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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단비 Dec 21. 2023

20년의 세월을 넘어

2023.12.21.


‘학교 가기 싫다.’, ‘요즘 애들은….’, ‘스트레스받는다.’, ‘힘들다.’ 학교로 출근하기 전, 퇴근한 후, 습관처럼 툭툭 던지는 말들이다. 한 교사는 열의 없는 직장인이 되어 밀려드는 업무와 곤란한 학생을 마주하며 괴롭다, 못 해 먹겠다, 입 밖으로 내뱉는다. 이 교사의 말에는 가시가 있어 학교가 괴로운 공간이길, 교사가 고단한 직업이길, 자신이 그런 진흙탕 속에 허우적대고 있길, 바라는 것 같다.


누군가가 한 교사에게 말했다. ‘뉴스 보니까 요즘 애들 아주 건방지고 못됐던데요. 교사하기 너무 힘들겠어요. 애들은 역시 때려가며 키워야 하는 건데.’ 그제야 그 교사가 깜짝 놀랐다. 요즘 애들, 그렇게 못되기만 한 건 아니에요. 교권이 추락했다고, 그래도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이에요. 학교는, 뉴스에 나온 것처럼 삭막하고 전쟁 같은 곳만이 아니라 따뜻하고 사랑이 넘치는 곳이기도 해요.


글을 써야겠다. 다정하고 온화한 학교의 일상을 글로 공유해야겠다. 무심코 놓쳤던 고마움을 일기로 남겨야겠다. 뉴스에서는 학교의 따뜻함을 알려주지 않으니까. 습관처럼 힘들다는 말을 던지는 교사는 사실 자신이 얼마나 행복한 사람인지 알지 못하니까.


30대_고등학교_비담임_교무기획부



"유튜브는 내가 양띠인 것도 알아요?"

한 부서 선생님이 내게 물었다. 유튜브 추천 영상에 양띠 관련 영상이 계속 뜨는 게 신기하다고 했다.

"선생님 양띠예요? 저도 양띠인데!"

신이 나서 내가 말했다. 선생님과 나는 무려 24년 차이가 나는 띠동갑이었다. 거의 엄마와 딸뻘이다.

선생님은 음력으로 12월 말 출생이라 양력으로는 1월 생일이어서 음력과 양력의 띠가 다르다고 했다. 어, 나도 그런데! 서로 신기해하며 깔깔 웃었다.


무려 20여 년의 까마득한 차이다. 선생님이 근무를 시작할 때쯤 나는 태어나지도 않지 않았나. 그런데 2년을 같이 근무하면서 나는 그 까마득한 차이를 한 번도 체감한 적이 없다. 친구처럼 팔짱도 끼고, 농담도 주고받고, 심지어는 선생님을 놀리기도 했다. 내가 이토록 편하게 지냈던 데에는 분명 선생님의 열린 마음과 넓은 아량이 있었을 것이다.


조금만 나이 차이가 나도 '나 때는...' 이러면서 어린아이들을 '요즘 애들' 취급하거나, 조금만 잔소리를 해도 '아, 꼰...' 이러면서 어른을 '꼰대' 취급하는 요즘 세상이다. 20년이 넘는 나이 차이에도 내가 친구를 대하듯 편하게 행동할 수 있게 배려하고 이해해 주신 선생님이 새삼 고맙게 느껴진다. '귀여운 할머니'가 되고 싶다는 선생님의 바람이 단순히 바람만은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선생님의 그 편안하고 귀여운 분위기가 좋다.


선생님뿐 아니라 우리 학교에는 허물없이 편하게 지냈는데 알고 보니 나이 차이가 많이 나는 선생님들이 많다. '까마득한 후배'가 너무 편하게 굴면 '하늘 같은 선배'는 불편할 법도 한데, 다들 같이 웃어주고 이해하고 장단을 맞춰 준다. 이것이 교직의 분위기인지, 그 시절의 어른들은 다 그런 건지, 다른 직장을 경험한 적이 없어 나는 잘 모른다. 하나 확실한 것은, 교직 체계에 계급이 크게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승진에 의미가 없으니 다들 편안하고 여유롭다. 교사는 월급이 짜기로도 유명해서, 10년 일한 선생님이나 3년 일한 선생님이나 월급도 비슷하다. 다 같이 가난한 거다.(?) 분명 이런 교직의 체계가 편안하고 귀여운 분위기에 한몫했을 것이다.


다 같이 가난하고,(?) 다 같이 편안하고, 다 같이 친구가 되어 좋다. 어린 선생님들을 이해해 주는 선배 선생님들이 좋다. 그런 선생님들이 모여 만들어진 지금의 학교 분위기가 정말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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