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4. 늘 그 자리에 있어주는 것들

by 수경

여행 예능 프로그램을 정말 좋아해서〈지구마불 세계여행> 시리즈를 즐겨 본다. 여행 유튜브 계의 거장들인 빠니보틀, 곽튜브, 원지가 출연하기 때문.


최근 시즌 3가 막을 내려 아쉬움을 달래며 지난 시즌들을 다시 정주행하고 있었는데, 시즌 2에서 포르투갈 나자레를 찾은 GOD 박준형과 곽튜브의 영상을 오랜만에 보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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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준형은 세계에서 가장 거대한 파도가 치는 마을, ‘나자레’에 가기를 오래 꿈꿨다. 그러나 자신의 버킷리스트를 이루기 위해 모든 스태프들을 끌고 가기엔 부담을 느끼며 망설이던 그에게, 곽튜브는 흔쾌히 발을 맞췄다. 그렇게 도착한 나자레의 바닷가엔, 그가 상상하던 만큼 거대한 파도는 없었다. 하지만 한참 바다를 내려다 보던 박준형은 조용히 눈물을 흘리기 시작했다.


인종 차별과 괴롭힘을 받으며 힘들었던 어린 시절, 바다는 그에게 유일한 친구가 되어주었기 때문이었다. 아무도 나를 괴롭히지 않을 수 있는 곳인 파도에 몸을 던져 서핑을 했다고. 그렇게 어린 시절을 버텨왔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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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장면을 보면서 나 역시 붉어진 눈시울로 과거를 회상했다. 나 역시 힘겨운 마음을 달래고 싶을 때면 바다를 찾았다. 때로는 나를 아껴주고 사랑해주는 한 사람 보다도 자연이 위로가 될 때가 있었다. 어떠한 의도나 감정이 전혀 담기지 않은 채, 일정한 리듬으로 고요히 다가와주는 파도 소리. 그 소리를 가만히 듣다 보면 모든 불안과 걱정이 잦아들며, 오롯이 그 순간에만 머물 수 있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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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은 불안정하고, 치열하고, 그래서 외롭다. 잠에 들려고 누운 새벽, 인간은 결국 혼자라는 사실을 깨우칠 때마다 소스라치게 외로워지곤 한다.


그렇게 언젠가 끝나게 될 모든 관계와 감정들, 그 불안정 속에서 자연만큼은 내가 언제 찾아가더라도 늘 그 자리에서 나를 기다려주었다. 삶이 팍팍해져서 떠나고 싶을 때 '바다에 가야겠다'하면 늘 만날 수 있었던 것처럼.


그 사실을 여행할수록, 나이가 들수록 더욱 깊이 알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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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지구마불 세계여행>의 장면으로 돌아와, 박준형의 등을 토닥여주던 곽튜브도 자신의 어린 시절을 회상하며 말했다. 왕따를 당했던 학창 시절에 자신은 그저 방에 갇혀 tv를 봤다고. 그러자 박준형은 한 치의 고민 없이 이렇게 말을 해주었다.


너한테는 TV, 나한테는 파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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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한마디에는 이상하리만치 내게 큰 위로가 되었다. 기댈 구석이 무엇이었는지는 중요하지 않다는 것. 바다든, TV든, 책이든, 혹은 그저 아무것도 하지 않는 시간이든. 누군가에게는 무의미하게 보이는 것이, 누군가에게는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친구이자 방패가 되어준다는 사실이 말이다.


어린 시절, 누군가는 파도에 몸을 던지며 버텼고, 또 누군가는 방에 틀어박혀 리모컨을 쥔 채 세상을 견뎠다. 그 모습이 더 낫거나 못하거나 하지 않다. 우리는 저마다의 방식으로 하루하루를 살아내고, 나름의 방법으로 마음을 지키며 어른이 된다.


누구나 자기만의 작은 파도를 하나쯤 품고 살아간다. 그것만 있다면, 이 불안한 삶에서도 우리는 아직, 살아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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