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12.14.
‘학교 가기 싫다.’, ‘요즘 애들은….’, ‘스트레스받는다.’, ‘힘들다.’ 학교로 출근하기 전, 퇴근한 후, 습관처럼 툭툭 던지는 말들이다. 한 교사는 열의 없는 직장인이 되어 밀려드는 업무와 곤란한 학생을 마주하며 괴롭다, 못 해 먹겠다, 입 밖으로 내뱉는다. 이 교사의 말에는 가시가 있어 학교가 괴로운 공간이길, 교사가 고단한 직업이길, 자신이 그런 진흙탕 속에 허우적대고 있길, 바라는 것 같다.
누군가가 한 교사에게 말했다. ‘뉴스 보니까 요즘 애들 아주 건방지고 못됐던데요. 교사하기 너무 힘들겠어요. 애들은 역시 때려가며 키워야 하는 건데.’ 그제야 그 교사가 깜짝 놀랐다. 요즘 애들, 그렇게 못되기만 한 건 아니에요. 교권이 추락했다고, 그래도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이에요. 학교는, 뉴스에 나온 것처럼 삭막하고 전쟁 같은 곳만이 아니라 따뜻하고 사랑이 넘치는 곳이기도 해요.
글을 써야겠다. 다정하고 온화한 학교의 일상을 글로 공유해야겠다. 무심코 놓쳤던 고마움을 일기로 남겨야겠다. 뉴스에서는 학교의 따뜻함을 알려주지 않으니까. 습관처럼 힘들다는 말을 던지는 교사는 사실 자신이 얼마나 행복한 사람인지 알지 못하니까.
30대_고등학교_비담임_교무기획부
일찍 조퇴했던 어제가 지나고 오늘, 평소보다 일찍 출근했다. 내 책상 위에는 탁상 거울이 놓여 있는데, 거기에 포스트잇이 하나 붙어 있었다. 나 없는 새에 일이 생겼나, 싶어서 포스트잇을 자세히 보니 노래 가사가 적혀 있었다. 짝지 선생님이 붙여 놓은 건데, 너무 웃겨서 한참을 웃었다. 내가 조퇴해서 옆 자리가 비어있는 걸 보고 적으신 거라고 했다.
학교에서 발생하는 이런 소소한 웃음거리들을 사진으로 찍어서 남기곤 한다. 언젠가 그 사진들을 한꺼번에 정리해 봐야겠다.
2교시에는 수업 교실로 가기 위해 계단을 오르는데 학생 두 명이 쪼르르 내려와 "선생님~" 이러면서 팔짱을 꼈다. 나랑 같이 교실에 들어가려고 쉬는 시간부터 복도에서 기다렸다고 한다. 해맑게 웃는 표정으로 애교를 부리는 게 너무 귀여워서 빵 터졌다. 정말 웃지 않을 수가 없었다. 보답으로 재빨리 교실로 들어가 문을 닫고 안 열어주며 장난을 쳤다.(?) 오후에는 학생 한 명에게 메이크업도 배웠다. 메이크업 분야를 희망 진로로 삼고 있는 아이였다. 내 밋밋한 눈에 정성스레 화장을 해주며 꿈에 대해 이야기했다. 다른 학생이 화장하는 나를 보고는 "본판이 예뻐서 화장하니 더 예쁘다"며 귀여운 아부를 해주었다.
또 오늘은 공모 교장 심사가 있는 날이었다. 교무부의 일이기 때문에 쉬는 시간마다 틈틈이 진행을 도왔다. 외부인이 많기도 하고, 심사 중에 학생들 고함 소리 같은 게 들리면 좋을 것 같지 않아서 심사실 주변의 학생 통행을 차단했다. 담당 선생님께서 심사 준비로 너무 바빠서 학생들 통행을 차단해 달라고 미처 학년부에 협조를 구하지 못했다. 그래서 학생들이 우리의 지시를 잘 이해하지 못했는데, 그 모습을 보고는 학년부 선생님들이 출동해 키다리 책상으로 통로를 막아주며 학생 통행 차단에 협조해 주셨다. 미리 협조를 구하지 않았는데도 적극적으로 도와주셔서 감사했다.
공모 교장 심사가 이렇게까지 일이 많은 줄 모르고 뭘 도와야 하는지 몰라 우왕좌왕하고 있었는데, 부장님과 선생님들이 "막내는 놀아. 쉬어."라며 나를 교무실로 쫓아내셨다. 어쩌다가 등 떠밀려 퇴근까지 일찍 했다. 찝찝하긴 했지만 에라 모르겠다, 주시는 기회를 감사히 받고 룰루랄라 신나게 귀가했다.
돌아보니 예쁜 사람들이 많았다. 조퇴한 내가 그립다며 포스트잇에 장난을 치는 예쁜 짝지 선생님, 애교를 부리며 나를 잘 따라주는 예쁜 학생들, 미리 협조를 구하지 않아도 상황을 보고 발 벗고 나서주는 예쁜 학년부 선생님들, 부서에서 막내라고 배려해 주는 예쁜 우리 부서 선생님들, 모두가 예쁜 사람들이었다. 이 예쁜 사람들 덕분에 오늘의 내 하루도 예뻤다. 행복과 감사로 가득한 하루였다.
나도 누군가에게 예쁜 사람이 되어야겠다. 그래서 누군가의 하루를 예쁘게 만들어주는 사람이 되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