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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단비 Dec 08. 2023

2학기 2차 고사 -4일 차(세 명의 수다)

2023.12.08.


‘학교 가기 싫다.’, ‘요즘 애들은….’, ‘스트레스받는다.’, ‘힘들다.’ 학교로 출근하기 전, 퇴근한 후, 습관처럼 툭툭 던지는 말들이다. 한 교사는 열의 없는 직장인이 되어 밀려드는 업무와 곤란한 학생을 마주하며 괴롭다, 못 해 먹겠다, 입 밖으로 내뱉는다. 이 교사의 말에는 가시가 있어 학교가 괴로운 공간이길, 교사가 고단한 직업이길, 자신이 그런 진흙탕 속에 허우적대고 있길, 바라는 것 같다.


누군가가 한 교사에게 말했다. ‘뉴스 보니까 요즘 애들 아주 건방지고 못됐던데요. 교사하기 너무 힘들겠어요. 애들은 역시 때려가며 키워야 하는 건데.’ 그제야 그 교사가 깜짝 놀랐다. 요즘 애들, 그렇게 못되기만 한 건 아니에요. 교권이 추락했다고, 그래도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이에요. 학교는, 뉴스에 나온 것처럼 삭막하고 전쟁 같은 곳만이 아니라 따뜻하고 사랑이 넘치는 곳이기도 해요.


글을 써야겠다. 다정하고 온화한 학교의 일상을 글로 공유해야겠다. 무심코 놓쳤던 고마움을 일기로 남겨야겠다. 뉴스에서는 학교의 따뜻함을 알려주지 않으니까. 습관처럼 힘들다는 말을 던지는 교사는 사실 자신이 얼마나 행복한 사람인지 알지 못하니까.


30대_고등학교_비담임_교무기획부



드디어 올해의 마지막 지필고사 날이 되었다. 오늘은 퇴근 후에 선생님 두 분을 만나 커피를 한 잔 하기로 했다. 시험이 끝나자마자 곧바로 약속 장소로 튀어나갔다.


많은 이야기가 오갔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들으며 사람들 생각하는 게 다 비슷하구나, 다들 한 번쯤은 자기 연민에 빠지거나 한없이 작아지는 순간들이 있구나, 생각했다. 특히, 임용을 준비하고 계시는 선생님이 거듭되는 시험 준비에 고민하는 모습이 찡했다. 여러 해 시험을 치면서 이 길이 내 길이 맞는 걸까, 내가 인생을 잘못 그린 건 아닐까, 앞으로 무엇을 해야 할까, 많은 생각이 든다고 했다. 임용 시험을 코앞에 두고 내가 진짜 교사를 하고 싶은 게 맞는 건가, 고민하던 과거의 내 모습이 떠올랐다. 한편으로는 나보다 돈 잘 버는, 또는 명예가 높은 직업들을 부러워하는 현재의 내 모습이 떠올랐다. 사람들은 종종 자신이 가지고 있는 행복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를 잊곤 하는데, 지금의 내가 딱 그런 것 같았다. 학교 생활을 하면서 불만을 가지고, 다른 직업들을 부러워하는 동안에도 누군가는 나의 이 자리를 얻고 싶어 아등바등한다는 사실을 새삼 다시 깨달았다. 지금의 내 처지를 사랑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선생님이 꼭 합격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두 선생님이 대화하는 모습을 지켜보는 게 즐거웠다. 내가 가지고 있는 작은 고민들을 얘기할 때, 두 분이서 공감하며 보이는 반응들이 위로가 되었다. 정말로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수다를 떨었다. 점심시간에 만났는데, 헤어질 때 시계를 보니 어느새 8시가 넘어갔다. 오늘 해야 하는 수많은 일들을 하나도 하지 못했는데도, 그래도 기분이 좋았다. 오늘 내가 해야 할 일을 다 하는 것보다 더 풍요롭고 소중한 경험을 얻었다. 학교 안에서 만난 사람들과 학교 밖에서 소소한 재미를 쌓는 것도 꽤 유쾌한 경험인 것 같다. 이러한 경험들이 앞으로도 종종 있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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