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 09.16. Sat.
1. 일찍 죽은 커트 코베인은 '그렇게 쉽게 즐거워할 수 있는 너희들이 부러워'라는 식으로 비아냥과 시니컬의 달인이었다. 자기가 세상을 다 안다고 생각했겠지만 사실 삶이란 그렇게 근사한 몇 마디 말로 포장되거나 정의되지 않는 것이란 쪽이-그보다 두 배에 가까이 더 살아가면서 알게 된- 삶의 여러 얼굴들에 더 가까운 것 같다. 하지만 그럼에도 치기어린 27세 클럽의 아티스트들이 아름다운건 그들이 펼치지 못한 가능성에 대한 상상, 그리고 노력으로는 절대 얻지 못하는 천연의 매력에 대한 동경, 완전히 성숙하지 않은 미완의 아름다움의 미학이 뿜어내는 거부하기 어려운 toxic charm 때문이기도 하다.
2. 휴일이라 느긋하게 습관처럼 틀어 놓은 넷플릭스 다큐영화 '아주 평범한 사람들'은 학식과 교양을 갖춘, 그렇다고 유대인에게 딱히 악의도 없는, 오히려 나치에 동조 하기는커녕 사회민주주의적 성장배경에 좋은 아버지, 아들, 남편이었던 평범한 남자들이 어떻게 그런 끔찍한 학살에 가담 했는지에 대한 뉘렌베르크 재판 외전 같은 버전이다. 개인의 자유의지, 자존감의 중요성, 양심이라는 문제에 대해 밀도있게 그러면서도 눈을 뗄 수 없게 잘 만든 이 다큐영화는 하고 싶은 말, 해야할 말이 너무나 많은 Context다. 그 안에서도 제일 놀라운 발견은 103세, 2023년 올해 4월 별세한 벤자민 페렌츠 (뉘렌베르크 재판 당시 27세 검사였던) 라는 법조인의 존재였다. 103세로 죽는 날까지 전쟁범죄, 반인륜범죄에 대해 고발하기를 계속 해 온 분으로 100세 되던 해 이 영화에 나와 증언하며 젊은이들에게 이렇게 부탁한다. 다름에 집중하기보다는 작은 행성에 사는 인류로, 공통점에 더 주목하며 반인륜 범죄가 반복되지 않도록 감시하는 일의 바통을 당신들에게 넘긴다고. 힙하고 쿨하게 한 마디 지르는 것과는 비교할 수 없는 무게감. 사람이 어떻게 나이들어가야 하는지에 대해 벤자민 페렌츠 덕분에 생각의 방향을 조금 바꿔 생각하게 되었다. 헤이그의 형사재판소가 두려워 지금 하는 반인륜 범죄, 독재를 멈추는 권력자가 과연 있겠냐마는 가끔, 아주 가끔 그래도 정의가 실현될 수 있었던건 긴 생을 꾸준히, 내 한 몸보다는 인류가 지켜야 할 가치에 대해 저렇게 열심히 노력해온 사람들 덕분이었겠거니 생각하니 긴 삶을 꼭 저주로 만 볼 것도 아니란 생각이 들었다.
3.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서 수천 수백만의 생명을 멸하도록 명령한 사람(트루먼)과 뉘렌베르크 재판소에서 수백의 민간인 학살을 명령하고 교수형 당한 올렌도르프는 같은 구조에서 같은 결정을 했다는 말을 하면서도 조금의 흔들림도 두려움도 없는 벤자민 페렌츠를 보면서 깊이, 오래, 어려운 문제를 다룬다는 것의 엄정함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4. 개성을 강조하며 다름에 천착 하더라도 그 다름이 틀린 것으로, 배타적인 공격성을 갖지 않게 하려면 우리는 어떤 소양과 마음가짐을 갖고 살아야하는지....누구나 살인자가 될 수 있는 영장류의 본성을 가진 우리. 그런 우리 안 깊숙이 내재된 파충류의 뇌를 일깨우는 사회적 분위기때문에 더욱 걱정스러운 마음으로 본 다큐영화 한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