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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익 Oct 16. 2024

출근하고 싶어서

전정신경염이 찾아온 프리랜서 이야기

한달 전쯤 어지러움 증상을 느껴서 병원에 가보니 전정신경염 진단을 받았다. 한달 이상 약을 먹으면서 치료받는 것인데, 시간이 걸리기야 하지만 낫는 것이라 하니 다행이다. 생소한 전정신경염이 내 삶에 찾아오게 된 이유에 대해서 생각해보았다. (역시 나는 쌉T) 생각해보면 여름동안 달리고 또 달렸다. 나는 내 몸이 언제까지도 버텨줄 수 있을 것처럼 달리고 또 달렸다. 몸이 힘들다는 신호를 보내야만, 멈추고 돌아본다.


생전 안하던 일들을 휘몰아치듯 했다. 상담과 강의, 온라인 모습, 교회 여름사역, 아이의 여름방학, 유튜브 촬영, 업로드, 블로그 챌린지(주 5회 포스팅) 등등 뭐 그냥 휘몰아 치듯 했었다. 그런데도 나는 ‘내가 뭘 그렇게 많이 했다고?’, ‘이제 시작인데?‘, ’아직 본격적으로 하지도 않았는데…‘ 하면서 시간 틈만 나면 운동하고, 책읽고 … (작년까지 해서 갓생 루틴 벗어난 줄 알았는데 쓰다보니 아니네.) 내가 부담을 많이 갖고 있다는 것을 몰랐고, 인정하지도 못했다. 왜 그랬을까. 그러면서도 부족하다는 생각, 뭔가 놓치고 있는 것 같은 생각을 지울 수가 없었다. 의사선생님은 일을 줄여라, 과로하면 안된다 하시는데 갸우뚱 했다. ‘내가 무슨 과로?’


어제 친구와 대화하면서 알았다. 이게 다 일하는 사람으로서의 정체성이 약해서 생긴 일이다. 출근하지 않아서? 월급이 없어서? 여러가지 이유가 있는듯 하다. 실제로 나는 일을 하는 시간은 아침부터 밤까지, 어느때나 원하면 할 수 있고, 어디서나 일을 할 수 있다. 실제로 그렇게 살았다. 노트북이랑 패드만 있으면 어디서든 사무실이 되니까, 그러면서도 출근하지 않는 것 같았고, 월급이 없으니 일하는 사람, 워킹맘의 정체성도 약했다. 그러니 계속 언제 멈출까봐 두려워서 멈추지 못하고, 계속 나를 가동시키며 살았던 것이다. 으이그. 또 사이코진 2호에서 일에 대한 태도를 보니까 알아졌다. 한국 사람들이 일하는 시간이 제일 많단다. 번아웃이 와도 인정을 못한단다. 구조가 그런 문제가 있다고 하네? 구조 탓도 살짝 돌리고! ^.~


하지만, 일에서 느끼는 성취감, 감사한 경험들, 감사한 마음이 가장 크다. 더 잘하고 싶어하는 나도 기특하고. 쉽지 않을 거란 생각을 했지만, 그래도 뭐 나는 이 선택이 마음에 든다. 다시 돌아가도, 마찬가지일거고. 이 구조에서 어떻게 롱런할까? 그 생각을 구체화시켜본다. 그래서 오늘은 출근 리추얼을 만들었다. ‘이건 출근하는거야, 일하는거야. 일은 몇시부터 몇시까지 할거야.’ 내가 정해놓은 틀과 의미 안에서 다소 외롭지만 이 일을 계속 해나가야 한다. ’다시 천천히 돌아오면 되지‘ 라는 친구의 말이 마음에 남는다.


출근하고 일한다. 지금 일하는 중이다! 12시까지 하고, 점심시간 갖는다! 여긴 내 일터다! 천천히 다시 돌아가기로 마음 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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