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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병묵 May 03. 2024

청년에게 자리를 양보하자

객관적 실력도, 주변의 인정도, 감정적 평온함도 부족하지만 꿈꾸는 님들

“사랑해 줘서 고맙지......  응......  남태령......  아니야......”  옆에 서있는 20대 후반으로 보이는 숙녀분이 전화로 속삭인다.  사랑하는 사람과 한잔하고 막 헤어진 것 같다.  밤 10시를 넘긴 시간 지하철은 또 하루의 무료함을 술 한잔으로 씻어낸 사람들로 가득하다.  차장에 비친 그녀도 피곤한 얼굴에 취기가 올라 지하철과 같이 규칙 없이 뒤뚱거린다.  옆사람에 피해가 갈까 조용히 속삭이는 소리가 궤도소음의 찢어지는 쇳소리 속에서 더욱 선명하게 빛난다.  문득 딸아이가 생각났다.  사회생활을 막 시작한 딸아이는 '출퇴근길 지하철에서 자리에 앉아 가는 것이 정말 큰 행운이다'라고 했었다.  



직장인들에게 시간은 굴레와 같다.  세상이 많이 좋아졌다지만 몸이 아파도, 일이 없어도, 그리고 가기 싫어도 가야 하는 출근길이 반가울 리 없다.  주중의 피로에 묻혀 주말의 온전한 휴식도 여의치 않다.  온전하게 하루를, 이틀을 빼서 연휴를 즐기는 것은 언제나 즐거운 상상이고 작은 행복이다.  굴레가 얼마나 싫은지 힐링이라는 이름으로 여행을 가고, 소심하지만 새로운 도전을 계속한다.  가슴으로 느끼는 시간을 만들고 싶지만 정작 휴대폰과 SNS에만 기록을 남긴다.  청년들이 사회에 첫 발을 디디면 조직의 위계와 다람쥐 쳇바퀴 돌 듯 반복되는 출퇴근이 스트레스라고 한다.  나도 그랬으니 이해가 된다.  자유를 돈 받고 판 듯한 느낌이랄까......


대기업, 높은 연봉, 유망한 기업에서의 안정적인 생활도 어느 순간 불확실한 미래, 희망이 없어 보이는 내일과 맞닥뜨린다.  억울한 일이 다반사지만 표현하기도 어렵다.  진정한 각자도생이 시작된 것이다.  꿈과 돈을 좇아 창업을 하고, 고시를 준비하고, 무작정 여행을 하러 가장 표준화된 사회, 회사를 뛰쳐나간다.  그래서 청년의 삶은 낭만적이지만 불확실하고 불가해한 여정이다.  사랑도 해야 하고 차도 사야 한다.  아기도 낳아야 하고 집도 얻어야 한다.  그리고 매일매일 출근도 해야 한다.  너무 많은 변화를 짧은 시간에 만들어야 하는 청년의 고달픈 삶이다.  지하철에서 내 앞에 자리가 났는데 내 옆에 청년이 있으면 양보하자!


어린 시절 어른이라는 단어 앞에 가장 자주 따라다니는 형용사는 ‘인자한’이었다.  국어사전에는 ‘마음이 어질고 자애롭다’고 어렵게 뜻풀이를 한다.  어질다는 뜻은 너그럽고 착하며 슬기롭고 덕이 높다는 의미를, 자애롭다는 (사람이나 그 태도가) 아랫사람에게 따사롭고 돈독한 사랑을 베푸는 마음이 있다는 의미가 있다.  최근 우리 사회는 세대갈등 때문인지 인자한 어른과 리더를 찾아보기 어렵다.  각자도생의 시대는 남에게 ‘베풀기’ 보다 나의 것을 ‘챙기기’가 중요하다.  자애로움은 표현방식의 차이로 인해 오해를 불러일으키기 십상이다. 어쨌든 어른을 공경하지 않는 청년을 탓하기보다 인자함을 드러내지 못하는 우리 어른이 잘못이다.


‘내리사랑은 있어도 치사랑은 없다’는 말이 있다.  청년보다 더 살아온 하루하루가 아무것도 다른 것이 없다면 그 어른의 인생은 인색하고 불행하다.  조금이라도 더 성숙했다면 사랑을 표현하는 여유와 용기를 가져야 한다.  ‘안녕하세요!  고맙습니다!’라고 먼저 인사하고 옆에 서있는 청년에게 자리를 양보할 수 있는 넉넉함을 가져야 한다.  자리가 났다.  슬그머니 왼쪽 아저씨를 살짝 막아섰다.  그 숙녀분이 눈치를 보다 눈인사를 하며 자리에 앉는다.  속삭이는 목소리는 조금 더 편안해지고 표정에도 안도가 묻어난다.  멀리 가나보다!  내 마음도 기쁘다!  출근길에 행운을, 퇴근길에 위안을 청년들에게 선물할 수 있는 인자한 어른이 나부터 돼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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