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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두는 Sep 03. 2023

#23 강남 최연소 스타강사,BTN어학원 테리쌤의 서사

화려한 커리어보다 중요한 것







#미친 듯 소리치는 수업, 열정을 다하는 이유?


  수업 땐 학생들과 미친 듯 큰 소리로 외치며 호흡해요. 제 열정이 전해져서 ‘와 쌤도 저렇게 열심히 하는데, 무조건 된다는데, 나도 한 번 해볼까?’이런 마음을 학생들이 가졌음 해요. 제가 영어를 배울 때 너무 배고프고 간절했기에 학생들도 그 시절 저처럼 간절할 거라 생각하나 봐요. 그래서 잘 가르치는 건 당연하고 늘 제가 가진 전부를 쏟아부으려 하죠.






          

#생애 첫 목표

  ‘영어를 씹어 먹어 버리겠다!’ 고등학교 졸업 때까지 놀기만 했는데, 처음으로 하고 싶은 게 생겼어요. 누군가 영어 하는 모습이 너무 멋져 보이더라고요. 이런 생각이 들었어요. ‘와. 나도 저렇게 영어 잘해서 잘난 척하고 싶다.’, ‘영어책 한 권 통째로 외워서 보여주고 싶다.’, ‘뉴욕에 가서 슈퍼 한국인이란 걸 보여주고 싶다.’ 



#유일한 간절함

  우선 토익 공부를 시작했어요. 학원도 등록해서 열심히 한 만큼 자신 있게 시험 쳤는데 300점인가 나왔어요. 그때 생각했죠. ‘역시 난 돌머리구나.’ 해도 해도 점수가 안 오르더라고요. 더 이상 부모님께 손 벌리기도 죄송해서 학원도 그만두고, 독학을 했어요. 김밥 한 줄 먹기 힘들 만큼 돈 없고, 배고팠지만 오히려 좋았어요. 돈을 쓸 수 없으니 할 게 공부밖에 없었고, ‘나한텐 이거 밖에 없다.’란 생각에 새벽부터 잠들기 전까지 영어만 목숨 걸고 했어요.     



#자신감, 정해진 성공

  주변에선 모두 비웃고 믿지 않았지만 신경 안 썼어요. 빨리 꿈을 이뤄서 증명하고 싶단 생각밖에 없었어요. 여러 공인 영어 시험에 줄지어 만 점을 받았어요. 독학으로 영어를 마스터하기까지 몇 년이 걸렸지만요. 돌머리인 것과 성공은 별개라 생각했어요. 전 당연히 잘 될 거라 믿었고, ‘실패하면 어쩌지’라곤 생각해 본 적 없어요. 잘 될 건데, 당장 올해 잘 될지, 내년에 잘 될지, 오 년, 십 년 걸릴지 그게 문제일 뿐, 1000% 무조건 당연히 잘 된다 생각했어요.     



#꿈 실현, 최연소 스타강사

  준비 없이 무작정 해외에 갔어요. 가진 것 하나, 연고도 없는 곳에서 배고프고 두려워도 포기는 절대 안 했어요. 귀국 후 우연히 강의를 했는데, 제가 강의를 너무 잘하는 거예요. 최연소 스타강사란 수식어까지 얻었죠. 천 명 이상 제 수업을 신청하고 가장 먼저 마감 됐어요. 이후엔 정부 및 기업 통역 요원 등을 역임하고 스카웃 제의가 쇄도할 만큼 ‘영어를 씹어 먹겠다!’던 꿈을 실현했어요.     



#100가지 아픔

  아픔의 종류가 100개라면, 100가지를 다 겪은 것 같아요. 꿈을 실현하기까지 말 못 할 아픔도 시련도 많았는데, 그래서 오히려 좋아요. 그래서 현재가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해도 해도 안 됐기 때문에 오기로 했고, 죽도록 했고, 지금까지도 계속 공부하는 이유인 것 같아요.



#최선의 선택

  20대 후반, 강남에 자리 잡고 커리어를 쌓아가던 시절에 어머니께서 폐암을 앓으셨어요. 항암치료하시고 머리 빠지는 모습을 보는데 너무 괴롭더라고요. 차라리 대신 아팠으면 좋겠고, 밤마다 울었어요. 어머니께서 말씀하시더라고요. 아들이랑 같이 살고 싶다고. 당장 내일 어떻게 될지 모르는 상황에 아들이 멀리 있으니까요. 칠순이 넘으셔서 서울에 있으면 1년에 2번 정도. 100살 때까지 사신 데도 20번밖에 못 보더라고요. 아무것도 안 보였어요. 다 정리하고 울산에 내려왔어요. 그렇게 BTN도 시작했어요.      



#평온함과 가족

  여전히 가족이 인생 전부예요. 지금은 완쾌하셨고 부모님 모두 건강하세요. 잃어버릴 뻔했는데, 너무 소중하고 감사하죠. 그리고 가정이 생겼어요. 아이가 이제 초등학교 1학년인데, 하원을 제가 해요. 얼마 전 아이가 역할극을 하더라고요. “내가 말하는 걸 모두 들으세요! BTN 강사입니다!" 하고 외치면서요. 학원에 왔다가 제가 강의하는 모습을 보곤 흉내 낸 거예요. 그러곤 아빠 목 아프겠다고 뽀뽀해 주자고 하는데 눈물 날 뻔했어요. 사실 비혼 주의였는데, 결혼 안 했으면 어쩔 뻔했나 싶을 만큼 너무 행복해요.  





가족뿐만 아니라 사랑하는 친구, 동료. 

인생을 함께 걸어갈 식구를 만들고 싶어요. 

무언가 해나갈 때 옆에 함께하는 식구들이요. 

같이 동남아도 가고, 발리도 가고. 

그렇게 제 식구와 함께 인생을 채워가고 싶어요.

그게 제가 꿈꾸는 미래예요.




(인스타그램 @moduneu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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