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3. 스웨덴 라플란드: 춤추는 오로라의 황홀경

by 수경

대학교 2학년이 되었을 때, 나는 주저 없이 휴학계를 내고 곧장 아르바이트 전선에 뛰어들었다.


주말이면 하루 13시간씩 햄버거 가게 주방에서 일을 하고, 평일엔 사무보조 업무를 하다가 헌혈의 집에서 카운터를 맡기도 했다.


그렇게 악착같이 모은 돈은 모두, 단 하나의 목표를 향한 것이었다. 교환학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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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직 대학생일 때만 누릴 수 있는 특권이라는 생각에, 꼭 한 번은 해외 교환학생을 다녀오고 싶었는데, 이 기회를 어디에 써야 가장 후회 없을지를 오래 고민했다.


가능하면 영어 실력을 키울 수 있는 곳, 유럽처럼 여러 나라를 여행할 수 있는 지역이면 좋겠고, 무엇보다 더운 건 질색이라 서늘한 날씨면 좋겠다는 조건들을 하나둘 붙이다 보니, 목적지는 자연스럽게 북유럽으로 좁혀졌다.


그리고 최종적으로, 내가 다니던 학교와 교류가 있던 스웨덴의 ‘외레브로 대학교’를 1순위로 지원했고, 합격했다.




tempImagekhQalI.heic 정말 아름다웠던 도서관


스웨덴에서의 일상은 그 자체로도 흥미롭고 새로웠지만, 나는 사실 마음속 깊이 품고 있던 인생의 버킷리스트를 이룰 날만을 손꼽아 기다리고 있었다. 바로 오로라.


밤하늘을 유영하는 신비로운 초록빛, 누구나 한 번쯤 꿈꾸는 그 장면을 내 두 눈으로 꼭 보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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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시간이 흘러 교환학생 생활 99일째 되는 날이었다.


북유럽 교환학생이라면 누구나 가게 될 '라플란드'는 스웨덴과 핀란드의 최북단 지역인데, 이곳은 오로라를 잘 볼 수 있기로 유명하다. 이곳 라플란드의 오두막에서 친구들과 모닥불을 피우고 있었는데, 무심코 확인한 핸드폰 속 ‘오로라 지수’가 눈길을 사로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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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로라지수가 초록색을 넘어 빨간색에 해당한다는 것은 오로라를 지금 볼 수 있는 확률이 높다는 것!


이 화면을 보자마자 친구들과 다같이 문을 박차고 나가, 빛 하나 없는 칠흑 같은 숲 속을 향해 달려갔다. 그렇게 들뜬 마음으로 달리던 이 순간은 ‘이게 바로 청춘이구나’ 싶을 정도로 거침없었다.




하지만 숲 끝에서 마주한 하늘은 생각보다 조용했다. 머리 위엔 흐릿한 하얀빛이 고요히 퍼져 있을 뿐, 초록빛은 어디에도 없었다.


기대했던 만큼 선명하지 않았기에 아쉬움은 남았지만, 오로라는 워낙 쉽게 허락되지 않는 기적이라 하니. 오히려 더 간절해지는 걸? 내일은 꼭 볼 수 있을 것 같아, 하며 오두막으로 향했다.


그리고 다음 날 밤, 모닥불 앞에 둘러앉아 마시멜로를 굽고 있던 순간. 여기저기서 감탄사가 들려오며 하나둘 뛰쳐나가는 아이들을 따라가보니, 드디어 오로라가 모습을 드러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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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눈에 담은 장면을 그대로 묘사하자면, 새카만 하늘 위로 하얀빛이 피어나더니 순식간에 퍼졌다. 출렁이듯 넘실대며 파도를 그리고, 사라질 듯하다가도 다시 어깨춤을 추듯 나타났다.


그 광경을 마주한 순간 오로라를 본 사람들이 '춤을 춘다'는 표현을 쓰는 이유가 단번에 이해가 갔다. 암흑 속에서 하얀빛이 작게 피어났다가 순식간에 하늘을 확- 덮으면서 넘실넘실 파도를 치다가 사라지기를 반복하는데, 그 모습이 정말 춤을 추는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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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홀함에 빠져들어 한시도 하늘에서 눈을 뗄 수가 없던 우리는 모두 눈 밭에 나란히 드러누웠다. 그러다 문득, 하늘에서 작은 빛 하나가 ‘톡’ 하고 떨어졌다. 별똥별이었다.


이미 오로라를 본 것만으로도 평생의 소원이 이루어진 기분이었지만, 나는 두 손을 모아 기도했다. 나와 내 가족, 친구들이 건강하고 행복하게 해달라고. 이 찬란한 순간을 평생 잊지 않게 해달라고.


얼어붙은 손을 비비적 거리며 한참을 있다 보니, 내가 살면서 한 번도 어떠한 자연환경을 보기 위해 이렇게 열망했던 적이 있었나 싶었다. 그렇게 특별하고 찬란했던, 스웨덴 교환학생 100일 차의 밤이 지나갔다.




오로라를 찾아다니는 여정을 사람들은 ‘오로라 헌팅’이라 부른다. 처음엔 그 말이 왜 그렇게 과장되게 들렸는지 모른다. 하지만 직접 겪어보니, 그 표현만큼 정확한 것도 없다는 걸 알게 되었다.


단 몇 초를 보기 위해 우리는 어둠 속을 달리고, 살을 에는 추위 속에서 묵묵히 하늘을 올려다보며 오랜 시간 기다려야 한다. 그러다 마침내 오로라가 모습을 드러내면, 숨을 죽인 채 카메라 셔터를 누른다. 그 짧은 찰나의 순간을 어떻게든 붙잡아두기 위해서. 간절함이 클수록, 기다림은 더 깊고 길어진다.




지금의 나는, 한국에 돌아와서도 여전히 하늘을 좇는다. 해가 지기 시작하는 시간이면 조용히 카메라를 챙겨 들고, 동네 뒷산이나 강변으로 발걸음을 옮긴다. 일상을 따스하게 물들이는 노을빛을 찾아 나서는 길. 그 순간마다, 북쪽 하늘 아래에서 느꼈던 ‘오로라 헌팅’의 설렘을 떠올린다. 이제는 초록빛 대신 황금빛을 좇는, 나만의 조용한 ‘노을 헌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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