부의 수준 등 사람의 배경은 한순간에 바꿀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첫인상에서 선택받기 위해서는 미소와 예의 바름이 가장 중요하다.  낮은 기대가 있는 상태에서 좋은 경험은 만족을 낳고, 높은 기대를 하고 있는 상황에서 불만족스러운 경험은 실망을 야기한다.  첫인상은 기대와 경험의 함수인데, 미소와 공손함의 태도는 가장 보편적이지만 빠르게 긍정적 인상을 심어줄 수 있는 경험이다.  


대화를 통해서 표현되는 미소와 예의바름은 객관적 배경정보를 뛰어넘는 그 사람의 삶에 대한 태도의 자연스러운 발현이다.  예의 바르게 대화하고 미소로 호응하면 상대의 마음이 열린다.  내 마음의 문을 열고 아이에게 자전거 타는 법을 설명하는 심정으로 내가 먼저 친절하게 배려해야 한다.  예의바름과 미소를 연습해 보자!  세상을 변화시키는 가장 빠른 길은 나를 변화시키는 것이다.  미소와 예의바름으로 오만과 편견을 지우면 상대의 마음의 문이 열린다.  사랑스러운 인성이 자연스럽게 드러나는 순간이다.  면접관들은 학벌이나 스펙 등 객관적 정보를 이미 가지고 있다.  서류전형을 통과하고 면접 자리에 초대되었다면 객관적 정보는 면접관들에게 단순한 검증의 대상이다.  그들은 후보자들의 표정과 대화 속에서 인성을 평가하고자 한다.  예의가 빠진 열정은 오만과 독선처럼 보이기 쉽다.


리더의 오만과 팔로어의 편견 어떻게 극복할 수 있을까?  


<오만은 자기 자신을 어떻게 보느냐의 문제이고, 허영은 남이 나를 어떻게 생각해 주기를 바라느냐의 문제거든.>  <이제 그녀는 자기 자신이 너무 부끄러웠다.  다아시에 대해서든 위컴에 대해서든 자기가 눈이 멀었고 편파적이었으며 편견으로 가득 차고 어리석었음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오만은 과도한 자존감을 표출하는 나르시시즘(Narcissism)의 전형적 현상이다.  자신이 옳기 때문에 빨간 펜을 들고 구성원의 생각을 수정하는 것이 리더의 의무라고 생각한다.  구성원의 다양한 의견을 자신에 대한 도전이라 생각하고 화부터 낸다.  종국에는 모든 것을 자신이 원하는 대로 이루어야 하는 독재자가 된다.  수직적 위계가 지속되는 한 팔로어들은 리더의 의사결정에 뒷담화를 지속한다.  전후맥락을 이해하지 못한 상태에서 현상만을 보고 진실을 가리는 편견을 키우는 어리석음에 빠지게 된다.  팀워크는 사라진다.


리더의 오만(일방적 지시)과 팔로어의 편견(뒷담화)속에 소통은 사라지고 조직의 이성은 마비된다.  오만에서 나오는 무례함은 대화의 기반이 되는 동등함과 예의바름, 의견을 표출할 수 있는 용기를 사라지게 한다.  팔로어들의 부정적 편견을 강화한다.  리더는 팔로어의 수동성과 무능을 탓하고 구성원들은 선입관과 무지를 따른다.  협업의 생산성과 집단 지성의 창의성이라는 팀워크의 효율성이 약화되는 것이다.  리더는 팀워크를 증진하는 과정에서 시간이 걸리더라도 구성원들과 의사결정의 전략적 의도와 지향하는 목표를 공유하고 소통해야 한다.  팔로어도 이성적 판단을 작동시켜 좋은 의견을 수용하고, 잘못된 결정에 투쟁할 수 있는 용기를 통해 부정적 편견을 이성적으로 극복해야 한다.  리더나 팔로어가 건설적 충돌을 두려워하거나 효율성이라는 미명하에 의견 대립과 교류의 과정을 생략하면 모두가 공유하는 새로운 생각은 탄생할 수 없다.  리더의 생각, 찬성한 사람들의 생각만이 남는다.  


전원이 동의하지는 않았어도 전원이 열정적으로 실행하려면 구성원의 자발적 참여를 보장하는 소통과 공유의 과정이 필요하다.  리더의 오만과 팔로어의 편견을 해소할 수 있는 팀워크의 경험이 절실하다.  내가 반대 의견을 충분히 표현할 수 있는 기회가 보장되고, 공정한 과정을 거쳐 의사결정이 이루어졌다면...   반대했던 나도 당연히 그것을 이루기 위해 최선을 다할 것이다.  우수한 인재를 채용해도 떠난다면, 사내에 비공식적인 정치와 파벌이 판친다면, 소리치는 관리자와 무기력한 구성원들이 보인다면 조직 내 리더의 오만과 팔로어의 편견을 빨리 찾아보자!  리더의 오만과 팔로어의 편견은 서로 강화시키면서 무서운 속도로 전염된다.  제인 오스틴의 <오만과 편견>을 같이 소리 내어 읽고 솔직하게 대화해 보자!  


참고도서: 세계문학전집 88 오만과 편견(Pride and Prejudice)

             (민음사, 제인 오스틴 지음, 윤지관/전승희 옮김) 



매거진의 이전글 소통의 희극인가, 불통의 비극인가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